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8,Thursday

약속

약속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보다 누군가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정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속이란 자신이 사회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고 정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국가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이었다.
전세계가 식민지와 피식민지로 분리되어 서로의 힘을 보여주던 때,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35년간 치욕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가 일본 독일 이태리와 싸우던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자 대한민국은 한 것도 없이 꽁짜로 나라의 해방을 맞이한다.
연합군의 힘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지 5년만에 다시 같은 동족끼리 총 뿌리를 겨누며 철지난 이데올로기 싸움을 하다가 잠시 총 뿌리를 거두고 서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 채 67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우리는 지난 67년 동안, 전쟁 중이었지만 그래도 큰 변고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천재지변이나 어쩔수 없는 사고도 있었지만 특별하게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별다른 사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대통령 탄핵만 빼고). 오히려 우리를 수십 년간 지배하던 일본은 지진, 쓰나미, 화산에 원전 사건 등, 겪지 않아도 될 천재지변에 시달려왔고 아직도 그 영향권에서 완전하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지구의 동쭉 끝 한반도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그러나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주며 세계 10여 위 안에 드는 강소국가로 버티고 있다.

필자가 30여년 전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역시장에 뛰어들어 무역을 하며 호구책을 마련할 때 제일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약속 시간이었다. 당시 한국에는 코리언 타임이라고 불리던 시간이 있었다. 왜 코리언 타임인가? 우리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시계도 없었고 시간에 대한 관념도 명확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면 대충 말들을 했다. 건너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죠? 하면 거의 다 왔어요, 한 식간 정도가면 되겠네요. 식간이란, 끼니와 끼니 사이라는 의미의 순수 우리말로 식사 후 한 2시간 정도가 지나면 식간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간이란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해 정해진 대강의 시간이었다. 그 당시에는 시간을 정확히 맞춰 누구를 만난다던가 하는 일은 우리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시의 생활이라고 해 봐야 농사일이 전부고 누구를 만나다고 해봐도 동네사람들의 애경사가 모두인데 그리 칼같이 시간을 지켜 뭘 하랴? 독일인 친구가 있었다. 사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20여년을 가깝게 지내왔는데, 그 당시에도 코리언 타임이 유명했던 터라 그 친구와 만나는 약속을 하게 되면 먼저 이 약속이 어떤 성격인가부터 규정짓는다.
2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우리는 먼저 Sharp 2pm or Casual? 하며 그 약속시간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내린다. 상업적인 약속이라면 엄격하게 시간을 지켜야 하고 그저 차나 한 잔 마시는 일이라면 10여 분 쯤 늦게 온다고 해도 탈 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Casual meeting이란 엄격하게 시간을 안 지켜도 크게 무례가 되는 일이 아니니 시간에 쫓기며 만나지 말자는 것이다.

아무튼 당시 한국인은 약속을 하면 한 두 시간 쯤 늦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침에 약속을 하면 저녁(?)에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서 살던 외국인에게는 한국인들과 약속은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임해야 낭패를 안 당한다는 것이 통설처럼 굳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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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우리가 이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약속을 잘 지키는 민족으로 등장했다. 얼마전 하우스메이드가 하는 말, 자신이 돌보고 있는 또 다른 한국 가정집에 청소시간에 갔더니 한국인 처녀가 없더란다. 잠시 후 한국인 처녀에게 전화가 와서 하는 말, 5분 늦어요 곧 도착합니다. 하며 전화가 오더라는 것이다. 베트남인들에게 5분이란 별로 중요한 시간이 아니다. 5분을 늦으며 5분 늦는다고 전화를 하는 한국인 처녀는 너무나 시간관념이 철저하여 편집증 환자처럼 보일 정도다.
그들이 하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자니 쓴 웃음이 절로 난다. 코리언 타임이 언제인데 이제는 한국인들은 시간을 끔찍하게 지키는 천상 장사꾼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에 20 여 년 전에 왔을 때도 당황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약속시간이었다. 하루는 베트남에서 내노라하는 셔츠공장에 기계를 상담하기 위하여 방문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사장이 안 나타난다. 한 30 여 분을 더 기다리다 안오는구나 하며 집에 돌아왔는데, 그 사장이 전화를 해 왔다. 그런데 전화가 좀 이상타. 만나자고 요청을 한 쪽은 그 회사 사장이고 자신이 안 나와서 온 손님이 돌아갔다면 사과 전화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 친구는 오히려 나에게 왜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느냐며 은근히 책망을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베트남에서는 사장을 만나려면 한 두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세요, 그렇게 자연스런 일이거든 당신이나 많이 하세요 하고 속으로 핀잔을 주고 다시는 거래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프랑스 유명 셔츠 브랜드를 만들어 팔고 있는 그 회사 가게를 시내에서 마주하게 되면 그 셔츠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단순히 한번 약속시간을 어기고 무례하게 손님을 대한 행태는 20 여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그 제품의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니 약속이란 단순히 만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약속은 단순히 만날 시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약속이란 가장 근본적인 언약이자 최소한의 결정이다. 그래서 이런 시간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과는 어떠한 일도 함께 도모하지 마시오. 라는 경고나 마찬가지다. 하긴 약속시간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과 무슨 일을 도모하려 하는가?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에서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필자의 속을 부글거리게 만드는 일 중에 하나다.
아직도 베트남인들의 시간 약속은 조선시대의 코리언 타임과 다를 바가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회사 밖에서 일을 돌봐주는 젊은 베트남인이 한명 있다. 총명하고 공부도 할만큼 했고 영어는 필자가 베트남에서 만난 젊은이들 중에서 가장 잘하는 부류고 일에 대한 관심도 철철 넘쳐올라 조금만 교육을 시키면 아주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이 친구에게 약점이 있는데 바로 약속시간이다.

지난 2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그 친구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며 간을 보고 있는 중인데 유감스럽게도 시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 사회에서 일을 하기 위하여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것이 많다. 학교를 12년 이상 다니며 훈련을 마쳐야하고 가정과 학교생활을 통해 사회에서 익혀야 할 것을 갖추고 드디어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러나 아무리 다른 일을 다 잘하고, 또 할 준비가 잘 되어 있지만, 이 친구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이유만으로 아직도 정식사원으로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 약속에 대한 관념이 투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약속 하나를 지키지 못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이 부인되는 상황이 온다면 실로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약속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일보다 누군가와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정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약속이란 자신이 사회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고 정한 것이다.”

개인의 약속도 아니고 사회와의 약속을 그것도, 가장 기본적인 만남의 시간을 안 지키는 인간이 실제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어휴, 간신히 마감시간을 지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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