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ugust 5,Thursday

헛된 인연, 귀한 인연

지난 한 6개월 전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오프라인 위주의 잡지 사업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고 오프라인 잡지에서 다루지 못하는 민감한 기사들은 온라인으로 돌려 베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페이스북부터 시작해봤다.

한 6개월 정도 꾸준히 하다보니 이제는 제법 많은 페북 친구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사이버에서 맺어진 만남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디지털 세상이라고 해도 아날로그 세상에 적용되는 인간의 관계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더라. 그곳에서도 여전히 인간들의 마음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면서 만남과 갈등, 그리고 이별의 사이클을 만들어가고 있다.

온라인에서 사이버 통신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을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이다. 디지털 세상이 다가오면서 우리에게는 더욱 다양한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과연 앞으로 세상을 양분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어떤 협업을 보이며 이 세상을 꾸려나갈 지 자못 궁금한 바이다.

그리고 오늘 그 디지털 시대의 대표주자 중에 하나인 페이스북에서 이 글의 주제가 되는 인연에 대하여 쓴 법정 스님의 짧은 글을 보았다. 그 법정 스님의 글을 한번 읽어보자.

함부로 인연을 맺지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놓으면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 당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도 안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살아가는 있는 우리지만 인간적인 필요에서 접촉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위에 몇몇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들만이라도 진실한 인연을 맺어 놓으면 좋은 삶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좋은 일로 결실을 맺는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쥔 화투패를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는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댓가로 받은 벌이다.

법정스님은 인간 관계로 인한 피해는 자신의 헤픈 인연 탓이니 남을 탓할 일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올린 이글을 보면서 인연이라는 의미를 이리 가볍게 다루어도 되는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법정스님은 아주 섬세한 잔손질까지 동원하면서 우리의 눈 높이로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처세술을 대중에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우리처럼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귀감이되는 말씀이다. 베트남 생활 20년이 넘어가지만 이곳에서의 만남이 진정한 인연으로 발전된 적이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한다면 과연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그런 희박한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무엇인가?

이런 미천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내는 모든 원인은 남을 믿지 못하는 자신의 불신에 의함이 아니던가?

베트남에서의 만남은 기본적으로 불신과 경계를 깔고 시작한다.

이미 기본적인 성장과정을 다 보내고 각자의 정체성이 정립되고 난 후에 낯선 땅에서의 만남은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조차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 열고 접근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만약 그리하다면 그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바로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상대에게 화투패를 다 보여주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렇다고 이국의 땅에서 먹고 사는 일에 우선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새로 등장한 낯선 상대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또 배려하는 인연의 역사를 쌓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당하지 않겠다는 자기 방어로 한껏 경계의 눈초리를 높이고 있으니 그 만남은 항상 아무런 진전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무의미한 옐로우 미소만 교환하는 관계로 고착되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에서의 만남은 상황에 휘둘리는 가벼운 인연이라는 운명으로 시작한다. 어느 순간 이런 저런 상황에 의해 자리를 떠나면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마는 인연이 대부분이다. 결국 한시적 인연으로 남다가 기억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슬픈 운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구조상 혼자서 살 수도 없고, 혼자 이룰 수 있는 성공도 없다. 타인의 시각에 의해 자신의 삶이 평가되는 공동체에서 타인을 외면할 수도, 외면 해서도 안될 일이니 만남의 인연을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결국은 균형이다.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상대를 파악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그에게 보내던 경계의 마음을 내려놓을 것이고 그제서야 그 인연의 경중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던가?

솔직히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필자는 가능하면 새로운 관계를 가질 기회 자체를 반겨하지 않는다. 더구나 체질적인 음주 장애자라 술 기운에 기대어 맘을 터놓은 객기조차 없으니 인간관계가 협소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히 최근 만난 페이스북 안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면서 스스로의 협소함을 위로하며 살아간다. 인터넷 덕분에 그나마 현소한 삶의 영역이 조금은 넓어져 가는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 이왕 페이스북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이 기회에 베트남을 공부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한 팁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이 글을 마치겠다. 베트남에서 페이스북의 위상은 한국에서의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모든 뉴스는 물론이고, 쇼핑, 부동산 임대, 각종 차량 사고 팔기, 구인구직, 그리고 친구 만들기까지, 이곳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이곳에서 페이스북을 사용한다는 것은 적어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알고 있는 인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 베트남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귀하게 발전 시키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핸드폰에 페이스북을 깔고, 자신이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라. 그러면 그대는 이제 온, 오프라인 양쪽의 세상을 드나들며 더욱 더 많은 인연을 쌓을 수 있는 기본 통행증을 발급받은 셈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법정스님의 말씀대로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섣부른 행동으로 두 번 없을 귀한 인연을 저버려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헤픈 인연으로 자신을 소모하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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