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18,Friday

제 2의 도이머이로 도약준비하는 베트남

올해는 베트남의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 정책이 발표된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도이머이 정책이 있었기에 베트남은 저소득국을 탈피해 중소득국(中所得國, middle income country) 진입에 성공했고 한국입장에서 보면 기회의 땅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베트남 직접투자(FDI) 1위국을 기록하고 삼성전자가 베트남 매출 2위 회사에 등극할 수 있었던 계기로 작용했다.
도이머이(Đổi Mới). 도이는 바꾸다, 머이는 새롭다는 의미의 순수 베트남어다. 도이머이를 직역하자면 ‘새롭게 바꾸다’이고 의역하자면 “renovation” 즉 쇄신 또는 “reconstruction” 즉 재건의 의미다.

1986년 단행된 모이머이정책은 국내적으로는 경제를 자유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글로벌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증대시키는 정책으로 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당시기장이 발표한 페레스트로이카(재건, 재편의 의미)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이머이를 실시한 결정적인 내부요인은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이었다. 그래프를 보면 1986-88년중 베트남의 인플레이션율은 300-500%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다가 도이머이가 발표되고 시장경제의 도입과 개방정책이 실시되면서 1989년이후 안정세로 접어든후 1993년이후에는 본격적인 한자리수 물가를 달성했다. 이런 맥락에서 베트남의 1986년 도이머이를 바라보면 이해가 한결 수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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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이머이 정책은 기업과 무역이 구체화 됐는데 이는 결국 기업법의 변천과 무역협정의 체결을 통해 나타나게 됐다. 1990년 기업법 제정, 2005년 기업법 개정 그리고 2015년 기업법 재개정이라는 형식으로 글로벌 기준에 가까운 기업지배구조 환경을 준비해가고 있다.

한편 무역협정의 경우는 2000년의 미국-베트남 쌍무협정(BTA)체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이후 2007년 WTO가입으로 큰 획을 그린 후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TPP참여 및 타결 그리고 한국-베트남 FTA, EU-베트남 FTA 등으로 최고조에 달하는 상황이다. 무역협정의 무제한적 추구를 통한 경제성장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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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도이머이로 개방이 시작된 베트남의 경제발전은 괄목할만 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 경쟁국에 비해 뒤처지는 상황으로 캐치업을 위한 전략수립을 요구했다.
이에 발맞추어 베트남당국은 개혁과 개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오히려 가속화시키는 방안을 통해 경쟁국에 대한 캐치업(catch-up)을 달성하는 전략을 세운 듯 하다. 내부 자율적인 요인인 개혁개방과 외부의 요인인 중국의 고비용화, 대미갈등이 작용하면서 베트남은 외국인투자활성화 4대 조치로
1) 시장경제제도개선
2) 투자인프라 확충
3) 국유기업 민영화
4) 금융시장 발전 추진
을 발표했다. 이는 도이머이정책의 흐름에 이어지는 제2 도이머이 정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시장경제강화, 민영화 가속화, 대외개방 확대, 금융시장 발전이라는 처방을 통해 경쟁국에 비해 뒤쳐진 경제상황을 캐치업(catch-up)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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