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베트남에서 마지막 열정을


허방빈이라는 이름은 베트남의 교민사회 초기에 정착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 호찌민 대한민국 총영사를 역임한 허방빈 총영사는 이후 리비아 대사로 근무하고 은퇴를 한다. 왜 그의 이름이 교민사회 초기의 교민들에게 깊은 기억을 남겼는가 하면, 그는 적극적으로 교민사회의 일에 참여해온 탓이다. 또한 그가 행한 역할이 우리 교민사회에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92년 한베 수교 후 초대 호찌민 총영사로 부임한 허방빈 총영사는 전쟁 전과 완전히 다른 정부가 들어선 베트남과 다양한 거래를 해야만 했다.

한인회관을 베트남 정부로부터 환수한 총영사.

특히 그가 베트남 정부와 거래한 내용 중에 가장 관심이 갈만한 일이라면 현재 영사관 별관 건물로 등재된 한인회관을 회수한 것이다. 그는 총영사로 부임한 후 우리 한인회관이 전쟁 전에 세워졌고 종전 후 베트남 정부에 흡수 되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베트남 정부와 건물 환수를 위한 딜을 시작한다. 그때 그 건물은 공산당 청년 연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자국의 청년 당원들의 연수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을 돌려 달라는 것이 당시로써는 말도 써내기 힘든 상황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허 총영사는 기지를 발휘하여 이 건물을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친선 교류의 장소로 사용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며 반환을 청구하자 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일은 덮고 함께 미래를 향해 나가자라는 기치 아래 그 건물을 반환을 허용한다.
그리고 허 전 총영사는 그 건물을 총영사관 별관 건물로 등재를 하고 건물을 수리하기 위한 예산을 대한민국 정부에 요청을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 건물의 주인이 정부인지 혹은 민간기관인지가 확실치 않아서 예산 배정이 당분간 힘들 것 같다는 답을 내놓는다. 전쟁을 거치면서 유지 보수를 한 적이 없는 건물이니 몰꼴이 말이 아니었다. 고민이 쌓여가는데, 마침 그때 한국의 안기부로부터 연락이 온다. 한국 외국어 대학이 그 건물을 동남아 문화 사업에 사용하려고 하니 외국어 대학에서 사용하게 해 주라는 의견이 들어온다. 당시 안기부장인 김덕씨가 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있던 터라 외국어 대학교의 입김이 막강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별 잠음이 없다면 그렇게 사용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지만, 당시 교민회에서 크게 반발을 하며 한인회관 건물이니 교민들이 써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어 결국 한인회(이순흥, 박상수, 이성재)와 안기부의 박창택 영사를 한자리에 모아 회의를 한 후 두 단체에서 상호 협의 하에 사용하라는 결론을 내주고 이 일에 대한 매듭을 지었다고 말한다. 그 후 바로 임기를 마쳤기 때문에 어떤 계약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계약의 형태가 이 기간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호찌민 총영사관에서 외국어 대학을 대리한 단체에게 기부 체납 방식으로 20년을 계약했다고 할 때 일면 수긍이 가는 면이 있었지만 최근 이 계약이 30년으로 되어있다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총영사관에 확인한 결과 1996년부터 9월 30일 부터 2025년 9월 29일까지로 계약이 되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초기에 20년 운운한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허방빈 전 총영사는 임기 말기에 영내에서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는 투서를 내는 바람에 자주 한국에 드나들며 해명을 하느라고 당시 계약이 있었다는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은 절대로 그런 계약서에 서명을 한 기억이 없다고 완강하게 계약 자체를 부인한다.
원래 공공시설에 민간이 참여하여 건물(시설)을 지운 후 일정 기간 사용권을 행사한 후 그 기간이 지나면 정부에 반납하는 방식인 기부채납 방식은 그 기간이 최장 20년이라고 못 박혀있다. 그런데 이 계약은 30년으로 되어있다. 무엇인가 잘못 된 형태다. 원래 계약이 20년인데 교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계약기간을 연장한 것인지 우리 같은 일반 교민들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그 계약은 20년으로 되어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는 증인이 두 명이나 나섰다. 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이 건을 정부에 문의하여 확인하는 것은 어떻겠는가? 허 전 총영사는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차후 본지에서 한국 정부와의 질의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고 이제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살고 있는 75세의 노신사 호방빈씨에 대하여 알아보자.

외교관에서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보청기 전문가로 변신.

그는 현재 호찌민 탄빈군에 있는 전시장 근처에서 보청기 숍을 운영하고 있는데 사무실을 포함하여 전국에 깔려 있는 지사가 5개나 된다. 재임기간동안 귀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보청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베트남에서는 구하기 힘들어 싱가폴까지 가서 구해온 경험이 있어 아직 베트남의 보청기 시장이 열악하다는 생각에 은퇴 후 이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세계의 유명 보청기 브랜드 3개의 에이젠트를 하고 있는데 자체적으로 개인의 청력에 알맞는 보청기를 제작할 수 있는 설비를 완전히 갖추고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청기 가격은 800불에서 2000불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있고 한국보다는 50% 정도가 저렴하다고 한다. 그렇게 저렴하고 현대화 된 설비로 인해 한국에서 필요로 하시는 분들도 일부로 베트남까지 와서 보청기를 맞춰간다고 한다.
요즘 공직을 떠나 일반 민간인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며 잠시 눈을 감는다. 한 생을 외교관으로 전 세계를 누비다 이렇게 자영업을 하게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할만 하다. 그는 지금 누가 대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하라고 해도 안한다고 못을 밖는다. 공무원으로 33년을 지냈지만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과 상호 음해, 투서 등, 반갑지 않은 경험을 한 탓인지 공무원에 대한 감정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같은 부서의 동료를 걸핏하면 음해 투서하는 행위는 우리 공무원 사회의 미래를 위하여도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고 투서받은 사람은 그 투서의 사실 여부를 떠나 무조건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바로 복지 부동을 조장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힌다. 그런 상황하에서 누가 개혁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공감가는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호찌민에는 많은 은퇴 공관원들이 이 곳에서 일반인으로 생을 영위하고 있다. 대강 알고 있는 사람만 꼽아도 한 쪽 손가락은 다 채운다. 그런데 이들은 은퇴 후 교민들과 교류가 없다시피하다. 왜 그런가? 허 전 총영사는 이에 대하여, 그만틈 재임기간 동안 교민들과의 교류가 형식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운을 때며, 이제 15만명에 가까운 대규모 교민사회가 이루어 졌으니 이제는 공관원에 관계없이 교민 한사람 한사람의 애환을 챙겨주는, 시스탬으로 운영되는 공관이 되기를 바라고, 공관원들은 진정한 국민들의 충북으로 교민들의 이국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는 책임감을 유지해야 한다며 선임 공관원으로써의 소감을 털어 놓는다. 외교관으로서의 멋진 넥타이 대신 보청기 전문가로서의 흰 가운을 차려 입은 허 방빈씨, 이 또한 멋지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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