2024,April 25,Thursday

호찌민의 진상들

학년이 시작되면 회장을 뽑는다.
한국 학생과 달리 감투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희생 정신이 없는 것인지, 하고 싶어 하는 후보자가 없다. 한국은 초등학교 반장도 서로 하려고 피 튀기는 선거를 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베트남에는 대학교 학과 회장도 서로 하지 않으려 한다. 허기야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학점에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교재용품이나 가지러 다니고, 칠판이나 챙겨야 하는 회장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서로 하려고 하겠는가?
이번 학년에도 희망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 지난해 반장이었던 ‘쩜’이라는 여학생이 그대로 하기로 했다. 쩜은 성적이 좋다. 한국어 학과에서 성적이 좋다는 말은 한국어를 잘 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일찍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학과 사무실에 학습용 녹음기와 물을 받아 교탁 위에 놀려 놓는다. 어떤 날은 학회비로 까페 다를 올려 놓는 애교도 부릴 줄 안다.
내가 보는 그녀는 예쁘다. 물론 선생이 학생이 예쁘다는 것은 얼굴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책임감도 강하고 남부 출신들에게 잘 찾아볼 수 없는 약간의 리더쉽도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키가 그냥 작지 않고 너무 작아 칠판의 상단을 다 닦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학과 학생 중 칠판의 상단까지 처리할 수 있는 이는 두 명 밖에 없는 남학생뿐이지만 이것들이 요즘 바람이 났는지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히 내 키가 아직은 살아 있기에, 그녀의 키 작음은 반장 활동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에게 키를 물으면 그녀는 항상 “남동생이 이제 8살인데 키가 아주 커요” 란 말을 꼭 붙이는 자존심도 한 칼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냥 여드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나있다. 그녀는 키와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한국 말을 잘 하는 편인데도 아직 한번도 통역 알바를 하지 못했단다.
3학년 초기에 통역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면접을 본 한국인들이 그녀가 나가는 뒷모습에 “얼굴이 아주 진상이네”라고 한 말을 듣고는 한 번도 통역 알바를 지원 하지 않았다고 한다.
먹고 살 만한 시기에 태어난 그녀의 동생 키가 큰 것을 보면, 그녀가 키가 작은 이유는 오래 전 우리의 언니,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 섭취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발육부진이 아닌가 짐작이 된다. 설사 영양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유전 인자로 인하여 키가 작다 한들, 그녀 부모님의 문제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에 그녀가 진상이 될 필요는 없는 듯 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고등학교 때까지 얼굴에 여드름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였다고 한다. 여드름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기 시작 했다는데, 나는 그녀가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는 1학년 때부터 그녀를 보았기에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정말 백옥 같은 피부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여드름 또한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란 것은 내 학창시절 심하게 경험하였기에 여드름 때문에 진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한 번씩 탁자 위에 올라 와 있는 까페 다 때문이 아니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런 제자이기에 여드름을 일시에 없애 버리는 약을 사주고, 키가 쑥쑥 자라나 보이는 키 높이 신발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내 경험으로 여드름은 약의 문제이기보다 시기의 문제였고, 그녀의 키는 키 높이 신발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잘 알기에 마음만 아프다.

그녀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생겨난 그녀의 외모는 어차피 본인이 한평생 살아가며 극복하고 이겨낼 문제이며 이를 바라보는 타인은 마음 같이 아파하고 안타까워할 문제이지 진상의 문제는 아니다.
정말 진상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폭탄주나 쳐 드시고도 반성 할 줄 모르는 정치판에 있고 제자에게 똥물까지 먹이고도 130만원에 합의를 보려 하는 학계에도 있고 승부를 조작하여 베팅치는 스포츠계에도 있고, 이 여자 저 여자가 모두 자기 지것인냥 방망이를 휘두르다 법정에서 만나는 연예계에도 있다.
그리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던지고 있는 호찌민 교민사회에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 모두가 호찌민의 진상 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기에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호찌민의 진상 등급에 대해서 말해 본다.
1. 직원에게 큰소리로 폭언을 한 적이 있다.
2. 택시기사나 바오베와 다툰 적이 있다.
3. 누구와 대화도중 ‘베트남 XXX’들은 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4. 짧은 베트남 말로 주문을 하고 다른 것을 가져왔다고 종업원에게 화를 낸 적이 있다.
5. 식당에서 습관적으로 베트남 여종업원에 대시 한 적이 있다.
6. 밤늦게 술 먹고 고성 방가를 하며 호찌민을 활보 한 적이 있다.
7. 사실을 가공하여 투자자를 유치한 적이 있다.
8. 교민 또는 베트남인에게 돈을 빌려 약속대로 갚지 않은 적이 있다.
9. 다른 교민을 욕하고 왕따를 시킨 적이 있다.
10. 카지노에 간 적이 있다.

한 달 이내 7가지 이상을 행하였다면 당신은 완벽한 호찌민의 진상입니다.
한 달 이내 5가지 이상을 행하였다면 당신은 완벽하진 않지만 진상 측에 해당합니다.
한 달 이내 3가지 이상 행하였다면 당신은 앞으로 진상이 될 소지가 다분함으로 몸가짐을…..
또한 이 글을 읽고 열 받아 필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는 교민은 정말 진상일 수도 있으니 차분히 본인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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