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June 22,Friday

억겁의 시간을 넘어 찾아 온 인연

 

지난 주 푸미흥 전시장에서 베트남 섬유의류산업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기대보다는 조금 협소한 전시장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섬유관련 전시회가 열리면 엄청난 규모로 전 세계 제조업체들이 거의 다 참여를 하는 것과는 달리 베트남의 전시회는 중국 업체들이 주를 이루고 그 규모도 한국의 5분의 1도 채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참여한 업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한국 텍스타일 센터라는 곳과 내년에 열릴 대구 섬유전시회 홍보를 위한 대구 광역시의 홍보 부스가 보입니다. 그리고 태광인터내셔널이라는 한국 봉제기계 업체가 제법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이 눈에 들어 옵니다. 마지막 날 들린 탓인지 참여업체들은 이미 서서히 철수 준비를 하고 있어서 별다른 보도거리 조차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독일도 기계 업체들이 합동으로 제법 큰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ZSK라는 자수기 업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를 베트남에 진출하게 만든 업체입니다.
컴퓨터 자수기를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는 기업인데 제가 그 업체의 대리점 역할을 15년 동안 해왔었습니다. 그리고 그 업체에서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하자 저에게 베트남 시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고 저도 새롭게 열린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베트남에 들어오게 된 것이 이곳 베트남에서 20여년 이상을 보내게 된 계기가 되었죠.
젊은 날 오랫동안 취급하던 그 기계가 보여 반가운 마음에 부스를 들려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독일 본사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친구 다행하게도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나를 기억한다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옛날 일을 회상하는 시간을 즐겼습니다.

왜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길게 하는가 하면 사람 일이란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 탓입니다.
제가 베트남에서 진출하여 섬유관련 기계를 취급하다가 취미삼아 시작한 잡지 일이 이제 제 본업이 되고 그 일로 이곳 베트남에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그 업체와 인연은 저에게 상당한 의미를 갖습니다.
제가 만약 그 업체와 인연이 없었다면 과연 베트남에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 베트남에 들어 오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이 제 인생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 굴곡점이었는데 그때 저는 과연 그런 인식을 했던가 하며 뒤 돌아봅니다.
어찌보면 베트남과의 인연도 제 결정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독일 친구가 그저 별 생각없이 던진 한마디에 제 삶의 근거가 베트남으로 바뀌었고 또 그 탓에 제가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으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참 운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가볍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전부 갈림 길입니다. 또는 한마디 한마디가 제 삶을, 혹은 한 인간의 삶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에는 모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당시 작은 결정 하나가 온 생을 통째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를 가만히 돌아보면 그 때마다 사람과의 인연이 작용합니다. 그러니 ‘인간의 삶은 관계가 전부다’ 라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만남,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만남과 이별이 당장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별다른 감정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두고 보면 그런 만남 하나 하나가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우리 회사에도 저와 함께 20여년을 넘게 일하는 베트남 직원이나 한국 직원들이 몇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저와의 만남으로 그들의 삶이 변화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엄청난 인연들입니다.
불교에서는 현생에서 만나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 억겁의 세월을 쌓아온 인연이라 합니다. 그런데 저와 인연을 맺은, 저로 인해 자신의 삶의 행로가 바뀐 그들에게 저는 어떤 자세를 보이며 살아왔는가 하며 뒤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과분한 인연인데 한번도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못하고 제 욕심만 채우느라고 일에 대한 닦달만 하고 지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그들의 개인사에 대하여 아는 것이 무엇인가 짚어보면 그저 피상적인 항목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도 모르고 굳이 알려고 관심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귀한 인연을 너무나 함부로 다루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릅니다.

성경 마태복음 5장에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얼치기 식자는 항상 그 말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글자를 후비며 의문을 갖고 그 참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마음이 가난하다’ 는 말을 poor in spirit 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어를 그대로 우리 말로 직역을 한 것입니다. 감히 제가 그 뜻을 의역한다면 욕심이 없는 영혼이라는 의미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운명이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면 마음이 가난한다는 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요즘 참 일이 많습니다. 나이가 점점 차오르니, 더 차올라 기력이 쇠잔해지기 전에 뭔가 이루고 싶다는 욕심이 작용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설칩니다. 욕심으로 관계를 망친 인간이 또 일에 욕심을 부립니다.
지난 주 한국에서 들어온 저희 회사 디자이너 실장이던 강성우씨가 저를 만나 하는 말. “내려놓으세요”
그녀는 2002년 호주에서 저를 만나 함께 베트남에 와서 이 <씬짜오베트남>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베트남의 교민잡지가 시작된 것이니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모든 교민들과도 귀한 인연을 맺은 셈입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해 제가 욕심을 부린 탓에 잠시 저희 회사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갔지만 항상 잊지 못할 인연으로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병원에서 폐암말기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가 그녀를 그런 병마의 곳으로 몰아 넣은 듯하여 너무나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의 힘으로 그 무서운 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저도 작으나마 힘이 되고자 기도에 동참을 합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주님의 손길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옷깃만 닿아도 모든 병이 낳는데 주님의 손길로 은혜받은 그녀가 이미 병환을 이겼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 은혜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녀가 베트남에 다시 들어와, 밝은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제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저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병환은 접어두고 오히려 저를 위해 주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내려놓으라”

하나님, 참으로 귀한 인연을 저에게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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