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November 24,Friday

지피지기(知彼知己)

아마도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 익숙한 고사성어 중 하나일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워서 항상 승리한다는 뜻이다. 이 말의 유래는 손자병법이라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손자병법 3장 모공편에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결코 위태로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갖는 의미는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이 승리의 충분조건이라는 것이다. 지피지기 하나면 승리에 필요한 모든 답이 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갖는 의미는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이 승리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피지기가 승리에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아마도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모범적 사례는 성웅 이순신일 것이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해전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장수였다. 한마디로 해군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이 해군 지휘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오히려 이것을 지기(知己), 즉 조선 수군을 선입견 없이 밑바닥부터 배우고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조선 수군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강한 수군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행동에 옮겼다. 무기를 손질하고 필요한 화약과 포탄, 병참을 확보해 나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군 병사들이었다. 작전을 제대로 소화할 능력도 없었고 사기도 낮았다. 그래서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순신이 작전 수행이 가능할 정도의 훈련이 되었다고 평가한 날이 바로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다. 그래서 조선의 운명은 해전 경험이 전무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고자 배우고 또 배우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한 해군 지휘관의 손에 놓이게 된다.

왜란이 발발하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적의 전략과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찰선을 띄우고 육로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적의 움직임과 전술, 전략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즉 지피(知彼)에 충실했던 것이다.

왜군의 전략은 최대한 빠르게 진격하여 조선의 국왕을 사로잡고 전쟁을 종료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보급로 차단이나 고립의 위험을 감수하고 적진 깊숙이 진격하는 전격전을 펼친 것이다. 조선 전역을 장악하지 않고 빠르게 북상한 왜군의 길어진 보급선은 차단당할 위험이 컸다. 그래서 왜군은 병참과 증원군 수급을 바다에 의존하고자 했다. 그만큼 왜군에게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고 제해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피지기에 충실했던 이순신은 조선 수군의 강점이 화포를 사용한 원거리 전투라는 점과 왜 수군의 강점은 빠른 함선을 이용해 배를 붙이고 조총으로 엄호하며 적선에 올라 백병전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이 빠르게 접근하기 전에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쉽지 실제로 실행하기는 극히 어려웠고 새로운 전략을 요구했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초반 해전은 육지에 올라 약탈과 살인을 자행하는 왜군 함선들을 기습하는 것이었다. 기습을 받은 적은 뭍으로 도주하거나 함선에 올라 달아나려 했고 그 와중에 조선 수군은 적을 각개격파할 수 있었다. 물론 적의 움직임을 완전히 파악하지 않으면 실행이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왜 이런 전략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그의 휘하에 있는 함선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여 해상에서 함대간 전면전을 할 경우 적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아군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게릴라 전술에 만족할 이순신이 아니었다. 그는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설득하여 연합 함대를 결성하였고 새로운 전술인 유인술과 학익진을 통해 다가오는 적선들이 집중포화를 맞으며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배를 붙이기 전에 적을 침몰시키는 전술을 완성한 것이다. 그것이 그 유명한 한산대첩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왜군은 제해권을 상실했고 해상보급이 차단된 상황에서 왜군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측 사료에 따르면 당시 왜군은 극심한 보급품 부족으로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전연승의 이순신도 해상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해안선을 따라 성을 쌓고 농성하는 왜군을 몰아내기 위한 수륙양공이 필요했다. 그리고 부산진에 집결한 왜 수군을 섬멸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함선이 필요했다. 이런 전략적 사고를 했던 이순신은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권력의 눈이 그를 적으로 돌리는 계기가 된다.

이순신은 함선 제작과 수군 양성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둔전과 염전을 운영하고 해산물을 내다 팔았다. 그리고 부족한 부관들을 충당하기 위해 자체적인 과거를 실시한다. 이미 조정의 터무니 없는 명령을 거부해서 권력의 눈 밖에 나 있던 그의 이런 행동은 군왕과 조정의 권위와 독점적 권리에 정면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에 대한 공격 명령을 거부한 것을 빌미로 그는 반역죄인으로 압송된다. 그가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 백의종군하는 사이 그가 공들여 키우던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왜 수군에게 섬멸 당한다. 그리고 조선 스스로의 힘으로 전란을 종식시킬 마지막 기회는 이렇게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순신의 예에서 보듯 지피지기해도 승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최소한 지피지기면 무모한 전투를 피하고 참을성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기에 위험한 상황은 피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손자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아니라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표현한 이유이다. 그리고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지피지기는 단지 시작점일 뿐 전략적인 로드맵을 완성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향상시키면서 승리의 조건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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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준
윌리암스 대학교 경제학, 수학전공 / 전 아메리칸 하이어 에듀코리아 대표/ 청담어학원 ‘NAVI’ 프로그램 개발 / BCM k-12.com 헤드컨설턴트/ 현 유테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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