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ne 18,Friday

평온을 비는 마음

 

‘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마음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둘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라는 제목의 기도문으로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라는 신학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번 한국에서의 일이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아들애와 시국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심각한 출동이 일어났다.
아들애는 세상은 이미 변하는데 아직도 예전의 가치를 고집하는 고루하고 편협한 아비의 사고가 너무 답답하고, 그 아비는 할아버지가 목사님이고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일본 강점기 시절부터 고향인 함경북도 종성에서 만주로 또 내국으로 이리저리 추방을 당하며 박해를 받다가 해방이 되자 이번에는 소련군이 밀려와 또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는 바람에 결국 고향 근처도 못 지키고 먼 타향 땅 남한으로 쫓겨나온 집안의 내력을 외면한 채 종북 좌파가 이끄는 촛불집회나 나다니는 아들애의 행동이 고깝지 않은 탓이다. 결국 그 아비는 비겁하게도 그곳이 자신의 집임을 내세워 아들애에게 집에서 쫓겨 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함으로 그 격론을 종결시켰다.
아들애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헤프닝이 일어나자 집안의 평화가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집사람은 아들과 남편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아비 역시 마음이 불편하니 집에 돌아온 것이 후회될 정도다. 그러니 아들애의 심정은 또 어떠하겠는가? 며칠을 그런 어색한 분위기로 지내다 베트남으로 다시 떠나는 날, 그래도 아들애가 다가와 지아비 손을 특별히 꼭 잡고 ‘잘 다녀오세요’하며 힘 주어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녀석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God, 저에게 편협한 마음을 깨고 품위있는 아비가 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저 아들애가 혹시 받았을 수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소서”
이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항상 가지고 싶었던 것이 바로 마음의 평온이었다. 그런데 항상 언행은 평화를 깨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일치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셈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랐지만 정작 한번도 심도있는 대화를 그 누구와도 나눠본 적도 없고 늘 외톨이로 혼자서 사고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아이였던 터라 누구와 마음을 열고 대화를 차근차근 한다는 것은 익숙지 않은 포그와 나이프를 들고 스테이크에 마주한 촌사람처럼 불안하고 낯설은 일이다. 그런 미숙함이 아들과의 대화에서도 도출된 것이다.
베트남에 돌아온 후, 일요일 아침 숙소 창문으로 보이는 푸른 정원에 외롭게 자리한 하얀 돌벤치가 외동으로 자라나 외국에서 공부하며 항상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아들애를 연상케 한다. 흰 벤치 주변에 잘 정돈된 잔디와 마치 그 잔디를 시종으로 둔듯이 자랑스럽게 어깨를 펼치고 우뚝 서있는 큰 나무가 어젯밤 늦도록 내린 비에 젖은 흰 벤치를 안타깝게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앞을 실내복을 입은 할머니가 유아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지나간다. 정지된 풍경 속에 멈춰있던 시간이 할머니의 느릿한 걸음으로 되살아난다. 솟아나는 시간과 사멸되는 시간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삶은 시간을 애타
게 흠모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제 갈길을 간다. 일요일 정오 여전히 심란한 마음을 달래볼 양으로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지난 수년간 골프장 다니기를 마치 멀리 떨어진 처가집 들리 듯 일년에 두어번 나가곤 했다. 나이가 60이 넘으면서 드라이버 거리가 현저히 줄어 들자 남성의 상징이다 싶게 고집하던 블루티에서 화이트티로 한 발 물러나 봐도 세칸 샷에 아이언이 안 잡히는 골프가 무슨 골프인가 하며 골프장 출입을 거의 끊어버렸다. 아주 끊은 것이 아니라 거의 끊은 것은 그만큼 골프에 미련이 남은 탓이고 아직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녀와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울에서 친구라도 찾아오면 그 기회를 핑계로 다시 골프장을 찾아보지만 여전히 또 밀려드는 실망감에 머리가 쥐가 날 지경이 되고, 가득이나 곱지 않은 인상에 속마저 뒤집어지니 ‘내 근처는 얼씬도 말고 그냥 내버려둬’ 하는 경고사인이 내 행동 곳곳에서 아낌없이 묻어난다. 한창 잘 나가던 골퍼가 한번 무너지고 나면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속설이 나에게도 적용이 되는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면 영원히 골프와 이별을 할 것 같아 녹쓴 칼이라도 날은 갈아보자 하며 다시 골프장을 찾은 것이다.
골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녀(골퍼들은 모두 다골프를 여성명사화 한다)를 마음에서 내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외톨이 인생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형제들 속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은 삶을 산 인간은 무엇이든지 혼자서 감추고 스스로 즐기기를 좋아한다. 남에게 관심은 있지만 정작 그들이 다가서면 뭔가 모를 두려움 공포로 뒷걸음을 친다. 그런데 골프는 같이 해도 혼자하는 것이다, 함께 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래서 좋다. 친구가 있다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래서 더욱 좋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골프를 치는 동반자는 내가 잘치든 못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도 버릴 수 없는 매력 중에 하나다. 아마도 그 반수 이상은 내가 못치기를 바랄 것이다. 잘치면 내가 좋고, 못치면 상대가 좋으니, 잘치나 못치나 다 즐거움을 주는 게임 아닌가? 그리고 결코 잊어서는 안될 교훈을 골프는 갖고 있다. ‘골프는 정신이 신체를 능가한다’ 는 것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몸은 맘처럼 움직이지는 않지만 정신만 차리면, 아니 이미지만 잘 그려낸다면 스윙은 기적처럼 되살아나고 심지어 잘못친 공마저 핀을 향해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래서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골프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골프는 긍정적인 사고를 불러내는 훈련에 적합한 운동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떤 경우든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골프에서 배웠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는 마음의 평화를 불러준다. 그래서 좋다.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가는 행로, 그것이 골프장을 찾는 주된 이유가 된다. 사회에서 찾지 못하는 마음의 평화를 골프에서 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골프를 만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 어찌 아깝다 할 것인가.
골프의 신이 있다면 그에게 기도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정직한 최상의 결과를 얻게 하소서/
동시에 여의치 않은 이유로 나오는 최악의 결과도 똑같이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그 둘이 항상 같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마음의 평온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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