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November 29,Sunday

그 후(1909)

주인공 다이스케와 그의 친구 히라오카는 방에 마주 앉아서 직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요컨대 먹고 살기 위한 직업에는 성실하게 매달리기가 어려워”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구먼. 먹고 살기 위해서니까 맹렬히 일할 생각이 일지 않을까?”
“맹렬히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성실하게 일하기는 힘들지.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하면 결국 먹고 사는 것과 일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나?”
“물론 먹고 사는 쪽이지”
“그것 봐!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이고 일하는 것이 방편이라면,먹고 살기 쉽게 일하는 방법을 맞추어 갈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고 그저 빵을 얻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결국 그러한 일은 타락한 노동이라 할 수 있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본 지식인들 내에서 직업에 대하여 이런 사상적 교류가 오갔다는것은 상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우리가 노동을 함에 있어서 빵이 우선이냐 확고한 신념
이 우선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서양 문물의 수용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에 일본은 서구 자본주의를 깊이 향유 하면서도 그 폐해까지 걱정하던 놀라운 차이점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추앙 받는 작가 소세키는 주인공 다이스케를 통해 당시 일본 근대화에 대해 진지한 성찰(省察)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령 영국 유학생 출신인 작가는 도쿄 상공에 쉴 새 없이 뿜어내는 공장 연기를 바라보며 암울한 시대인식에 사로잡힌 반면 영국 산업혁명 시찰단으로 다녀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피어 오르는 검은 연기에서 절로 아름답다고 토로했다는 점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 때 일본 지폐 천(千)엔에 이토 히로부미가 등장하였으나 한국과 중국에서 논란이 많아 1984년부터 소세키로 변경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가는 동시에 무위도식하면서 꽃과 서양화를 애호하며 탐미적인 생활을 즐기는 무기력한 당시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마치 일제시대 우리 소설가 이상(李箱,1910-1937)의 <날개>속 주인공처럼!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사색의 여정을 아름답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면서 우리로 하여금 소설을 읽게 하는 재미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시대적 오류를 짚어 나간다.

<현대 사회는 고립된 인간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즉 문명은 인간을 고립시킨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변함없는 사랑을 입에 담는 사람을 제일가는 위선자로 간주한다>라고.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킬 만큼 감미로우면서 강한 향기가 담긴 이 작품을 통해서 나는 다시 한번 일본이란 나라와 그 민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다. 한 국가를 이루는 일 개개인은 이토록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하고 다양한 인간적 고뇌를 겪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시 제국주의 일본의 집단적 야만성이 과연 어떻게 표출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극동의 섬나라에서 세계 열강의 반열에 올라 선 일본! 상호 매치하기 힘든 두 얼굴의 나라, 일본! 하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노벨 문학상을 두 차례 수상한 이웃나라 일본을 아래 세계적인 작가들을 통해 엿보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근대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8/마음/일본근대문학의 효시),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설국/1968노벨상 수상)
현대작가: 오에 겐자부로 (1935~/만연원년의 풋볼/1994 노벨상 수상),
무라카미 하루키(1949~/상실의 시대/2013 노벨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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