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5,Sunday

이만하면 잘 살았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하루종일 눈물이 눈가를 맴 돌며 흘러내린다.

“가게 팔아라.”
“인자는 못 오시겠지 나이가 들으셔갔고”.

1950년 12월 흥남 부두 철수 때 부두에서 헤어진 아버지와 약속, 부산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에서 만나자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제 그만 일하시고 어머님과 여행이라도 다니시며 여생을 즐기라는 자식넘들의 속없는 핀잔에도 오래된 가게를 정리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지켜오다가 이제는 백발이 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제는 아버지도 나이가 드셔서 못 오실 것’이라며 그 꽃분이네를 팔라고 아내에게 말을 던지는 우리네의 모습을 국제 시장이라는 영화에서 우연히 보며 한없이 울고 말았다.

우리가 이런 세월을 살았구나.
한국전쟁, 서독 광부와 간호원 파견, 월남전 참전 등으로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헤어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접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 살아온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보며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그런 장면들이 그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귀한 대사를 하나 얻으며 자신의 모자람을 깨달았다. 주인공인 덕수가 하는 말 “전쟁, 광부, 월남전 건설용역 등을 거치며 몇번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넘기며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지만, 이런 세상을 우리 자식이 아닌 나만 겪었다는 게 다행이고 고맙다” 는 대화를 들으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래 우리 기성세대는 왜 자신들이 고생하며 자란 얘기를 자랑삼아 떠벌리며 그런 자신들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젊은이들에게 서운해하는가? 살아 생전 보지도 못한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험난한 삶과 지금의 삶을 어찌 대비하고 반성하라는 것인지 젊은 세대에게는 기성세대의 일방적 요구가 너무 황당하다 할 것이다.
이제는 그만두자. 우리가 어찌 살아왔는가는 역사로 남아 한 시대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그런 역사의 기록을 뒤로 하고 이제는 그저 이런 험한 꼴을 우리 세대만 겪어 왔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자. 우리 후손에게는 이런 험한 세상을 안 살게 한 우리나라에 감사하자.

요즘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지옥같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바로 우리라는 말인가 보다.
스스로를 그렇게 비하하며 비아냥 거리면 좀 기분이 나아지려나? 기분이 나아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 말이 잠시 유행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아무튼 지금은 예전보다 삶의 질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삶의 질만으로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못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것을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제 어느 신문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처음 해외사업을 시작한 싱가폴에 와서 마지막 강연을 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하시던 분이다.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들과 오파상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하며 구멍가게 같은 작은 사업체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순식간에 대 재벌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젊은 기업인의 신화를 만드신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장에서 자극받아, 돈 없다고 사업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친구들과 모여 작은 사무실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하며 수많은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났다. 이글을 쓰는 임자 역시 그 자극으로 대학 때부터 사업가의 꿈을 키우며 살았던 덕분에 그와 같은 큰 재벌은 아니지만 가족들에게 가장의 품위는 지킬만큼은 되는 사업체를 만들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사장 얼마나 멋진 말이던가? 거의 30년을 젊은 사장으로의 삶을 살아왔다. 운이 좋았다. 당시 우리나라 성장률이 일년에 10% 정도를 기록할 만큼 급격한 성장가도를 달릴 시기라 무엇을 들여와도 팔만한 것이 많았다. 단 5년 만에 서울, 대구, 부산 사무소를 만들며 전국을 상대로 사업을 수행했으니 가진 것이라건 방울 두쪽 밖에 없던 녀석이 제법 한 셈이다.
그런데 김우중 회장의 마지막 강연이라는 기사를 보며 우리 세대는 이제는 낙조의 그늘로 사라지는구나 하는 허무감이 스며든다.
거부할 수 없는 세월의 엄정함에 잔뜩 움츠려진 어깨를 의식적으로 애써 열어보지만 이미 우리의 자리는 초라한 방, 한 벽에 걸린 빛바랜 사진처럼 그저 아련한 추억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필자를 포함한 4명의 친구가 거의 40년을 함께 보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시절에 호기롭게 세계를 누비며 함께 활개 치며 다녔다. 그런데 작년 4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우리 친구들에게 다가온 충격은 가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 친구의 죽음은 바로 우리들의 죽음이나 같았다. 그렇게 그 친구의 빈자리로 가슴 한 쪽이 시리도록 싸하던 아픔이 지워지기도 전에 또 다른 친구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이제 어쩌란 말인가?

항금 시기를 베트남에서 보낸 덕분에 한국에서의 친구 관계도 협소해지고, 한국이라는 지역 자체가 뭔가 낯선 느낌을 지울 수도 없는데 그나마 그런 이질적 감정을 씻어주던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려 한다.

이것이 세월이구나.
마침 폐암 4기의 친구가 카톡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답을 한다.

그래, 이제 살아있는 동안만 살자.
대신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 웃음과 함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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