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8,Wednesday

고정관념깨기 조르주 모란디

한국에 살았을 적에는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제 삶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어느 정도까지는 대강 예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늘 익숙한 동네에서 큰 변화 없이 늘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흘러흘러 살았겠죠. 그래서 한국을 갈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낯설지만 어딘지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어렸을 적 고향 친구들은 저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과 모습을 보여주곤 하기 때문입니다. 저마저 거기 있었으면 한데 어울려 어색함 없이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실현되지 않은 저를 본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집니다. 나도 딱 저 모습대로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익숙하고 정든 곳을 떠나 시작한 베트남 생활은 하루하루가 두려웠습니다. 언어도 낯설고 기후도 낯설고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은 가까운 한 달 뒤 혹은 더 가까운 내일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매일매일을 모험하듯이 살다 보니, 아주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에는 ‘편안하게 한국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도 있었고, 환경은 물론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칠 때에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화가는 ‘은둔의 화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조르주 모란디’ 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작품이 생전에 명성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195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생전에 수상했음), 요란한 삶을 꺼려한 그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판화를 가르치며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일상생활이 흔들리는 것이 싫어 여행도 잘 가지 않아 이탈리아 국외 여행을 단 한 번 갔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인 20세기에는 다양한 미술 운동들의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특정 유파를 따라가거나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실험을 하고 특이한 소재나 개념을 찾을 때에 오히려 그는 전통양식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특히, 정물화는 오랫동안 미천한 장르로 치부되어 무시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모르디는 그의 삶과 닮은 그의 정물들을 10호를 넘지 않는 소박한 캔버스에 풀어냈습니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캔버스의 크기조차 다 달랐다고 합니다. 그림 속에 사용한 정물은 같을지라도 그 대상을 배열하고, 색과 빛의 선택도 미묘하게 달라 보입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작업실에서 정물들을 이리 놓았다가 저리 놓았다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은둔의 화가’ 보다 더 유명한 그의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병(甁)의 화가’, ‘병(甁)의 작가’로 불릴 만큼 그의 그림 속에는 비슷한 병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보통 병을 보면 라벨도 붙어있고 쓰인 재료가 투명한 유리이거나 진한 색유리 일 경우가 많은데 그의 그림 속 병들은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것처럼 불투명해 보입니다. 벼룩시장에서 모은 사물들 중 특히, 유리병에는 그가 직접 페인트를 부어 평범한 정물을 새로운 정물로 탄생시켰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정물을 똑같이 묘사하여 정물화의 한계에 갇히는 것이 아닌 라벨도 병의 특징을 모두 떼어버리고 병의 형태와 모습 자체에 집중을 한 것입니다. 그림뿐만이 아닌 그림에 쓰인 정물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네요. 예술작품을 다시 예술 작품 속에 옮기니 더 좋은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그의 작품을 볼까요? 그의 그림 속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정물처럼 보여 먼지들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정물을 오래전에 찍어놓은 빛바랜 사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형태와 색의 정물들이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져 손을 뻗으면 먼지가 묻어나고 정물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보면 볼수록 자꾸 그림 속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이고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

그림 속 시간으로 흡수되기 전에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와야겠습니다. 베트남에 살고 있으니 한국이 그립고, 만약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베트남이 그립겠죠? 어디에 살던, 또 내가 아는 곳 일지라도 내가 존재하지 않은 시간의 공간은 마음대로 상상이 가능하기에 현실보다 괜히 좋아 보이기만 합니다. 보다 넓은 작업실에서 보다 저렴한 물감으로 재료 걱정 없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고 또 골든 리트리버도 눈치 안 보고 키울 수 있는 베트남 일상이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한 주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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