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November 24,Friday

넵튠의 창&와일드캣

최근 내 눈에 띄는 안보 관련 사건이 한국과 중국에서 있었다.
하나는 문정인 특보와 송영무 국방부장관 사이에서 논란이 된 ‘참수작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진핑의 중국군 열병식에서 의도치 않게 포착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참수작전’논란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 군의 수준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이런 부류의 작전은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가장 은밀하게 준비되고 실행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의 작전명은 넵튠의 창(Neptune Spear)이다. 2002년부터 시작되어 CIA, 국가안전보장국, 국방부, 연합사령부와 5개 이상의 정보기관과 군기관을 망라하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하지만 2011년 전격적으로 실행될 때까지 외부에서 아무도 이 작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작전명도 그냥 이름만 들어서는 무슨 작전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코드명이었다. 그래서 넵튠의 창 작전과 참수작전을 비교하며 드는 생각은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중국군을 당나라 군대라고 폄하한다. 수뇌부부터 간부급까지 부패해서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이라는 의미다. 얼마전 시진핑이 중국군을 열병했다. 건군 9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전례와 다르게 네이멍구에 위치한 중국군 최대 훈련기지에서 열병식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 장의 화면 캡쳐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열병식 너머로 멀리 대만 총통부와 주요 정부시설로 보이는 건물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스치는 듯 지나가는 TV 화면을 놓치지 않고 캡쳐한 이 사진은 대만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중국에 대만 수뇌부 제압작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작전을 쥐도 새도 모르게 실행하는 미국, 그런 작전을 의도치 않게 노출 당하는 중국, 그리고 이런 작전이 있다고 스스로 선전하는 한국을 바라보며 우리가 과연 중국군을 우습게 볼 주제가 되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했던 나에게 그들의 시각에서 어떻게 보여질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미국이 작전의 보안을 생명처럼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작전에 투입 될 요원들의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전에 관여된 사람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작전의 보안이 유지된다. 그들의 생명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계속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군인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를 말해준다.

태평양 전쟁은 대양에서의 전쟁이 더 이상 거대한 전함과 함포가 아니라 제공권이 승패를 결정짓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쟁이었다. 그만큼 공중전이 치열하게 전개된 전쟁이기도 하다. 태평양 전쟁 초반 미군의 주력 전투기는 F4F 와일드캣(Wildcat)이었고 일본의 주력 전투기는 미쓰비시 A6M 제로기였다. 제로기는 속도, 회전력, 기동성, 항속거리 모든 면에서 미군의 와일드캣을 압도했다. 게다가 미군 조종사들은 실전 경험이 전무한 신참이 대부분이었고 일본은 오랜 기간의 전쟁과 훈련으로 숙련된 우수한 조종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전투기의 성능과 조종사의 상황을 보면 일본의 압도적 우세가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F4F 와일드캣을 제작한 그럼맨사(Grumman)가 전투기를 설계하고 제작하는데 있어 최우선 고려사항은 조종사의 생존이었다. 그래서 조종석을 기관총탄이 뚫지 못하도록 두꺼운 강철 장갑으로 감쌌다. 연료탱크는 총알을 맞아도 폭발하거나 새지 않도록 두꺼운 고무벽과 그 사이에 거품으로 변하여 구멍을 막고 굳어지는 폼을 내장했다. 조종석 위를 덮는 캐노피의 방탄 유리는 물론 기체 전체에 이런 고려가 반영됐다. 그러다 보니 전투기의 날렵함은 찾을 수 없는 모양새에 무겁기까지 한 전투기가 탄생하게 되었다. 조종석 장갑의 무게만 무려 100Kg이었고 전투기 제작에 워낙 많은 강철이 들어가는 바람에 그럼맨사에는 철공소(Ironworks)라는 별명이 붙었다.

반면 일본의 전투기 제작에서는 성능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었고 조종사의 생존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일본 군부는 전쟁터에서 죽는 것을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미화했다. 그들에게 군인은 강철, 석탄, 석유와 같이 유용한 자원이지만 필요에 따라 소모될 수 있는 자원이었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은 인간을 소모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관점과 인간을 지켜야할 자산으로 보는 관점이 격돌한 전쟁이기도 했다.

그리고 와일드캣과 제로기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초반 수적 우세, 압도적인 성능, 숙련된 조종사들을 가진 일본 제로기들은 와일드캣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총알을 맞고 격추되었어야 할 와일드캣들은 추락하기를 거부했다. 일본의 전투기 에이스였던 사카이 사부로 중위는 그의 저서 [제로(Zero)]에서 와일드캣과의 교전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적기에 5, 6백발의 총탄을 정확히 쏟아 부었다. 그런데 적기는 추락하지 않고 계속 날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적기가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나를 경악시킨 것은 뒷날개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어 넝마 조각처럼 너덜거리는 모습이었다. 만약 제로기였다면 이미 오래 전에 불덩이가 되었을 것이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면서도 와일드캣 대부분은 본대로 귀환했다. 그리고 정비를 마치고 다시 출격했다. 그 사이 신참들은 에이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 조종사들은 단 한번의 실수, 한번의 판단착오로 불덩이가 되어 하늘에서 사라져갔다. 1943년 와일드캣을 개량해서 두배 출력의 고성능 엔진을 탑재한 F6F 헬캣(Hellcat)이 등장하자 태평양 상공은 일본군에게 죽음의 하늘이 되었다.

우리는 일본을 욕하기 좋아하지만 정작 일본의 실패와 문제점을 교훈삼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최근 장성 갑질과 공관병 사태를 보면서 인간을 소모품으로 보았던 제국주의 일본 군부와 오버랩되었다. 역사는 제국주의 일본 군부가 걸었던 길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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