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6,Monday

돌팔이 (QUACK)

chao-column

올해로 대한민국이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이하 ‘OECD’)에 가입한 지 20주년이 되었다. 1996년 10월 25일, 29번째 OECD 회원국 가입협정에 서명했을 때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이 컸다. 1997년에 닥친 외환위기와 2008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시련 속에서도 경제 외형을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세계 9위로 올라섰고, 세계 6위 수출 대국이 됐다.

어느 일간지에 나온 기사 중에 뽑은 글인데, 이 글을 서두에 올리는 이유는 당시의 상황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너무나 유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IMF와 같은 두려운 결말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하며 쓰는 글이다.

96년 소위 선진국 모임이라는 OECD에 가입하고 난 후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산소 같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씨, 스스로 머리가 모자란 줄은 아는지, 머리가 나쁘면 머리 좋은 사람을 찾아서 쓰면 된다며 육체가 건강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해맑은 소리나 읊조리며 나라를 선진국의 문턱에 들여놓았다고 자화자찬 하던 중, 머리 나쁜 자신의 아들 김현철이가 뭐 ‘나라사랑본부’니 하는 조직을 만들어 한보철강과 여러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돈을 빼내서 여론 조사를 한다느니 하면서 지인들과 흥청대며 국정을 맘대로 주무르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IMF를 맞는다.
국가를 IMF 환란의 막장으로 끌어낸 김영삼은 온 국민을 거리로 내몬 실패한 대통령에, 자신의 아들을 감옥에 보낸 무능한 아버지로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한국의 좌파 수장 김대중에게 정권을 넘기며 남남갈등의 확실한 기반을 닦아 놓는다. 그래도 당시 세계적인 인권주의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적 명성이 IMF 환란에서 일찍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당시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금 모으기 운동 등 기상천외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간신히 1년여 만에 환란에서 벗어난 후 다시 정진을 한 지 이제 고작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20년 만에 어쩌면 이리도 똑같은 인재가 다시 일어나는지 정말 통탄한 일이다.
20년 전에는 김현철이라는 돌팔이가 주역을 맡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전문 돌팔이의 등장이다.
돌팔이는 영어로 ‘quack’이라고 한다. 쓸데없이 꽉곽거리는 거위의 울음소리를 빗대어 돌팔이를 표현한 것이다.

평생을 남의 눈을 속이며 대충 살아온 돌팔이는 본능적으로 먹잇감을 알아본다.
최태민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이자 돌팔이가 찾아낸 먹잇감은 너무 거대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큰 영애가 아니던가? 아마 그도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던져나 보자 하며 던진 미끼를 이런 거대한 먹이가 망설임 없이 덥석 문다. 그들마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와우! 돌팔이 개업사상 최대어가 물렸다. 돌팔이 업계의 기념비적 사건이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미끼는 너무 너절했다. 일반 사람이라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미끼인데 그녀이기에 넘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대어에 너절한 미끼, 기가 막힌 조합이 아니던가?

박근혜,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가?

그녀와 최태민의 요상한 관계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 이미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래도 박정희의 딸인데 하는 믿음으로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부친과 같은 엄격한 수장이 되리라 기대했건만 그녀는 그들의 신뢰를 깔끔하게 뱉어버렸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도 역시 당시 큰 영애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가 한 몫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10.26 사태의 주범인 김재규의 재판 기록을 보면, 당시 중앙 정보부 부장이던 김재규는 최태민을 수사하여 그의 부정 부패가 모두 영애의 이름을 업고 저지른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했지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최태민을 직접 친국을 하고도 자신의 수사를 받아 들이지 않은 것도 10.26 사태를 일으킨 김재규의 불만 중에 하나였다고 밝혔다. 그가 이 기록을 대통령 가족에 관한 일이라 공개 재판에는 밝힐 수 없지만 기록으로는 꼭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쓰러지고 반려자를 잃은 박통은, 참모들과 각국의 지도자들로부터 재혼을 주문 받지만 육여사를 대신하여 퍼스트레이디 역할에 푹 빠져있는 근혜가 안쓰러워 차마 재혼은 말로 못 꺼내고 외로운 홀아비로 지내며 궁정동 안가에서 부하들과 시름을 달래다 그들의 손에 비명횡사를 하고 만다.
역사에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만약 근혜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내려놓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가를 했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그런 화를 당했을까?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그녀는 대통령이 된 후 정치를 잃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나름대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세워져 있는 듯이 보였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는 공인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 개념인 공사의 구분을 잃은 듯하다.
정치란 모든 국민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게 하는 일이다.

춘추전국시절 노나라 경공이 묻는 정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고 아주 간단하게 정치를 정의한다.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그녀는 국정의 최고 수반이 된 후에도 자신의 직분이 어찌 바뀌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사사로운 친분에 묶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대과를 저지르고 만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국가 기밀에 속한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과문을 읽어 내리는 그녀는 결코 우리가 기대하는 대한민국 지도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많은 국민들이 진짜 궁금한 것은 그녀의 참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아직도 못보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만들어진 착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모든 국민들이 갈등을 한다.

박근혜, 그녀는 여전히 국민들이 의지하고 기대를 걸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아니면 그저 너절한 돌팔이들에게 희롱당하고도 현실을 못 깨닫는 하찮은 인물인지에 대한 판단을 우리가 아직도 유보하고 있는 까닭은,

우리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 나라의 이름으로 영원히 살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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