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스타일을 아는 당신을 위한 Le Van Sy 레반씨

레반씨(Lê Văn Sỹ) 거리는 레반씨다리에서 호앙반투 로타리까지 이어지며 3군의 푸년군이자 10, 11, 13, 14동, 떤빈군 등 호찌민시 북서쪽을 가로지르는 총 길이 2,268m, 폭 30m의 거리이다. 중간에 쩐반당삼거리, 기차철로, 후인반바인-당반응으 사거리를 지난다. 프랑스 식민 통치 시절 ‘Eryaud des Vergnes’로 불린 이 길은 그당시 보반떤까지 이어졌었다.

1955년에는  Trương Minh Giảng으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3군과 푸년군이 나뉜 이후에는 쯔엉민끼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4월 4일 오늘날의 레반씨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패션의 거리라고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각종 의류거리가 즐비한데, 특히 아동복 매장, 임부복 매장, 속옷가게를 비롯해 뷰티살롱 등 美에 중점을 두고 있는 거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밖에 갤러리나, 유명 염소고기집도 만나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기차 철로인데 옛 향수를 자극하는 어떤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Le van sy (레반씨  1910~1948년)
베트남 공산당원이자 1948년 사망 전까지 짧은 기간 사이공-쩌런 시 당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베트남 영웅으로 본명은 보씨이다. 1910년 꽝응아이성 민떤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베트남 청년 혁명 위원회에 가담한 뒤로 자신의 고향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1929년 10월 광응아이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후 꾸이년으로 이송되는데 1931년 10월 출소 후에는 이전처럼 다시 활동하다가 그 해 다시 붙잡혀 라오바오로 ,1965년 6월에는 꼰다오섬으로 유배되었다. 8월 혁명 후 꼰다오섬에서는 남부지방위원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12월부터 제 8구역 위원장으로 일한다. 1946년 중부를 거쳐 하노이로 오게 된 그는 이듬해에 레주언과 함께 사이공으로 돌아와 사이공-쩌런 시당위원회 위원장을 맡게된다. 1948년 10월 프랑스군의 랑레, 브언텀지역(현 비짠지역) 공격에 맞서는 도중 향년 38세를 일기로 안타깝게 사망했다. 현재 그의 이름을 딴 것은 거리 뿐 아니라, 떤빈군의 한 초등학교와 3군의 한 나무의 이름으로도 불려지는 등 아직까지 베트남인들의 뇌리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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