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0,Saturday

뗏(Tết)

뗏! 뗏! 뗏! 뗏! 덴 죠이 ~ 뗏! 떼레떼떼 덴 죠이~
(Tết Tết Tết Tết đến rồi ~ Tết Tết Tết Tết đến rồi ~)
쑤안 다 베~ 쑤안 다 베~
(Xuân đã về, xuân đã về~)

베트남의 음력설인 ‘뗏(Tết)’이 다가오면 길거리에서도, 마트에서도, 자주 귓가에 들리는 노래입니다. 전혀 베트남어를 모르던 시절에는 무슨 뜻이지를 몰라서 무심히 지나치곤 했었는데, 베트남어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면서 어느 해에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뗏 덴 죠이(Tết đến rồi)”는 뗏이 왔다는 뜻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쑤안 다 베(Xuân đã về)”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쑤안(Xuân)’은 베트남어로 봄이라는 뜻이어서 ‘봄이 돌아왔다’라는 뜻인데 그 당시에는 ‘설과 봄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지? 한국의 설날은 추운 겨울인데. 그리고 여기는 항상 여름이잖아’라는 지극히 외국인적인 시각으로 베트남의 설 ‘뗏’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생소했던 것은 베트남 수박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 집 앞에 수박장수가 오토바이 리어카 같은 것에 수박을 잔뜩 싣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동그란 수박만 보다가 난생처음 보는 길쭉한 수박 비주얼에 충격을 받았었죠. 모양은 조금 이상했지만 맛은 비슷해서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했더니 얼마 안 되어서 또 다시 충격을 받습니다. 며칠 후 수박을 사서 수박을 잘라봤더니 이번에는 속이 노랗더군요. ‘진정 평범하고 동그란 수박은 없는 것인가?’ 하고 실망 비슷한 것을 하려고 했더니 갑자기 마트에 길쭉한 수박 말고 동그란 수박이 쌓여있기 시작했습니다. 설이 다가와서 새해 첫날 한 해의 길운을 점치는 동그란 수박을 갖다 놓은 것이었죠. 요즘에는 길쭉한 수박과 더불어 동그란 수박도 일 년 내내 마트에서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베트남에는 없을 것 같던 동그란 수박의 존재가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맞이했던 뗏의 첫인상은 당황 그 자체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을 쇠러 고향으로 돌아갔기에 음식점, 시장, 대형마트 등 거의 모두 문을 닫고, 다시 문을 여는 새해 첫날 시작 날은 좋은 날을 받아서 열려고 아주 늦게 문을 여는 것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지요. 미처 설 지낼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베트남에서의 첫 설날은 사다 놓은 생수가 떨어질까봐 전전긍긍 하며 마트가 문을 여는 날을 초조하게 기다리곤 했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내공이 쌓인 만큼 냉장고가 터질 정도로 설날을 미리미리 준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대형마트들이 그때보단 적게 쉬고, 설 연휴에도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도 꽤 늘어나서 그때보다는 걱정이 덜 되긴 합니다.

제가 외국인의 눈으로 베트남을 바라봤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봤던 외국인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화가들이 한국을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그렸지만 그 중 한국적인 느낌도 물씬 풍기면서 더불어 설날의 느낌도 듬뿍 풍기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소개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영국 출신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입니다. 1919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던 그녀는 1939년까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며 한국의 풍경과 풍속, 인물 등을 생생하게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면 서양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에이, 서양인이건 동양인이건 뭐가 중요해? 화가니까 당연히 잘 그리겠지!’ 하고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처음 베트남에서 스케치 여행을 떠나서 베트남 사람들을 모델로 그릴 때에 가장 어려웠던 것이 한국인 느낌이 나게 않게 인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린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이었지만 묘하게도 베트남 친구들이 그린 사람과 다르게 약간은 한국인 다운 모습이 나오곤 했었거든요. 마찬가지로 한국을 그린 다른 외국인 화가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의 인물이 일본인 같거나,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한복을 입거나 갓을 과장하여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의복은 한국적이지만 얼굴은 짙은 쌍꺼풀의 서양인이나 아프리카인의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은 그들과 다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일본 전통 목판화-우키요에 양식으로 한국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색이 느껴지기는커녕 참 한국적으로 느껴집니다. 따뜻한 시선과 한국적인 다채로운 색상으로 구성된 그녀의 그림은 뛰어난 관찰력과 연출력으로 전통 의복도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배경에 전통적인 소재를 배치하기도 하고, 생략도 하면서 한국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듬뿍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 중에는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 일본, 중국, 필리핀을 소재로 한 작품보다 많고, 방문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 대한 저서를 남겼다고도 합니다.
그녀에 대해서 쓰다 보니 갑자기 베트남 ‘뗏’에 대해서 ‘봄은 무슨 설날은 겨울이지!’ ‘수박은 동그래야지!’ 하고 불평하거나 못 받아들이며 툴툴거렸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매 번 고정관념을 깨자고 글을 쓰면서도 마치 한국을 제멋대로, 눈앞에 보이는대도 상상처럼 그렸던 다른 외국인 화가들처럼 우기고 있었나 봅니다. 그림 속에 제대로 한국을 담으려고 노력한 엘리자베스 키스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따라서 새해에는 아무 편견 없이, 자꾸 한국과 비교하지 않고, 베트남만의 ‘뗏’을 그리고 나아가서 베트남을 제대로 바라봐야겠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서, 어디에서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축 멍 남 머이(Chúc Mừng Năm Mớ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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