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ugust 5,Thursday

원문의 개입이 발목을 잡는다

한국인이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데 소위 “콩글리시”라고 부르는 “한국식 영어”를 극복하고 영어를 영어답게 배우고 사용하는 원칙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국제회의통역사(동시통역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과 수 년간의 강의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마스터하는데 효과적인 원칙과 영어 사용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생활 영어 회화’의 중요성을 국내 최초로 널리 알린 오성식선생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날씨 참 좋네’라는 우리말을 어떻게 하면 영어로 할까? 라는 정도의 호기심이면 영어를 즐길 준비가 된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말과 영어 사이의 다리를 놓아가는 습관은 결정적 영어를 갖추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 참 좋네”라는 우리말을 영어로 할 때 “What a great day!”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배운다면 우리말에서는 “날씨”라고 표현하는 개념을 영어에서는 “day”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습관을 들이면 우리말과 영어 사이의 다양한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 영어의 사고방식에 끊임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영어의 지식을 상당량 축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축적된 영어의 지식들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울타리”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영어를 정복하는데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날씨”라는 말을 영어로 하려고 할 때 반사적으로 “weather”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거나, “늦었다”는 자동으로 “late,”“이해하다”는 생각할 것도 없이 “understand”를 떠올리는 등 우리의 사고방식 안에는 한국어의 “말”과 영어의 “말”사이에 강력한 “쌍match”들이 맺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어의 어떤 단어/표현이 영어의 특정 어휘와 너무나 강하게 연결되어서 해당 단어/표현 이외의 다른 어휘를 찾지 못하게 만드는 현상을 “원문의 개입 Show-Stoppers”이라고 표현합니다.
원문의 개입이 작용하는 이유는 흔히 그 단어나 표현이 통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거나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표현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국내파 한국인이라면 거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원문의 개입이 있는가 하면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원문의 개입도 있습니다.

1997년 1월 초에 통역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첫 프로젝트 참가를 위해 S그룹사의 부산 사업장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이미 반년 여 전부터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던 선배 통역사와 동행을 하였는데 여러 가지 소중한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 하나는 “영어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한국어를 주의하여라”는 말이었습니다. 지역이 부산이었던 만큼 사투리도 알아듣기 힘들 터이고 전문 용어와 기술 용어가 넘쳐나는 사업장 내 업무 특성도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애 첫 통번역 프로젝트에서 정신 없이 일을 하면서 몇 주 만에 깨달은 점은 흥미롭게도 한국인들이 “반영하다”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쓸 줄 몰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그 회사의 언어 문화도 작용을 했을 터이고 업무의 특성 때문도 있었겠지만 회의 석상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반영하다”에 참으로 막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기업 고객을 위한 통역을 진행하면서 “반영하다”라는 어휘는 한국인의 비즈니스 언어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단어라는 점을 끊임없이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반영하다”라는 말을 영어로 할라치면 많은 한국인들이 “reflect”라는 단어에 의존한다는 사실도 함께 발견했습니다. “반영하다 = reflect” 이 조합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되고 있더군요.
물론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반영하다 = reflect”가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만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언어 습관이 바로 영어로 생각하려는 노력에 결정적인 방해가 된다는 사실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결과적으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저런 어휘의 조합(즉 원문의 개입)이 영어 정복을 위한 돌파구를 막아버리는 커다란 요인입니다.
간단한 예를 한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회의 결과를 반영해서 기획안을 만들겠습니다.”
이 문장을 영어로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과연 reflect라는 단어를 쓴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I’ll make a plan that reflects the result of today’s meeting.”

이 영어는 명확 clear한 의미를 전달할지는 모르겠으나 간단하지도simple 간략하지도 short 않을뿐더러 간결 concise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장 전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coherent 않습니다.

“Let me come up with a plan based on this meeting.”

굳이 “반영하다”를 대응시키자면 “based on”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이 문장은 의미도 명확할 뿐더러 문장의 길이도 짧아졌고 구성도 단순해 졌습니다. 그런 한편 눈에도 더 잘 들어옵니다.
우리말의 “반영하다”라는 말은 “투영해서 보여주다 reflect” 이외에도 “만족시키다 satisfy,” “고려하다 consider,” “근거가 되다 based on,” “원인이 되다 come from,” 등 수많은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어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 껍데기만 보고 “reflect”로만 버티려 하다가는 의미의 왜곡이나 모호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영어를 스스로 더 어렵게 만들어 가는 원인이 됩니다.

흔히 “영어를 잘 하려면 우리말부터 잘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말은 언어 문화적인 특성상 화려한 어휘력 보다는 공식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평상시 사용하는 어휘의 종류가 넓지 못하더라도 비즈니스나 학업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침묵은 금이라는 가치관과 토론 없는 교실 또한 한국어 어휘력 확장에는 걸림돌임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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