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21,Monday

풍요와 바꾼 평화

한 여자를 만나 30여 년을 무탈하게 지냈음을 기념하며, 일본 북해도로 가족 피서 겸 결혼 기념 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혐한 감정과 우리의 반일 감정과의 마찰 그리고 일본의 방사능 오염을 염려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한국인의 설마, 하는 안일함으로 무장하고 하이브리드 소형차를 렌트 하여 아들애와 내가 운전을 하며 북해도를 돌았다. 처음 숙소가 있는 도시는 일본의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었던 오타로 시다. 삿뽀로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여 아들애가 인터넷을 통해 준비한 Airbnb 숙소를 찾아가 집주인이 가르쳐준 곳에서 열쇠를 찾아서 숙소에 들어갔다. 한치의 공간 허비도 용납치 않는 일본인의 특성이 그대로 묻어 있는 숙소. 가끔 지나치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정중한 인사를 한다. 일본인의 친절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오겡끼데스까? 하고 이미 생을 달리한 남친에게 목청껏 인사를 전하던 영화 러브레터의 여자 주인공 모습이 떠오르는 오타로 시에서 이틀을 머물고 200km 운전 끝에, 세계 3대 야경을 자랑하는 항구 하코다테 시에 도착, 다시 이틀을 보냈다.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인사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과, 아침마다 갈매기가 베란다에 앉아 인사를 건네는 평화로운 바닷가에서의 4박 5일은 삶에 지친 한국인의 심신을 치유해주었다. 밥벌이에 묻혀버린 감성이 되살아나듯이 옛 가곡과 동요들이 종일 입에 걸려 떨어지지 않는다. 잃었던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기분이다.

여행기간에 만난 모든 일본인이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것은 친절과 호의가 전부였다. 아무도 우리 마음에 갈등을 부를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백미는 떠나는 공항의 안전요원들의 자세였다. 아무리 친절해도 엄숙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그들과는 달리 이들은 여행객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데 철저하면서도, 이웃집 조카처럼 티없는 미소와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관리도 마음으로 친절할 수 있구나. 일본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아마 못해도 20여 차례는 넘게 들린 익숙한 곳이다. 물론 대부분 사업상의 목적이었으니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번 여행이 가족과의 동행이었던 탓인지, 목가적인 북해도의 풍경 탓인지, 아니면 친절한 일본인의 미소 탓인지, 아무튼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각별한 힐링여행이었다.

그리고 돌아 온 한국, 넉넉한 좌석의 공항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려 짐을 들고 집까지 우리를 실어줄 택시를 찾았지만 좀처럼 잡히는 택시가 없다. 할 수없이 짐을 끌고 마을 버스를 타러 가는 도중 빈 택시가 와서 선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다. 트렁크에 짐을 직접 넣고 (한국에서 택시 기사가 짐을 직접 넣어주는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세 사람이 여분의 가방을 들고 택시에 오르는데 기사양반 첫 마디가 “어어, 뭐에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어이 없는 질문에 바보 같은 답변, “세 사람입니다”
첫 번째 한국인의 대면은 이렇게 인사 대신 놀라움과 당황스런 대답으로 시작되었다. 기사양반 하는 소리, 원래 이 시간에는 안 태우는데, 왜 태웠는지 아세요? 내가 지금 집에 가는 중이라 태웠어요. 아, 그렇게나 커다란 호의를, 속으로 대답을 삼키고 집 주소를 알려준다.
택시 안에는 네비게이션 두 대가 돌아가는데 집까지 가는 10분 여 동안 두대의 기계에서 경쟁하듯 반복하며 질러대는 같은 안내 멘트가 귓전을 쉴 새 없이 때려 댄다. 우리 집이 이리 먼 줄 몰랐다. 아 한국, 그래 이런 나라였지, 다이나믹 코리아. 4박 5일동안 담아온 평화는 한 순간에 날아가고, 심상 밑바닥에 내려앉았던 미움과 갈등의 부정적 감정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본 TV뉴스는 청년실업에 정치인의 싸움, 공무원의 막말, 부패, 사드 배치 등 모든 사회문제가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같이 싸운다.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무서운 증오심을 마음껏 표현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싸운다. 마치 전쟁을 하는 나라를 방불케 한다. 공들여 캐어낸 마음의 평화가 흥분과 갈등으로 자리바꿈을 한다.

페이스 북에서 본 글이 하나 있다. 일단 보자.
오랜 미국 생활을 하다 잠시 휴가 차 오랜만에 한국에 나온 성공한 동포,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고국의 발전상을 실감한다. 넓은 도로에 바다를 건너지른 다리, 우뚝우뚝 보이는 고층 브랜드 아파트에 놀라고, 골목마다 즐비한 고급 중형차들, 블랙박스, 차량 자동인식 주차장, 광속 인터넷, 교통카드, 버스 알림 시스템, 거미줄 같은 지하철에 스크린 도어, 세계 최고의 대중 교통 시스템에 감탄한다. 수많은 TV 채널, 저렴한 택시, 언제든 열려 있는 가게들, 대리 운전 서비스, 전화 한 통이면 집으로 배달되는 음식들, 거리마다 널린 원두커피집, 너나 없는 최신 핸드폰, 총알 같은 배송 서비스, 문 열쇠대신 카드나 비번, 해외여행 인파로 북적대는 공항, 십 수년 전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우수수,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여행 온 기분이다. 미국에서는 비싸서 엄두를 못 내던 건강검진과 치과치료를 마친 후, 커다란 문이 두개나 달린 냉장고가 복수로 있는 친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여는데 창문이 마치 얼음위를 미끄러지듯 스르르 열린다. 미국 집의 삐걱 내던 창문이 생각나 자꾸 창문을 여닫는다. 이 집주인인 친구, 연봉으로 따지면 자신의 반 밖에 안되는데 실제로는 자신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참 좋은 조국이다.

이제 며칠 후면 발전된 조국을 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못내 아쉽다.
그런데, 이번 귀국 여행에서 조국의 놀라운 발전상보다 더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 나라인지 성토하는 모습이다. 헬조선 흙수저, 정치가 개판, 나라가 썩었다, 전세 값이 올라서 살 수가 없다, 교육 시키느라 등골이 빠진다, 반값 등록금 요구에 여자라서 밤길도 못 걷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올리라며 데모를 하는 등, 가까운 친구는 물론이고 55인치 대형 TV 속의 수많은 사람들 모두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다.
자신은 그래도 미국에서 상류사회에 들어갈 입장이지만 전세는 커녕 월세가 3천불인데, 미국은 남자도 밤길을 무서워하는데, 미국 등록금은 한국보다 몇배 더 비싼데, 거기에 보험, 병원비는 훨씬 비싸고, 미국의 인텔 등 IT 회사들도 수천 명씩 감원을 하는데, 세계 최고라는 미국보다 더 나은 점이 많은 자랑스런 조국- 평균수명, 치안, 위생, 도시인프라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에서 저렇게 지옥을 외치며 죽는 소리를 하는게 너무 신기하다. 물론 삶이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한결같이 모두 다 이렇게 죽는 소리를 하는 것은 납득이 안된다.

그가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멘트,
“예전에는 조국이 잘 살게 되기를 기도했지만 이제는 조국의 국민들 마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 해야겠어요”

풍요의 대가로 지불한 마음의 평화.
세상사람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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