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오바마가 하노이에서 조그만 서민식당에서 분짜를 먹었는데 둘이서 먹은 분짜와 찬 하노이 맥주의 가격이 고작 6달러라는 소식이 가장 눈길을 끄는 뉴스가 되고, 오바마의 모든 것이 화제를 부른다. 그날 한국방송에서 나오는 뉴스에는 분짜 대신 일반 쌀국수가 보여졌다.
편집부에게 하노이 분짜가 무엇인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덕분에 진짜 분짜를 사무실에서 맛 봤다.

오바마의 이번 방문에 쏟는 베트남 사람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그의 방베 기간 동안 베트남의 모든 인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잘생기고, 키 크고, 말까지 잘하는 약간 검은 피부의 청년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 관심에 어울리게 오바마는 멋들어진 연설과 거침없는 행보로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하노이에서 행한 연설에서, 베트남인과 자신의 개인적 인연을 시작으로 베트남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피력하며 베트남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었고 또 한편 두 나라의 얼룩진 과거로 인한 깊은 아픔을 진솔하게 언급하며, 그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의 고통과 희생을 공유한 나라라는 공통점을 끌어내며 포괄적 동반자임을 강조했다. 공을 많이 들인 연설이었다.

호찌민에서 젊은이들과의 만나는 모습은 그가 왜 미국 대통령인지 보여준다.
그는 베트남이 필요로 할 때 미국은 그대들의 친구로서 그 곳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베트남 젊은이들의 사랑이 담긴 환호를 이끌어 냈다. 특히 사람들은 오바마가 오자 한동안 가뭄으로 몸살을 앓던 베트남의 대지에 달콤한 단비를 불러왔다고 그를 더욱 귀한 손님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암튼, 운이 좋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다 잘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여담이긴 하지만, 오바마의 분짜 먹는 장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가? 속세에 물든 필자 같은 인간은 “야, 그 분짜집 대박나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먼저 나선다. 하긴 대통령이 한번 다녀간 집이란 명성이 따르면 그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강의 미국 대통령이다.
필자가 오바마의 행보를 보며 이런 저급한 사고에 빠지는 것은 필자에게도 그와 유사한 스토리가 생길뻔한 사건이 있었던 탓이다.
지난 2000년도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할 당시인데, 그때도 지금에 못지 않게 많은 화제를 뿌렸는데,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 마지막 날 그의 일행은 호찌민의 벤탄시장 앞에 있는 퍼 2000 이라는 집을 방문하여 쌀국수를 먹었다.
그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쌀국수 집인 퍼 2000을 들리고 난 후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끝으로 한 군데 더 들릴 일정이었다.

당시 넷 카페라는 베트남에 유일하게 생겨난 모던한 인터넷 카페가 파스타르 길에 있었는데, 클린턴 일행은 퍼를 먹고 난 후 비행장으로 가기 전에 그 카페에 들려 베트남이 발전하고 있다는 상징적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일정을 잡고 있었다. 바로 필자가 베트남에서 와서 인터넷 전화 사업을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첫 번째 사업장이었다. 당시로는 제법 세간의 눈길을 끌만한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된, 베트남 최초이자 최상급의 인터넷 카페로 베트남의 유명 연예인들 고위 인사들의 모임장소로도 자주 애용되던 곳이었다. 당시 베트남은 개발도상국 초기의 수준으로, 인터넷 사정이 형편 없이 불량할 때인데, 그런 곳에서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던한 인터넷 카페가 존재한다는 것이 클린턴 일행의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항상 여자가 말썽이다. 퍼 2000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대통령 일행은 길거리 쇼핑에 잠시 나섰는데 클린턴의 와이프이자 현재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시 되는 힐러리가 쇼핑 시간을 과다하게 쓰는 바람에 비행시간에 쫓기게 된 것이다.
결국 인터넷 카페 방문 일정은 취소되고, 그 집 앞을 클린턴 일행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지나가 버리는 바람에 잔뜩 기대한 인터넷 카페 주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초점 없는 눈동자를 허공에 던지며 입맛을 다졌다는데, 그는 그 사건 이 후로는 두 번 다시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실제로 미국 대통령은 어느 누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타인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다. 미국 대통령의 무게는 그저 멋지다는 표현으로 채워질 만큼 가볍지는 않다. 미국 대통령은 우리 같은 일반 개인과는 전혀 무관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존재가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국 전쟁에 적극적 참여를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이나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 대통령 등은 직간접으로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우리가 미 대통령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호찌민에 내려와서는 정부와의 공식 일정 없이 대부분 민간을 상대로 한 일정을 보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행보는 젊은 리더들과의 대화, 그리고 호찌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의 하나이자, 당시 중국대륙을 점령한 청나라에서 이곳, 남방의 남쪽 끝으로 귀양 보내진 왕족들에 의해 100여 년 전에 지어진 NGOC HOANG (옥황) 파고다를 방문했다.
호찌민 시내 한 복판에 있어 찾아가기도 편하고 나름 내세울 만한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절이긴 하지만 왜, 오바마가 수많은 베트남 절을 놔두고 하필이면 중국인이 지은 그 절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이들이 많다. 그 절이 당시 귀양 나온 인물들에 의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 쟁취를 위한 본거지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심장한 역사에서 오바마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호사가들의 의견이다. 어느 누구에게는 경고를, 어느 누구에게는 역사의 가르침을 넌지시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바마가 이곳에 머무르는 3일 동안 우리는 오히려 그의 연설과 행보를 통해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많이 배웠다. 그의 연설문에 담긴 베트남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는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도 전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연설문은 우리 젊은이들이 한번은 꼭 읽고 숙지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연설문에는 어떻게 상대와 대화를 시작하는 가에 대한 모범적 방법과 수순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을 먼저 표하고 그들과 자신과의 관계를 통찰한 후 공통점을 이끌어내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그 연설문은 그것만으로도 미국이 공연히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권유할 것을 빼놓지 않는 친절함은 미국의 막강한 국력을 은근히 보여주는 듯하다. 오바마, 그 멋진 친구가 다녀간 3일 동안 적지 않은 생각들이 교차되어 갔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미국 대통령이 온 것은 기억이 없는데, 베트남에 미국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다녀간 것은 이리 또렷하게 기억하고 관심도 한국에서보다 백만 배 이상이다. 이미 베트남 인이 되어 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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