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24,Thursday

뚜벅이들을 위한 걷고 싶은 거리, 타오디엔

거리의 히어로 제 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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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디엔 지역은 호찌민시 동부 위성 도시답게 고급 주택가와 상가가 조화롭게 개발되며, 현대식 도시 지역으로 나날이 변모하고 있다. 호찌민시 2군 중심가에 위치한 이곳은 호찌민시로 진입하는 관문이자 장기적인 도시 계획하에 대규모 산업 및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곳이다. 특히 고속도로와 외곽 순환 도로를 통해 동부와 서부 사이공을 연결하는 전략적 교통 요지이자, 메트로 1호선 공사도 한창이다. 이밖에 Vingroup, Thảo Điền Investment 등 거대 부동산 기업들이 주변에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어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 발전가능성이 무궁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각종 가구점, 생활용품점, 유아용 옷가게 등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는 Xuan Thuy 길은 여느 곳과 다르게 한적한 편이나 국제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등하교 시 어느새 학생들을 태운 차량으로 북적이면서 매일같이 생동감으로 넘치는 거리이다.

Le Van Mien 길은 고급 주택 단지들이 건너 건너 자리하고 있어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으며, 이밖에 Nguyen Van Huong 길은 맛있는 다국적 미식의 거리라고 지칭하기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레스토랑과 부띠끄 호텔이 곳곳에 면모를 자랑한다. 통틀어 각기 다른 매력을 풍기며, 여유가 있을 때 길을 한 곳 정해두고 골목 골목 사잇길을 거닐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작은 유럽 마을처럼 꾸며진 곳을 거닐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아늑함으로 가득 차는 경험으로 바뀔 것이다. 분주한 베트남의 도심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유유자적하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미술로 현대 회화의 새로운 장을 연

Le Van Mien  레방민 1873 ~ 1943

Nghệ An성 출신으로, 베트남 최초의 서양화가로 1888년부터 파리 미술학교에서 6년간 수학한 후 귀국해 현대회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07년 국자감관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1943년 70세의 나이에 별세하기까지 Nguyễn Tất Thành, Lê Đình Thám, Trần Đình Nam, Lê Văn Kỷ, Phạm Phú Tiết 등 수많은 학자와 문장가, 애국자를 배출했으며, 판보이쩌우(Phan Bội Châu)와는 절친한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현재 그의 대표작인 빈방(Bình văn)과 뚜멘(Tú Mền)옹의 초상화가 베트남 미술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혁명음악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킨

Quoc Huong  구억흥  1920 ~ 1987

본명은 윙구억흥(Nguyễn Quốc Hương)으로, 베트남 최초의 혁명음악 작곡가이자 가수다. 구억흥은 17세부터 전국을 떠돌며 철도공무원, 선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으며, 사이공 Nguyễn Văn Hảo 극장에서 노래를 부르다 7, 8, 9구역 전선에 참가해 병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1954년 이후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이태리 3대 테너가수 중 하나인 Tito Schipa를 사사하기도 했으며,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전장을 누비며 전사들을 위해 혁명가를 불렀다. 한편 1975년 해방후에는 Bông Sen 예술원 가수로 활동하며 피아니스트 당타이선(Đặng Thái Sơn)옹과 함께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기도 했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남다  Nguyen U Di  윙으지

봉건시대 좌의정을 지낸 윙으지는 봉건시대 윙가의 가주 윙호앙(Nguyễn Hoàng)의 외삼촌으로, 어릴 적 부터 조카를 잘 가르치고 세심히 보살폈다. 윙으지 장군은 1558년, 윙호앙(당시 34세)을 보좌하여 수천명의 가솔 및 동지들을 이끌고 광찌성 아이뜨(Ái Tử)지역으로 이주했다. 이후 윙으지의 명성 덕에 영웅호걸과 인재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아이뜨는 비옥하고 풍부한 거주지가 되었으며, 이후 68년간 북부 당쫑(Đàng Trong; 1558 ~1626)의 수도가 되었다. 윙으지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동상을 만들어 사당에 모셨는데, 그 때 이후 짜린(Trà Liên)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불의에 맞서 싸운 언론인

Xuan Thuy  쑤언투이 1912 ~ 1985

정치, 외교활동가, 시인, 언론인으로, 1930년대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1932년부터 혁명활동에 참가, 구국신문 주임, 외교부 장관, 정부 파리회담 협상단장 등의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85년 6월 자택에서 사망할 때까지 펜을 무기 삼아 적과 싸웠으며, 대불항쟁기에 많은 언론인을 양성하기도 했다. 하노이에도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건강증진에 기여해 1급 독립 훈장을 획득한

Nguyen Van Huong  윙방흥 1906 ~ 1998

남부 양장성 출신으로 1927년 하노이 의과대학을 수료, 2년간 파리에서 공부한 후, 고국으로 돌아와 1933년 사이공 Pasteur 연구소에서 5년간 일했다. 하지만 프랑스인의 차별정책에 염증을 느껴 베트남 최초로 개인 검사실을 열며 이에 맞섰고, 8월 혁명 이후 남부인민위원회 고문, 의료위원장, 동의학연구원장, 베트남 보건부장관 등을 지내며 다양한 백신을 개발하고 후배양성에 주력했다. 93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노동 영웅과 인민 약사 칭호 수여, 인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한 점을 높이 사 1급 독립훈장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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