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ugust 5,Thursday

교사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 믿고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것은 수표를 쓰는 것과 거의 같다.

이번 칼럼은 정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예정대로 스승의 날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하고,평소 한국 교육에 관한 생각을 해온 것이 있으니 조금만 정리하면 금방 써지리라 믿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마감이 당일인데 머릿속은 아직도 청소 중인지 반응이 없다. 가끔 이처럼 막바지까지 글이 안 나오던 때를 떠올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자위를 해보지만 별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연 이틀을 생각 속에 펜을 빠트린 것처럼 글에 대한 구성을 하고 있었지만, 안 되는 글은 아무래도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음에도 이번에는 안 되는 글에 공연한 집착을 부리며 이런 저런 조각 글을 쓰다가 지우고 또 억지로 엮어 나가기도 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겨우 억지 탈고를 했다 싶었는데, 생각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성격처럼 경솔한 평소의 손놀림이 마감을 좇기며 더욱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나도 모르게 자판의 뇌관을 건드렸는지,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져버린다. 비명이 절로 나온다. 안돼!! 뭐 그래도 자동 저장기능이 있으니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다시 부팅을 했더니 그렇게 애를 먹이던 글이 아예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그것 참 이상하다. 워드를 쓰는 경우 몇 십 분마다 자동으로 서류가 저장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자동 저장된 문서가 안 나온다. 다른 허접한 문서들은 다 보이는데 왜 하필이면 그 문서만 안 보이냐고?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모자라는 컴퓨터 지식을 배워가면 복구를 시도 해보았지만 결국 무망한 일로 끝나고 말았다.

글이 너무 아까워서, 3~4일간 고민하고 사색한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게 억울해서 온 집안을 서성이며 기분을 가라 앉히려고 무진 애를 썼다. 분노를 누르고 기분을 가라앉혀서 다시 글을 쓰도록 만드는 과정은 진짜 인고의 시간이다. 더구나 안 써지는 글을 억지로 쓰며 탈고를 한 후에 일어난 일이라 그 후유증으로 조금은 심각하다. 무슨 글을 썼는지 대강 기억은 하지만 원래 맘에 안 들던 글을 또 다시

반복하며 쓸 엄두는 나지 않았다. 서둘러 봉합하는 게 길이다 싶어

“어쩐지 잘 안 써지더라니, 아마도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그 글을 보고, 임마 그 내용은 아니다 하며 앗아간 듯싶다” 며 보이지 않은 손에 그 책임을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무심코 펼친 탈무드 문고판에서 보이는 글, “글을 쓴다는 것은 수표를 쓰는 것과 같다” 무슨 뜻일까? 대가가 돌아온다는 뜻인가?

그렇겠다.

수표를 쓰려면 그 수표가 은행에 돌아오기 전에 미리 구좌를 채워두어야 한다. 글을 쓰려면 머리를 채워야 하는데 이번 글에 대하여는 실제로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준비가 안된 부실한 글을 쓰느니 차라리 분실을 해라 하며 문서를 앗아간 모양이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다산 정약용이 남겼다. 정약용에게서 문장 공부를 하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변지의 라는 사람에게 한 말인데, 세상만사가 다 과정을 거쳐야 결과가 나온다는 진리를 이른 말이니 이곳에 전문을 그대로 옮겨 놓고 읽어봐도 될 일이다.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서 내가 말한 뜻만 좇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로 감성적 충격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움이란 책이나 사람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서나, 어느 경우에서나 다 배여 있다는 깨달음을 덤으로 얻었다. 만날 때 마다 뭔가 크고 작은 배움을 주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스승이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의 대표적 스승인 교사를 인터넷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잠시 들여다 봤다. 제일 먼저 사도헌장의 전문이 나오는데 그 머리말이 압권이다.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는 국민

교육의 수임자로서 존경하는 스승이요,

신뢰받는 선도자임을 자각한다.

이에 긍지와 사명을 새로이 명심하고

스승의 길을 밝힌다.”

교육이란 이렇게 개인과 사회 그리고 나라의 미래마저 좌우하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 아래는 제자들이 품어야 할 스승에 대한 자세를 기술했다. 우리 조상이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 써낸 사자 소학 사제 편에서 뽑아온 글인데 스승의 지위를 보모와 같은 반상에 올려두고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스승 섬기기를 어버이 섬김과 같이 하고, 반드시 공손하게 받들 것이며, 스승께서

가르침을 주시거든, 제자들은 그것을

본받을 것이니라.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들께 공경함은 스승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으며, 능히 깨달아 알고 행할 수

있음도 모든 것이 스승의 공로이니라.”

뭐~ 옛날 고전에서 뽑은 글이라 그런지 조금은 괴리감을 느낀다.

예전부터 한국인에게 최대의 관심사는 언제나 교육이었다. 쓸만한 자원도 없는 주제에 돈도 없고 국가체제도 미흡하고 정치적으로 여전히 4대 강국의 틈 바구니에서 북한의 위협까지 포함한 줄 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뭔가 활용할만한 것이라고는 인적 자원이 고작이다. 그러니 이런 유일한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교육에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지나침은 모자람과 다름없다지 않던가. 우리나라를 단시일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반열로 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한국의 교육이 과열현상을 보이면서 이제는 인재 양성이 아니라 상대적 입시 경쟁을 위한 과정으로 변질되면서 절대가치로만 판별될 수 있는 한국인의 놀라운 창의성이 사장되고 있다.

한없이 자유롭고 열정이 넘치는 우리의 젊은 영혼을 입시에 목을 매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교실에 두지 말고 찬란한 태양이 젊음을 부르는 더 넒은 세상으로 내보내,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직접 확인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도 찾아가는 현장 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더불어 한민족 만의 교육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어찌한가?

이름하여 <K_ Education>,

역시 한국이다! 라는 감탄사가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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