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노먼 록웰 NORMAN ROCKWELL

요즘 베트남 호치민에 비가 옵니다. 우중충하고 습했던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는 12월인데 비가 옵니다. 누군가 “언제 베트남 여행하기가 제일 좋아요?”하고 물어오면 “우기가 완전히 끝난 12월이면 낮에는 뜨겁지만 오전 오후는 선선한 날씨에 비도 안 와서 여행하기에 딱 좋아요.”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마치 그 말을 비웃는 듯이 올해는 이상하게 자꾸 비가 옵니다.
또 “베트남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어때요?” 누군가 물어옵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글쎄요. 날씨가 더워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영 안 나요.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길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해 놓아서 그걸 보는 순간 ‘아,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돌아왔구나.’하고 떠오르기는 해요. 진짜 눈이 아닌 스티로폼으로 만들어놓은 눈과 눈사람도 어색하면서 정겹고요.” 겨우겨우 대답을 해내곤 합니다.
베트남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크리스마스는 물론, 설날, 생일 등 기념일들이 무덤덤하게 평소와 별다르지 않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저를 위해, 그리고 베트남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실 분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미국의 국민화가’, ‘가장 미국적인 예술가’ 혹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화가 ‘노먼 록웰’입니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그림은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친숙한 화가입니다.
제가 이 화가의 이름이 ‘노먼 록웰’이구나 하고 알게 된 이야기를 조금 곁들이겠습니다. 이 칼럼은 항상 제 이야기 반, 화가의 이야기 반으로 범벅된 글이니까요. 친한 화가에게 이 록웰의 화집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 그림과 록웰의 그림이 닮은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와 앞으로도 열심히 좋은 그림을 그리라는 이야기를 함께하면서 주셨습니다.
이 넘사벽 화가의 화집 표지를 보면서,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말도 안 돼. 선물을 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내 그림과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보면 볼수록 자꾸 이 넘사벽의 화가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만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의 그림을 볼수록 점점 빠져들어서 화집을 보는 내내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생동감 있게 그릴 수가 있지?’, ‘그림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지?’, ‘색은? 색을 어떻게 이렇게 썼을까?’, ‘진지할 때는 진지하고 어떻게 이렇게 위트 있을 수가 있지?’, ‘연출된 구성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일상이나 이웃만 그린 것이 아냐. 사회적인 문제도 다뤘어.’ 그저 한 장의 그림이기에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정지 화면처럼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그의 그림 속에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야외의 소음 등 생활의 소리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움직임이 어우러져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그 시대, 그 시절의 미국의 생활을 살짝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도 훌륭하지만 나도 훌륭하다는 말을 누가 한 번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 록웰이 아들에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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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웰 생전에는 스스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칭했을 정도로 그림은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작가로서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현실을 미화한 수준 낮은 그림이라고 깎아내렸고요. 지금은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20세기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힐 만큼 다시 재평가, 재조명 받고 있지만요.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목이 말라서 조금이라도 느껴보기 위해 무작정 거리로 나가 방황하고 헤매고 다녔습니다. 전통적인 초록색 트리로 장식된 곳을 지날 때에는 ‘더운 날씨의 크리스마스랑은 안 어울려. 더 더워 보이고 무거워 보여.’ 밝은 하얀색 전구로 범벅이 되어있는 곳을 지나가면서는 ‘빛이 너무 차갑네.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분위기가 안 나네.’ 하고 제 맘대로 제멋대로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더라고요. ‘우이씨. 12월인데 또 비야!’하고 툴툴대던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지금 베트남이 겨울이라면, 한국처럼 영하의 날씨였다면 이건 비가 아니라 눈이었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12월에 맞는 그 비가 눈처럼 느껴져 즐겁게 발걸음 가벼웁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급으로 무시받던 삽화와 고급처럼 대접받던 회화. 그의 그림 속에서 만큼은 그 경계를 무너뜨린 노먼 록웰처럼 크리스마스에 짜증나는 비가 오더라도 환영 받는 눈이 오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길 바라며 오늘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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