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낙서落書

글이란 쓰는 사람, 그 자신이다.

다감한 사람은 다감하게 쓰고, 비천한 사람은 비천하게 쓴다. 병이 든 사람은 병약하게 쓰고, 지혜로운 자는 지혜의 글을 쓴다. 미국의 작가 존 스타인 벡의 말이다.

오늘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낙서를 하기로 했다.

정재된 글을 쓸만큼 정신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요즘 매일 출근하는 소라쇼핑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간다. 앞으로 몇개월 준비된 플랜으로 실행만 잘 한다면 일단 기본 업무 조직은 완성되는 셈이다.이제는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잔소리를 하고 일거리를 찾아내지 않아도 회사는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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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 빨라졌다.

조금 이른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문을 열기 위해 수많은 키가 달려있는 키뭉치를 꺼낸다. ‘이런 뭉치를 내가 직접 들고 다니지 않는 품위를 유지하려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7~8개는 달려있는 키 가운데서 문 열쇠를 찾아낸다. 그리고 몇 번의 실패를 인내하며 열쇠 구멍을 찾아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두 번을 돌리며 생각한다.

아, 오늘 메이드가 다녀갔구나. 아침에 집을 나서면 문을 잠글 때 습관적으로 한 번만 돌려두는데 두 번이 잠겨 있는 것이다. 혼자 사는 텅빈 집에 들어서며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내다니 그것조차 반가운 일이다.

주상 복합 빌딩의 아파트라 삼면이 유리로 쌓여있고 외부를 통하는 곳이라고는 거실 한 구석 빼꼼히 열 수 있는 작은 창문 두 개를 통해 가끔 스치듯 들어오는 바람이 고작인데, 그 창문도 전체 유리벽 한구석을 꾸기듯 접어서 만들어낸 코너에 있는 터라 그나마 운 없게 중앙에서 밀려나 벽을 타고 간신히 몸을 유지하며 날아가던 실바람은 창문에 홀려 실내로 들어서지만 그 순간 마주하는 벽에 코를 부딪치며 맥없이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유일한 사건이었을 휑한 집안에 제법 눈길을 끌만한 소음을 내며 현관문이 열리자 산들바람의 애무에 잠을 뒤적이던 거실 공기가 화들짝 눈을 뜬다.

그리곤 잠시 소란의 이유를 찾아내곤 별일 아니지 하며 다시 눈을 감는다. 메이드가 다녀간지 한참된 모양이다.

공기마저 조용히 내려앉아 한가로운 오수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분주하게 오가던 시간을 피해 온 보람이 있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높은 창문을 통해 온 시내가 다 보인다.

저 멀리 푸미교가 보이고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분주하게 나다니는 모습이 마치 장난감 시가지가 펼쳐져 있는 듯하다.

샤워를 하고 커피를 한잔 정성껏 만들어 와서 창문 옆 의자에 앉아 생각을 비워본다. 퇴근 때가 다 되었으니 방해할 만한 급한 일은 없을 테고, 한가롭게 샤워를 하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맨 몸으로 거울 앞에 서는 것으로 자신만의 절대 공간, 그곳에서 단절의 자유를 느낀다.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시가지의 소리없는 분주함에 넋을 빼고 있다가 문득 마당에 여름 풀이 번지듯이 천천히, 때로는 한지에 먹물이 스미듯이 급하게 외로움이 불쑥 찾아 들곤 한다. 남들은 다들 저렇게 분주하게 오가는데…

집안이 깨끗해서 외로운 모양이다. 내 집에서도 내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드나 싶다. 그래도 어떤 외로움도 다 받아주는 곳이어서 다행이다. 하긴 혼자 지내는 인간이 이런 외로움마저 없다면 무슨 힘으로 살아가겠나. 세상을 외로움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누군가의 글귀가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마감이다. 새삼스러운 듯이 말하지만 사실은 벌써 알고 있었다. 단지 잊고 싶었다. 뭔가 단단히 꼬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채로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듯, 개운치 못한 기분이 글에 대한 애착을 씻어낸다.

하긴 언제 고달프지 않던 시절이 있었던가?

그렇게 위로해도 가슴 속의 돌덩이는 여전히 무겁게 자리하고 있으니 글이 나올리가 없다.

쓸 말도 안 떠오르고 쓰고 싶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일부러 쓰지 말고 스스로 쓰여지기를 기다려 보자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시간은 여전히 달려가는데,

‘이런 어리석음을 나이 탓으로 돌리지 말자’

편한 핑계도 자주 쓰면 진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국 이런 낙서로 페이지를 채운다.

만만치 않은 시간을 살아왔으면서도 이제와 새삼스레 사는게 힘겹다고 느껴지는것은 무슨 이유인가? 세상이 더욱 어려워진 탓인가? 아니다, 아직도 삶과 싸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만 싸울 때도 되었다.

아이처럼 살자.

싸우고 울다가 결국은 다시 웃으며 하루만 즐겁게 살아보자.

찾아도 별거 아닌 삶의 의미에 매달리며 미로를 헤매지말고 그냥 이 순간에 주어진

이 환경을 감사하며 즐겨보자.

현재를 잡아라

그리고 즐겨라.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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