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자동 번역기가 나온 세상에서의 영어 공부

“우리는 공부에 목숨을 건다. 특히 영어에 관한 한 물불을 안 가린다. 심지어 영어를 익히기 위해서 아이를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고 가족이 생이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올인하는 목표인 ‘영어를 잘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는 의외로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이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 영어를 잘하는 것을 혼동하는 경우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한국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유학파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캥거루 족으로 전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수많은 돈과 시간을 바쳤지만 실제로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의 차이를 통해 언어 공부의 본질을 깨우쳐보자.”

자라나는 세대가 영어를 잘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거에는 영어를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희소성이 있었다. 하지만 조기 영어 교육과 유학 열풍이 휩쓸고 간 요즘에는 영어를 하는 것만으로는 희소성이 없다. 한마디로 개나 소나 다 영어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업무 능력이나 부가가치 창출로 연계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영어로 상대방을 설득해서 계약을 성사시키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의미가 생긴다.

AI시대에 더욱 절실해지는 영어 공부

‘알파고’의 부상으로 요즘 들어 AI에 대한 인식이 크게 늘어났다. 어떤 이들에게는 AI가 공상 과학 소설로 들릴지 몰라도 AI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고 있고 지금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당연한 현실 환경이다. AI로 인하여 사라지게 될 직종 중에 기자도 포함된다. 이미 AI가 많은 기사들을 써서 전송하고 있고 그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기에 기자가 위험 직종으로 분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엄격하게 따지면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형태의 기사를 앞으로 사람이 쓰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칼럼니스트가 쓰는 형태의 글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최소한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하다. 통찰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대를 조성하는 글은 AI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 변환 혹은 통역은 어떨까? ‘알파고’의 주인인 구글이 다른 여러 서비스를 제쳐주고 ‘Google Translate(구글 번역기)”를 도입하여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을 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굳이 상대방의 언어를 몰라도 AI번역기가 훌륭하게 의사 소통을 해결해 주는 시대가 눈 앞에 와있는 것이다.
만약 AI가 완벽한 통역으로 언어 장벽을 해소해 준다면 힘들게 영어를 배워야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당연히 ‘Conversational English(대화용 영어)”는 배울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AI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예처럼 사실 관계의 기사는 AI가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쓰고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서 쓰는 것도 인간은 AI를 따라갈 수 없다. 한마디로 정보 전달에 관련해서는 인간이 AI를 이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조성하는 글은 AI가 흉내내기 힘들다. 공감은 사고와 논리만이 아니라, 감성과 윤리 의식, 공유하는 문화적 배경 등 훨씬 더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단어의 조합과 문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보다 AI가 월등히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체계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내가 쓰는 한국말의 사고 체계와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어떻게 메울지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숙련된 영어를 할 때 비로소 영어를 잘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 혹은 여러분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영어 교육을 받고 있을까? 여기 아주 쉽고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보자. 우리말로 ‘존경’이라는 말이 영어로 ‘Respect’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열거하라고 하면 세종대왕, 이순신, 링컨과 같이 대체적으로 죽은 위인들을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국 아이들에게 “Who do you respect?”라고 물으면 죽은 위인이 열거되는 경우는 없다. 왜 일까? 그것은 ‘Respect’라는 말의 의미나 사용 방식이 우리말의 ‘존경’과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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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Respect’는 체험을 통해서 존중해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통째로 존경하지만 영어에서는 어떤 사람의 한 부분만을 Respect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어떤 행위만을 Respect할 수도 있다. 또한 체험적으로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기에 어중간하게 알아서는 사용할 수 없다. 죽은 위인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영어의 ‘Respect’에는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내포되어 있기에 일정 정도 이상의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처럼 편지 서두에 존경하는 아무개라고 수식어같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만약 ‘Respect’는 ‘존경’이라고 배우고 넘어 갔다면 영어를 배우는 것은 맞을지 몰라도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지도했던 학생들에게 단 한번도 문법을 지적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문법이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말로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소통 가능한 형태로 사고하고 공감이 가능한 형태로 생각을 정리한 이후에 그것을 말로 전달할 때 필요한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결국 내가 정리한 생각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할 지를 고민하다 보면 문법이 절실해지고 자연히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사고 체계의 벽을 넘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반석으로 삼은 후 그 위에 영어라는 언어의 집을 세우는 것이 바로 영어를 잘 하는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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