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18,Friday

왜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한국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전쟁 중에 세상을 나왔을까?
미국의 한 학자가 나라의 재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 예 중에 하나가 한국이다. 1950~1953년 사이 한국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들의 신체적 성장이 다른 해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결과를 보여주며 나라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앙은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개인에게는 평생 흔적이 남는 불행한 일이라며 너무나 당연한 연구 결과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왜 하필이면 우리는 그런 사례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는 민족으로 태어났을까? 아무튼 우리는 ‘왜, 하필이면’ 이라는 의문부호가 따르는 삶을 살았다.

지난 달 한국에 갔을 때 이미 돌아 가신지 오래된 숙부님이 친필로 남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우연히 찾아내고는 그것을 읽으면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약 100여 년 전 북한의 맨 위쪽,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근처인 종성에서 모진 귀양살이를 하던 한씨 집안에서, 귀양살이 13대 손에 이르러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기존의 사회적 관습과 마찰을 일으키며 살아가던 이야기를 남겨주셨다. 워낙 예전 분이시라 자필로 한자를 섞어 가며 A3 용지 여러 장에 기록을 남기셨는데 이대로 놔두다가는, 우리세대가 사라지고 나면 그 기록조차 읽을 수 있는 후손들이 없을 것 같아 일부로 시간을 내서 한글로 다시 정리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왜 하필이면, 유사 이래 가장 변화가 심하던 그런 시기에, 또 지지리도 못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참 세상 복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래서 조부께서 남들보다 일찍 기독교를 받아 들이셨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비를 배출한 한씨가 정치적인 이유로 귀양살이를 한 기록은 우리 역사에서 낯선 일이 아니지만, 저 북쪽 끝 오지까지 귀양살이를 보낸 기록은 딱 한번 있었다는데, 아마도 그것이 바로 우리 집안의 역사가 된 모양이다. 또 하필이면, 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온다.

이제는 백세 시대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이미 은퇴하고 뒷방 늙은이로 소일거리나 찾아 다녀야 할 나이에 이렇게 아직도 세상일에 묻혀 살 수 있으니 축복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뿐이고 이제는 죽을 날까지 일해야 만 하는, 참으로 삭막한 세월을 살아야 하는 이런 시대가 왜 하필이면, 지금 새롭게 등장하여 매번 안내판도 없는 길을 처음가야 하는지, 차별적 자괴감이 스며 든다.
얼마 전에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 이세돌이라는 최상의 인간지능과 맞선 바둑 시합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며 세상이 이리 빨리 변해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일어난다. 인공지능( AI: artificial Intelligence), 영문 이니셜을 따서 AI로 표시되는데 이게 앞으로 우리 사회의 대대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것은 굳이 과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1885년 독일의 칸시타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말이 없는 마차가 가솔린 엔진을 이용하여 달리는 신기한 장면이 일어났다. “아니, 말도 없이 마차가 움직이다니” 그때 이 작은 마을에서 다이물러와 마이밧흐라는 청년이 만들어낸 가솔린 엔진은 지난 3천여 년 동안 세상의 운송을 담당하던 마차를 박물관으로 몰아내고 그 동안 마차 일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으라고 명령한다.
당시 그 가솔린 엔진 시험 장면이 앞으로 미래의 세상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후 마차는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새롭게 탄생한 자동차가 차지하더니 점차 그 영역을 한없이 키워가고 있다.
마치 얼마 전 이세돌과 알파고가 한판 붙는 그 장면이 바로 이런 130년 전 칸시타트에서 일어난 일의 데쟈뷰(déjà vu)가 아니던가 싶다. 마차가 자동차로, 인간지능이 인공 지능으로, 그렇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된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무참히 터질 때, 미래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체를 보는 듯하여 묘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인공지능은 과연 어디까지 인간이 하는 일을 앗아갈까?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연이어 나오는 질문. 그럼, 백세시대가 온 것이 우리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조선시대를 거쳐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전쟁에 힘 없는 국민들의 육체가 도구로 사용되며 한국인의 한을 만들어 내더니, 어느 날 남의 힘에 의한 해방을 맞이하고 동시에 겪는 과도기적 사회 혼란, 마침 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동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저주스런 전쟁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 독한 한민족은 국민소득 60불로 지구상에 가장 빈국이던 코리아를 50여년 만에 세계 10대 부국으로 성장시키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인류의 유사 이래 처음 겪는, 지도자가 나라의 가난을 구한 첫 케이스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반도에 물자가 넘쳐나고, 밤을 낮처럼 밝히는 불빛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둘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적대감이 일상이 된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필이면 이런 나라, 이런 시절에 태어나서 그 모진 세월을 한 톨도 남김없이 곱씹으며 살아오더니 이제는 급기야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까지 살아야 하는지.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우리도 남들과 비슷한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가 희망적인 것은 이제 새롭게 펼쳐질, 인공지능과 3D 프린터로 대변되는 제 4의 흐름은 숫자나 볼륨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저히 개성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덩치가 크고 숫자가 많은 것이 절대 상수로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제 4의 흐름 속에서 한민족은 다시 한번 부흥의 기회를 맞으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런 말을 해보자. 새롭게 펼쳐지는 개인의 시대에, 왜 하필이면, 이렇게 개성이 강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이런 부귀영화를 누리는가? 말이 되려나? 어색해도 상관없다. 부정적인 생각이 따르는 문장을 긍정적으로 사용하여 아예 긍정적인 의미로 바꿔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왜 하필이면, 벳남에 와서 이렇게 일이 잘 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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