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현대 태국의 발전과 운명을 같이했던 태국 푸미폰 국왕

태국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70년을 재위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10월 13일 서거했다. 1946년 6월 9일 형인 Ananda Mahidol 국왕이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직후 왕위에 오른 후 70년 126일을 재위해 세계최장 재위한 왕으로 기록됐다.
푸미폰국왕은 18세기이후 태국왕좌를 지배해온 짜끄리왕조에 소속으로 미국 캠브리지에서 태어나고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인물로 도시엘리트층뿐만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층에서 두루 존경을 받은 신(神)에 가까운 존재였다는 점에서 국왕의 죽음이 태국에 던져주는 영향은 과소평가되기 어려울 듯 하다.

푸미폰대왕 또는 라마9세

푸미폰 국왕은 영문표기로 Bhumibol Adulyadej로 표기하고 읽기는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으로 읽는다. 1927년생이니 88세를 일컫는 미수(米壽)를 넘어 아흔까지 장수하면서 태국국민의 존경을 듬뿍받은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왕이었다. 정식호칭은 푸미폰 대왕(King Bhumibol the Great)으로 짜끄리왕조의 9번째 왕으로 영어로는 라마9세로 불리운다.
태국(Thailand)의 정식국호도 길지만 푸미폰 국왕의 정식호칭도 엄청 길다. “프라 밧 솜뎃 프라 뽀라민타라마하 푸미폰 아둔야뎃 마히뜰라티벳 라마티보디 짜끄린리쁘딘톤 사야민트라티랏 보롬나트보핏”이다. 이름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프라”는 산스크리트어의 ‘바다’에서 온 말로 높은 사람이 3인칭으로 스스로를 호칭하는 말인데 ‘짐’과 같은 용법이다. 다음으로 “밧”은 신체의 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산스크리트어의 ‘빠다’에서 온 말이다. “쏨뎃”은 군주의 의미이고 크메르어의 쌈뎃과 같다. “뽀라민타라”는 ‘바라밀다’에서 온 말로 바라밀(婆羅蜜) 또는 바라밀다(波羅蜜多)는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āramitā)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상태 ․ 구극(究極)의 상태 ․ 최고의 상태를 뜻한다. 한편 “마하”는 ‘큰’, ‘위대한’의 의미로 사람에게 쓰면 존칭의 의미가 있다. “푸미폰”은 ‘이 땅의 힘’이라는 의미로 산스크리트어 땅(bhumi) + 지도자(indra)의 합성어다. “아둔야뎃”은 ‘비교할 수 없는 힘’이란 의미로 산스크리트어로 비교불가능한(atulya) + 힘(teja)의 합성어다. “마히뜰라티벳”은 ‘마히돌 왕자의 아들’의 뜻이고 “라마티보디”에서 라마는 비슈누의 현신이며 위대한 심판자란 의미로 산스크리트어로 라마+아디+파티의 합성어다. “짜끄린리쁘딘톤”은 짜끄리 왕조의 지도자라는 의미이고 “사야민트라타랏”은 ‘시암의 왕’, ‘보롬나트보핏’은 ‘위대한 요람의 지배자’라는 뜻이다.

19차례 쿠데타속 영향력 행사한 국왕

푸미폰 국왕 재임 기간 동안 태국은 무려 19차례의 쿠데타와 17회에 걸친 개헌을 겪었다. 당초 절대왕정 국가였던 태국은 1932년 군부쿠데타로 입헌군주국이 된 후 국왕의 영향력은 상징적이었으나 1957년 푸미폰 국왕이 군부 쿠데타를 승인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후 이어진 군부 정권들과 문민정권 들과의 줄다리기를 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1973년 학생들의 군부정권 타도 항쟁 때에는 민주화 세력에 힘을 실어줘 군부정권을 해체하는데 기여했다. 또 푸미폰 국왕은 1992년에는 쿠데타후 총리가 된 후 강경 시위진압을 추구하던 수친다와 이에 반대하는 잠롱 전 시장 등 4명을 왕궁으로 불러 평화적 수습을 촉구했으며 쿠데타세력은 결국 사임해 망명했고, 이후 총선에서 민주 정부가 탄생했다. 이로서 푸미폰 국왕은 법적으로는 권한이 거의 없음에도 영향력을 통해 태국정국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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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미폰 국왕이 군부쿠데타를 대부분 추인해왔고 이로 인해 국왕이 군부와 결탁해 권력을 유지해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푸미폰 국왕은 2006년 9월 자신에 반대되는 세력을 떠오른 탁신 치난왓 총리가 못마땅하던 차에 총리의 UN총회 참석중에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승인했다. 이후 왕당파 옐로 셔츠 시위대와 친탁신파 레드 셔츠가 번갈아 시위를 벌여 일부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사태는 왕실 근위대 출신인 육군참모총장이 2014년 탁신의 동생인 잉락 전 총리를 쿠데타로 몰아내면서 일단 안정되고 있으나 도시와 농촌, 왕당파와 친탁신파의 대립은 수면아래에 잠복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5월에도 선거로 당선된 탁신의 동생 잉락 친나왓 총리가 이끄는 정부를 뒤엎은 군부 쿠데타를 기다렸다는 듯이 불과 닷새 만에 승인했다.
최근 총선에서 탁신계가 계속 승리한 것을 감안해보면 국왕 서거를 계기로 탁신 진영에서 다시 세력을 결집시키고 정국에 격변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금주 및 파티 1개월과 애도기간 1년을 선포한 것도 이러한 격변상황을 막기 위한 포석일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군부정권이 총선을 계속 연기해오고 총리선출에 군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헌법개정을 실시한 것도 선거만 하면 탁신진영이 승리하는 것에 대한 경계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면서 푸미폰 개인의 영향력과 인기에 군부정권의 정당성을 의지해왔던 왕실과 군부는 일단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군부통치의 정당성을 국왕의 권위로 지탱해 왔으나 국왕의 서거로 이를 지탱해줄 정당성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또 내년 총선을 예정대로 치르겠다고는 하나 실시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쁘라윳 총리가 왕위 계승자로 밝힌 왕세자인 마하 와찌랄롱꼰(64)은 푸미폰만큼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와찌랄롱꼰은 세번의 이혼경력을 포함 수많은 여성편력과 기행으로 해외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들이 왕세자보다 공주를 더 존경한다는 얘기는 태국내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태국 왕실은 왕세자의 요청으로 후계 추대 절차를 미루고 섭정 체제를 택하기로 했다. 와찌랄롱꼰 왕세자는 최소 1년의 애도기간을 두고, 왕위승계를 비롯한 다른 문제는 이후에 논의하자는 뜻을 밝혔다. 왕세자 와찌랄롱꼰이 예정대로 왕위를 승계하든 아니면 막판에 공주 등 다른 인물이 승계를 하든 태국왕실의 권위는 크게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태국정정 불안으로 베트남 매력 부각 전망

어쨌든 태국 국왕의 서거로 향후 태국정국이 더욱 불투명해짐에 상대적으로 베트남의 정치적 안정이 부각될 전망이다. 그동안 태국을 너무 사랑해온 일본기업이 태국에 대한 투자를 줄여가고 있고 대신 베트남을 대안으로 삼는 배경에는 태국의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쟁력 저하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향후 예상되는 태국의 정정불안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CP그룹, 센트럴그룹, SCG그룹, 싱하맥주 및 창맥주 등 태국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는데 국왕의 서거에 따른 태국정국 불안가능성을 감안하면 태국기업의 베트남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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