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언제 세상사가 한 번이라도 편한 날이 있었냐 하듯이 또 한번 회오리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을 한 번 맞고나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자 라는 생각으로 컴퓨터 주변에 화에 대한 명언들을 써서 붙여두고 책상에 앉을 때마다 읽어봅니다.

“화를 내는 것은 약한 마음을 감추려는 비겁함이다”
“화는 솔직함을 가장한 위선이다”
“강한 자는 화내지 않는다”
마치 조폭 두목의 모습을 보고 그리는 조언 같습니다.
뭐 좋습니다. 그래도 어떤 형태이든지 마음을 위로할 만한 문구는 되나 봅니다. 그런데 다음 문장은 머리를 써늘하게 만듭니다.

“내가 옳다 라는 생각이 화를 만든다”
“애정은 세상을 창조하고 화는 세상을 파괴한다”
“화를 다스리는 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이다”
이건 정신을 번쩍나게 만드는 문구입니다. ‘내가 옳다’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화를 부르는 것 맞습니다. 내가 겸손하고 내가 틀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화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가 세상을 파괴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제로 화가 나면 많은 사람들이 화풀이 대상을 찾다가 우선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자학행위를 불사합니다. 그러다 더 나아가 자신을 폭발시키고 그 파편으로 주변사람을 고통으로 몰아갑니다. 세상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애정은 정말 뭔가를 창조합니다. 연인간의 사랑은 인류를 존속하게 만들고, 새에 대한 동경은 비행기를 만들어내고, 사과에 대한 애착은 만류인력을 발견하고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던가요?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화를 만든다는 문구를 생각하다가 노인이 되면 완고해지고 화도 많이 낸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오랜 세월 살아온 경험을 통해 실제로 겪으며 익힌, 자신의 사고나 판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그에 배치되는 현상이 나타나면 자연히 화가 나는 경우라고 봅니다.

만약 다른 문화를 경험하지도 않고, 익히지도 않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으로 쌓아온 신념이 있다면 그건 세상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습니다. 전형적인 고집 센 노친네가 되는거죠.
그런데 아직 노인도 아니고 다른 문화에 대하여도 익숙하고 정치는 몰라도 다른 면에서는 급진적인 진보성향을 지니고 있어 젊은이들과 대화에서도 오히려 그들보다 더 진보적인 사고를 털어놓으며 넓은 포용력을 가진듯이 말은 하면서도 정작 평소에는 화를 자주 내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해 봤습니다. 이 인간이 화를 내는 주 메뉴를 살펴보니 주로 일에 대하여 화를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에 대하여는 자신의 생각이나 기준을 양보하거나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얘기죠. 너무 일찍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수 십년 동안 혼자의 생각 만으로 자신의 회사를 꾸려온 탓입니다.
회사 일에 대하여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 적어도 아직은 성공적이었고 그것으로 이 자리에 왔다고 믿기에 그에 따르지 않는 의견이 나오면 답답하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도 먹혀들지 않으면 그 답답함이 화로 둔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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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베트남 직원들과 씨름을 합니다. 잡지사에서 별도로 분리되어 나온 계열사에 열 명의 베트남 직원을 새로 뽑았는데, 급하게 채우다 보니 경험이 일천한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한국회사의 업무 성향을 모르다보니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합니다.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출근시간 지키는 것 전화받는 맨트 등 눈에 보이는 것마다 잔소리를 합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채워지고 업무가 그런대로 시작되고나서 이제부터 일일 업무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했더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 낭비가 많다는 의견이 올라옵니다.

“레포트는 윗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적는 것이 아니라 회사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하는 일이다. 자신이 그날 한 일을 정리하고 그 일로 인한 처리 등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면 자신의 업무를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업무로 자리를 옮겨도 후임자가 차질없이 그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레포트는 반드시 필요하다. 레포트라는 말이 싫다면 <Summary & Plan> 즉, 요약과 계획으로 파일 이름을 바꿔라.” 라고 설득을 하니 그런대로 먹힙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레포트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레포트를 쓰는 요령이 엉망입니다. 그저 결과만 씁니다. 어제 이런저런 일을 했다 하며 한가지 업무에 한 줄짜리 결과를 적습니다. 이런 보고서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저 간단한 업무 메모에 불과합니다.
해서, 이번에는 누구를 언제 어디서 왜 만나서 무엇을 상담하고 어떤 처리를 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른 레포트 작성법을 다시 가르칩니다. 아마 이 부분이 숙달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런 레포트 작성을 제대로 하게 되면 일단 업무 기초가 닦여졌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들이 스스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해야하는지 참 아득합니다.

그런 생각이 그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모르지만 암튼 이 새로운 베트남 직원들에게도 저는 화를 자주 내는 상사입니다. 업무에 대한 설명을 힘주어 가며 얘기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화를 내는 듯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냥 얘기했다고 믿었는데 그들은 제가 화를 냈다고 느낍니다. 참 답답한 일입니다. 내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인가? 아무튼 이제는 목소리도 좀 낮춰야 할 판입니다.

그래서 요즘의 화두는 “화를 내지 말자, 침착하자” 입니다.
침착한 상태를 유지하면 화를 내지 않을 것 같고 화를 내도 이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침착해집니까? 심호흡을 깊게 하라고요? 화가 잔뜩 나 있는데 뭔 심호흡이 생각이나 나겠습니까?

이런 저런 시도 끝에 한가지 유용한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과정에서는 생각이 급격하게 빨라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말이 너무 빨라져 혀가 꼬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순간 급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생각의 브레이크, 즉 생각을 천천히 하는 것입니다.
그때 말을 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말의 속도를 느리게 합니다. 자연히 생각도 느리게 따라옵니다. 그 순간 슬슬 끓어오르던 마음이 마치, 뜨겁게 끓어오르던 거품이 찬물 한 잔에 맥없이 꺼지듯 슬그머니 사라져 버립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려 할 때 생각을 느리게 하면 즉각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래서 느림의 미학이라고 했는가요?

이제 화를 피해 침착을 찾아가려 합니다.
오랜 세월 앞뒤 안 가리고 속도를 마구 올리던 사고의 흐름을 이제는 자의로 조절하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익숙해져서 언젠간 화를 안내는 사람, 침착한 사람, 평온한 사람으로 죽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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