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22,Tuesday

뒤틀린 소유욕과 恨으로 점철된 치정극

‘해어화’는 말을 할 줄 아는 꽃이라는 뜻으로 기생을 지칭한다. 현종이 연못에 아름답게 핀 흰 연꽃을 보고, 아름답긴 하지만 말을 할 줄 아는 꽃, 양귀비보다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화 ‘해어화’에서, 권번의 안주인은 동기들에게 해어화를 이렇게 설명해준다. 해어화란 말을 할 줄 아는 꽃, 즉 까다로운 귀와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수준 높은 기생들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꺾을 수도, 살 수도 없다는 뜻이라고. 예인이 되고자 했던 기생, 영화의 출발은 여기에 있다.
때는 1944년. 해방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일제강점기다. 기생 소율은 어린 시절부터 정가의 명인이라 불리며 동기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성장한다. 소율은 떼어먹은 옷값 대신 단돈 5전에 팔려온 연희와 단짝 친구로 지낸다. 그런 소율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오라버니라고 불러왔던, 연모하는 남자 윤우가 있다. 윤우 역시 소율을 사랑한다.
문제는 세상이 점점 바뀌어 간다는 것. 기생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배워왔던 정가는 어느새 대중가요에 밀려, 아주 적은 사람들이나 즐기는 고급 취미가 돼버렸다. 반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소율과 연희도 사랑할 만큼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영화의 갈등은 둘도 없는 친구였던 소율과 연희가 동시에 같은 것을 원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선, 가요다. 소율이 사랑하는 오라버니 윤우는 최치림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대중가요 작곡가다. 그는 소수가 즐기는 고급 예술이 아니라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설움을 달래줄 대중가요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불러줄 뮤즈를 찾는다. 소율이 그 뮤즈가 되고 싶어 하지만 연희가 뜻밖의 재능을 선보이며 부각된다.
심각한 것은 비단 노래 실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어서 윤우의 마음도 점차 연희에게 기울어져 간다는 사실이다.
이때부터 갈등은 치정극으로 심화된다. 노래에 이어 사랑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소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연희와 윤우를 파멸시키고자 한다. 가질 수 없는 노래, 가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 누구도 갖게 할 수도 없다는 비뚤어진 소유욕이 파괴력으로 뒤바뀐 것.
‘해어화’는 ‘아마데우스’로 잘 알려진 살리에리 콤플렉스의 치정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마침 경무국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소율은 그 권력을 이용해 친구와 사랑했던 남자를 파괴한다.
삼각관계와 열등감에서 비롯된 갈등은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에서 비롯된다.
주목할 것은 상황이 그럴듯하다는 것이 곧 설득력 있는 감동을 보증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의 주변인이 겪는 심리적 갈등은 영화 속에서 소루하게(꼼꼼하지 않고 거칠게) 다뤄지고 복수의 감정과 배신, 열등감만이 구체적으로 나열된다.
개인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중요한 가치들을 쉽게 버리는 소율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으로 이해하기엔 지나치게 극적이다. 갈등의 고조를 위해 억지로 변모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정가가 설 자리를 잃어가는 풍경이 너무 쉽게 처리됐다는 사실이다. 소율은 치정에만 집착할 뿐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사랑했던 정가는 너무 쉽게 외면한다.
진정한 예인이었다면 그토록 쉽게 정가와 작별할 수 있었을까? 화려한 옷, 세련된 음악, 풍성한 미장센들이 진짜 이야기 속에 흡수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름답지만 향기 없는 꽃처럼.
글_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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