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December 15,Friday

프란츠 마르크

푸른 말들 1911

말이 있는 풍경화 1910


나 : (자신감없는 목소리와 무미건조한 한국인 말투로) 디 써 투 (Đi sở thú) –
택시기사 :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
나 :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해서 머뭇거리며) 타…오…깜…비…에…………엔? 타오 깜 븨엔(Thảo Cầm Viên)
택시기사 : (활짝 웃으며) Ah! , Thảo Cầm Viên, sở thú! sở thú!

동물원을 가려고 무작정 택시를 탔는데, 단어가 가물가물해서 성조를 틀려버렸습니다. 저렇게 발음했어야 하는군요. 타오(꼬아주고) 깜(내려주고) 엔(평범하게), 서(꼬아주고) 투(끝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이 동물원을 갔던 때가 10년 전쯤인데 그동안 이 단어를 쓸 일이 거의 없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네요. 오늘 성조를 마구 틀린 이 기억이 강렬해서 다신 안까먹을 것 같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어느새 Thảo Cầm Viên 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동물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입장권의 가격을 보니 한번 더 흘러간 세월이 새삼 느껴집니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가득한 분위기 있는 동물원에 들어오니 신이 나서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입구부터 쭉 직선 방향으로 뛰어가서 쿵쾅거리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낡은 무대를 뒤로 한채 오른쪽 방향으로 꺾어서 계속 뛰어가봅니다. 저 멀리에 코끼리와 기린이 보이네요. 코끼리 우리 앞에 있는 2단 벤치가 아직도 있네요? 예전에 코끼리를 그리느라 그 2단 벤치에 자주 앉아있곤 했거든요. 그날따라 코끼리가 배탈이 났는지 그림 그리는 제 앞에서 묽은 변을 자꾸 배설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날의 냄새마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2~3마리 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5~6마리로 늘어났네요. 혼자 다른 우리에 있는 한 코끼리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를 반복하면서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동물인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갇혀있느라 고생입니다. 햇빛 때문이었을까요? 순간적으로 코끼리들이 빨간색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강렬한 베트남의 햇빛 때문이었겠죠.
코끼리를 자꾸 보다 보니 마음이 아파오는 걸 못 견디겠기에 그들을 뒤로 한 채 계속 걸어가 봅니다. 조금 걷다 보니 곰들이 보입니다. 제가 알던 곰들은 사람만 하고 힘이 센 무시무시한 곰들인데, 오늘 보이는 곰들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제가 키우는 골든리트리버 크기 정도로 보이네요. 새끼 곰일지, 원래 크기가 작은 곰인지 궁금해집니다. 곰들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어릴 적 꿈이 떠오르네요. 아주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동물원 사육사가 꿈인 적도 있었습니다. 큰 동물원 안에서 살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동물들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동물들을 위해서 사육사가 된다기보다는 제 만족을 위해서 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머릿속에 ‘동물원에 살고 싶

호랑이 1912

원숭이 1912

다’라는 생각과 함께 ‘동물원에 살면서 마음껏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따라오니 저는 좋은 사육사보다는 좋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횡설수설한 생각을 하며 걷고 있다 보니 눈살이 마구 찌푸려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한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고 싶었나 봅니다.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호랑이를 유리창을 두드리며, 보란듯이 도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리벽이 있기에 나오는 당당함 또는 찌질함이였겠죠. 호랑이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해 보입니다. 저러다가 만약 옆에 지나가는 해리포터가 있다면 큰 일이 날텐데 말이에요. 파충류관을 관람하던 해리포터가 어서 여기로 왔으면 좋겠네요. 그런 상상을 하고 있던 순간에 갑자기 호랑이가 빨강색으로 보였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지내는 곳보다는 유리로 막혀있어서 참 더워 보여서였을까요? 지쳐서 구석에 늘어진 호랑이도 보이구요. 말라보이기도 합니다. 호랑이를 뒤로 한채 걷다 보니 저 멀리 말들이 보입니다. ‘말은 동물원이 아니어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가끔 만날 수 있어서 그리 신기하지는 않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말, 빨간 코끼리, 빨간 호랑이, 노란 햇빛을 받은 나무들, 연잎이 뒤덮인 푸른 호수. 동물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 프란츠 마르크가 떠올랐습니다. 특히 빨강, 파랑, 노랑은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색이죠? 빨강은 무겁고 난폭한 물질문명의 색, 파랑은 엄격함과 끈기, 노랑은 부드러움과 환희, 관능을 대변하는 여성의 색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동물원 전체가 추한 인간보다는 깨끗하고 순수한 동물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인간도 동물처럼 자연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던 프란츠 마르크의 생각처럼요.
낮게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우후죽순처럼 고층 빌딩이 올라가며 현대적이고 무미건조하게 변해가는 호치민시 중심에 비록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동물원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자연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안 보이던 싸구려 놀이기구들이 동물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경관을 좀 해치고 있지만 신기한 나무도 많고,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아서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 동물원은 1865년에 생긴 아시아의 첫 번째 동물원이었습니다. 어쩐지 나무들이 보통이 아닌 것 같더라니. 쉽게 볼 수 없는 키가 엄청 크고, 뚱뚱한 몸통과 자유롭게 땅 위로 풀어헤친 뿌리들을 소유한 이 연륜 깊은 나무들 사이를 더 오래 걷고, 자주 쉬어가고 싶습니다. 동물들의 집에서 큰소리치고 위협하고 두들기는 진상 피우는 손님이 사라지고, 나아가서 이 나무들을 애써 못 본 체 하고 큰 땅에 눈 먼 사람들이 등장해 안타까운 일이 생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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