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5,Sunday

세상의 변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비문에 씌어져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시야를 약간 좁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깨닳는다.

만일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다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 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 지도

이 시인지 산문인지, 아무튼 성공회 주교의 비문에 쓰여있는 글이라는데 몇 군데 책에서도 읽은 기억은 있지만 이 글을 남긴 주교의 이름자는 전해주질 않는다.

언제 한번 가서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버킷리스트 하나 추가요)

하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다. 이 글은 표현이 다르긴 해도 중 장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고 익혀지는 일이니 새삼 누가 한 말이라고 나서기도 미안했을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 이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대상이 너무 거창하지만, 측량조차 불필요한 작은 일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애플의 무식할 정도로 단순한 디자인 우선에 소프트웨어 주도 정책을 이끈 사고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주로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일들이 세상 인식에 영향을 주고 그 인식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

올 신년에 서울에 다녀오면서 삼청동 커피숍을 구경시켜준다는 아들애를 따라 박소미 권사와 함께 청와대 앞으로 산책을 했다.

60평생 서울에서 적을 두고 산 사람이 청와대 정문 앞까지 처음 와본다. 이제 청와대도 당당해 진 것이다. 비밀스럽고 어두운 탐욕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린다. 청와대는 언제나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염려하는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리이니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모양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나온 청와대 정문의 정경은, 와우 대박!

근데 그 정문을 보자니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데쟈뷰가 살아난다.

청와대에 이렇게 가깝게 접근한 것은 내 평생 처음인데 언제 어디서 저 정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지?

그렇다, 포항 해병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육영수 여사가 피살을 당했고 그 장례식 날, 하얀 국화로 치장한 장례차 안에 누워있을 부인을 못내 보내지 못하고 청와대 정문에서 차에 손을 얹고 남자의 굵은 눈물을 무겁게 떨구던 박정희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렇구나, 그이는 때로는 참으로 모진 것 같았지만 그 역시 아내의 사랑을 잊을 수 없는 평범한 남편이기도 했다. 박통의 가족과 국민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하늘을 우러러 한 줌의 부끄러움도 없을 것 같이 맑아 보인다. (그런데 박통은 왜 부인의 장지에 가지 못한 것인가요? 유가나 불가의 전통인가요? 아님 대통령의 안위를 위한 조치인가요?)

목숨을 걸고 혁명을 수행했던 양반이 그토록 뜨거운 눈물을 떨굴 때, 또 경제를 살린 종자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보내고, 나중에 그들의 급료를 담보로 돈을 빌리기 위해 독일을 방문할 때, 시커먼 탄광가루를 뒤집어 쓰고 사는 그들을 모아놓고, 힘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이국의 땅에서 험한 일을 하는 그들을 손을 일일이 잡아보며, 이런 가난과 고난은 이제 우리세대로 끝내고 우리 자손들에게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며, 치닫는 격정을 달래며 토하듯 쏟아낸 그 이의 눈물 속의 연설은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 모든 가난을 우리세대에서 끝내고 사랑하는 우리 자손들에게는 행복과 풍요를 남겨두자고 울부짖는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를 역설했던 링컨의 그것보다 모자람이 어디 있는가? 미국이 무엇을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미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라는 케네디의 매정한 연설보다 박통의 그 한마디 “우리 자손에게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 우리가 다 안고 가자” 가난의 절박함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욱 공감을 부른다. 결코 구차하지 않게, 누구에게도 동정을 구하지 않으며, 우리의 가슴에 자부심을 심어주는 이런 감동의 연설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던 그가 목숨을 걸고 혁명을 수행했다. 그리고 국민의 의식을 개조하는 새마을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를 악을 쓰며 외칠 때마다 어김없이 우리 순진한 국민의 몸에는 희망처럼 소름이 돋아났다.

5천 년의 역사 속에 한번도 평안하게, 풍요롭게 아니, 그저 굶주리지 않고 지낸 시기가 없던 한민족에게 그는 <잘 살아보세> 라는 아주 직접적이고 간단한 문장 하나를 던짐으로 민족의 의식을 바꿔버렸다. 박 통은 일본 군인에서 한국 군인으로 자신을 바꾸며 수신을 했고, 육 여사와 결혼을 하고 근혜양을 영부인처럼 키우며 제가를 했다. 그리고 한민족의 게으름에 찬물을 부으며 한민족을 세계에서 제일 근면한 국민으로 바꿔서 나라를 변화시키고, 세계 열국의 지도에 한국의 이름을 올리는 진짜 평천하를 이루었으니 그가 비록 불귀의 객이 되었다 해도 스스로 아쉬울 것은 없으리라 믿는다.

아직도 박통의 평가에 대한 이론이 많은 것은 그만큼 그가 남긴 족적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치 사상 이념을 불문하고 세계의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것은 박통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한국을 선진국의 입구까지 데려다 놨다는 것이다. 노벨상이나 올림픽의 금메달 혹은 어떤 귀한 상을 준다 해도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치적인 것이다. 한 명의 지도자가 나라를 그리고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우리 교민사회에도 그런 새 바람의 기적이 들려오기를 기다려 본다.

새로운 한인회장이 출현했다.

우리와 같이 교민잡지를 만드는 타사의 대표가 회장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을 임의대로 포장하고 일방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잡지사 사주가 단체장 선거에 나오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김 회장이 전화로 의견을 물었을 때 반대를 하긴 했지만 그 불리한 듯한 경쟁을 이겨내고 회장의 자리를 차지한 그에게 존경의 찬사를 보낸다.

또한 잡지를 하던 양반이니 이제부터 잡지의 언로는 좀 넓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언론의 자유만 제대로 자리 잡아도 회장으로서의 치적은 넘치고도 남는다. 그런데 언로가 열리면 한인회에도 따끔한 말들이 많이 들어 갈 것이다. 한인회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스스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김규 신임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며 부디 투명하고 상식적인 운영으로 한인회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되찾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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