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나랏돈

가족을 한국에 두고 지낸 지가 무려 20여 년이 넘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은 것은 비교적 자주, 핑계만 생기면 한국을 다녀오곤 하는 탓이다.
한국에 가는 일은 필자에겐 일종의 힐링이다. 두어 달 만에 일에서 손을 놓고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의 자유, 항상 무겁게 짓눌리던 책임이 조금은 헐거워진 느낌만으로 이미 힐링이 된 셈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추가로 누리는 또 다른 호사는 게으름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기상을 하고 조간 신문을 대강 뒤적이며 늦은 아침밥을 먹고 페이스 북을 훑어보며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한가한 하루는 그동안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고 몸을 살찌게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늘보원숭이처럼 게으름을 피우는 삶이 건강에 유익할까?
적어도 뇌 건강에는 유익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치매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생활 패턴이라는 것이다. 뇌가 하는 일에 관한 것인데, 뇌의 역할은 단지 몸의 운동을 관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이 적을수록 뇌가 할 일이 없어져 세포가 죽어가며 치매를 촉진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가능한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운동하면 덜 늙는다는 조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스스로 그런 노화를 재촉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최근 들어 베트남으로 한국사람들이 몰려드니 한국의 각 지방자치 단체들이 베트남에 대표사무소를 내기 시작했다. 즉 자신들의 지방에서 베트남에 진출하는 기업들을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먼 나라 이곳에 사무실을 개설한 것이다. 대부분 교민들이 찾기 편하게 시내 요지인 다이아몬드 빌딩에 있다.
우리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무실들인데 본지도 이들을 어찌 소홀히 다룰 수 있겠는가? 당연히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인 옐로페이지 첫 장에 넉넉하게 이름을 올려드렸다. 그러자 교민들 역시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해서 본지가 총대를 매고 각 사무소에 취재 의뢰 요청을 정식으로 보냈다. 단 3군데에서만이 취재 및 인터뷰를 받아 드리고 나머지 단체는 묵묵소식이다. 일단 오케이를 한 사무소 3군데와 일정을 조정하고, 시간을 내서 방문 취재하고 인터뷰를 한 후, 몇시간에 걸쳐 글을 쓰고, 수차례 수정을 하고, 기백 장 찍은 사진 중에 잘된 것을 뽑아서, 디자이너 힘을 빌려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풀 칼러로 인쇄하여, 떡본 책으로 만든 후, 베트남 전역에 뿌려드렸다. 이 모든 과정을 순수하게 본지의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으로 무료 봉사 해 드렸다.
이 해프닝에 특징이 하나 있다. 사무소장이나 대표가 젊으신 분은 본지의 취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하며 자신들의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는데 반해서, “이번 달은 몸이 아파서 안된다. 그럼 다음 달에 할까요? 다음 달은 아마도 바쁠꺼예요” 이거 무슨 코미디 방송인가 싶은 대답으로 일관하는 철벽소장님을 포함하여 자신의 사무실 홍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대부분 대표들은 중 장년 층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노화가 너무 빨리 오는 것인가? 아니면 더워서 기진해 지셨나. 그런데 일을 피하시면 더욱 노화가 촉진된다고 앞에서 말씀드렸다.
물론 예외는 있다. 김병범 경남 사무소장님, 약간의 연세(52)는 계시지만 같은 연배의 분들에 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셨다. ‘감사합니다. 오래토록 젊게 사실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파악했는데 사무소를 개설하고도 현지 교민잡지에 아예 연락처 게재를 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알았다. 현지 매체에 연락처를 게재하지 않고도 일하시는 분들의 업무 역량도 놀랄만하지만 교민들을 위하여 귀찮으시겠지만 연락처를 기재해주시라. 이멜만 주시면 무료게재 해 드린다. 단, 실체는 확인한다.

본지는 지난 호에 경주 엑스포 정보를 실었다. 그 과정을 좀 밝히자.
경주 엑스포 행사, 예산이 기백 억에 이르는 지방정부추진 행사로는 매머드 급 규모다. 오는 11월 11일부터 12월 3일까지 베트남의 호치민에서 열린다. 이렇게 일자는 다가오는데 아무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참 기이한 일이다. 이런 큰 행사에 홍보가 없다니, 혹시 홍보비가 책정되지 않았나? 그러던 어느날 교민 한 분의 제보가 들어온다.
“경주 엑스포가 궁금해서 경북사무소에 들렸는데 이미 관계부처, 대학교, 한인베트남 신문에 홍보를 했으니 거서 보라고 하고, 자기는 내용을 잘 모른다고 담당자를 찾으라고 하는데, 씬짜오에서는 정보가 없나요? 그리고 가능하면 교민들이 자주 접하는 교민잡지사에 홍보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연락이 없었나요?”
부끄럽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물론 연락도 없었다. 며칠 후 기자를 보내서 요청했다. 다이아몬드 빌딩에 자리한 경북 사무소에서는 자기들은 모르니 담당자 찾으라며 아예 상대도 안한다. 이미 교민이 들려서 문의를 하고 조언까지 건냈지만 마이동풍인 셈이다. 참 기이한 일이다.
그렇다고 물러서면 기자가 아니라는 듯이 직접 경북도청에 연락하며 기초적 정보 수집에 팔 걷어부친 기자의 열의에 더해 교민잡지 발간 15년의 네트웍을 가동시키자 그제사 본지의 움직임이 파악되었는지 어느날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홍보자료를 주면서 조금 미안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이들이 보내준 이 자료, 이거 기록으로 보존할 생각이다.
그 자료가 정말 화려(?)하다. 한 페이지도 못 채울 판이다. 더구나 그 정보의 백미는 개최 일정이 틀렸다는 거다. 기자가 홈피를 뒤져서 내용을 보충하고 일정이 틀린 것을 수정한 후 마지막으로 담당자 연락처를 달라 하니 연락처 뿐만 아니라 사무실 주소도 게재하지 말란다. 그래서 그분들 연락처 대신 담당기자 이멜을 게재하여 보도한 것이 지난 호 정보다.

다시 한번 알린다. 개막일자가 11월 11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광고의뢰가 들어왔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거절하고 싶었지만 업무는 업무라는 직원들 말에 결국 나는 그 일에서 빠졌다. 그래서 내 칼럼으로 호소를 한다. ‘나라 일인데 좀 투명하게 합시다. 나라 일을 하시면 그거 큰 보람 아닙니까, 그럼 자랑스럽게 공개하며 해도 됩니다.’ 교민잡지 15년의 경험에서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있다. 정보를 얻는데 가장 힘든 상대가 나랏돈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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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옹을 아시는가? 베른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 위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진 월계수로 자신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려야 했던 그 이가 살아 생전, 어느 세무법인을 찾았다. 옹은 세무사에게 이번에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좀 들어왔는데 이 돈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할 터이니 계산을 좀 해 달라고 하셨다. 젊은 세무사는 선생님은 연세도 있으시고 이 돈의 성격상 세금은 안 내셔도 됩니다 하니 옹께서 무슨 소리냐, 내가 나라에서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세금을 안 낼 수 있느냐 며 채근을 하셔서 마지못해 계산을 해드렸더니 너무 적다며 다시 계산하라 하신다. 결국 최대치의 세금액을 받으시고는 만족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셨다는 일화가 김형석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에 등장한다.

부끄러운가? 그렇다. 너무나 부끄러워 눈물이 난다.
그런데 이 귀한 나랏돈이 지금 어떻게 사용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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