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8,Wednesday

대한민국 푸미흥시

어떤 이는 한편의 글을 쓴다고 입산을 했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한편의 글을 쓰고 탈고를 했다고 지랄을 떨었다.
5년정도 글을 썼지만 난 X같은 글을 쓴다고 한번도 산에 간 적이 없었고
누가 나에게 탈고를 했다고 술 한잔 산 놈도 없었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냥 싼 맛에 읽으면 된다.

 

오토바이 무리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기 시작하면 베트남의 서글픈 저녁이 시작 된다. 난 베란다에 걸쳐있는 저녁에 서서 “세마이”의 숫자를 한번도 세어보려 하지 않았다. 무리들은 느리지만 밀려 지나갔고 밀어낸 무리들은 그들의 뒤 무리에 밀려 지나 가기에 그들은 하나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지만 또 다른 하나다. 그들은 셀 수도 없고 세어지지도 않는다. 셀 수 없는 “세마이”에 떠밀린 베트남의 저녁이 푸미흥시에 내리면, 지붕 위에 걸쳐있는 베트남 말 없는 간판들이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한다. 푸미흥은 미칸롯데리아 사거리를 깃 점으로 흥붕 쪽을 강북이라 부르고 미칸쪽을 강남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신한은행 푸미흥지점이 있는 파크뷰 아파트의 뒤 편에는 조그만 강이 한국국제학교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지만 강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오래 전부터 미칸 쪽이 흥붕 쪽보다 임대료가 비싼 아파트가 많아 교민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강북에 사는 교민들에게 “어디에 삽니까?”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푸미흥에 삽니다.”라고 지역으로 대답하지만, 강남에 사는 교민에게 “어디에 삽니까?” 라고 물어보면 “크레센트에 삽니다” 라고 아파트 이름을 말한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했지만 누구 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교민 사회에서도 강남은 부의 상징이고 그 부의 상징은 아직까지 아파트의 임대료에 따라 정해지는 듯 하다. 하지만 강남의 교민도 먹고 마시려면 어쩔 수 없이 강북으로 도로를 건너 와야 한다.

왜냐 하면 강남에는 없는 온갖 편의시설들을 강북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 것이 푸미흥 강북 쪽에 없다면 그것은 한국에도 없다는 말을 푸미흥의 할일 없는 오래 된 교민이 말 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사람도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푸미흥에서 가장 오래된 흥붕 아파트의 맞은 편은 주로 굽는 집들이 많다. 통 삼겹살 전문인 “맛찬돌”이 매일 해가 지는 푸미흥 저녁에 가장 먼저 불을 켜면, 강북에 있으면서 강남을 지향하는 “강남BBQ”의 간판이 불을 켠다. 강북의 초입에는 어떤 중국집 사장이 하는 “백년” 이라는 굽는 집을 얼마 전에 오픈 했고 스카이가든 쪽에는 갈비브라더스와 미트해번이 고기를 굽는다. 강북에는 굽는 집뿐만 아니라 삶고 찌는 집도 많다. 굽는 집들이 넓은 도로변에 자리를 잡았다면 삶고 찌는 집들은 대부분 좁은 골목에 자리를 잡고 단골 손님으로부터 저녁을 시작한다.

스카이가든 맞은편의 첫 골목에는 “탕탕탕”이라는 삶는 집이 어떤 고기를 탕 속에 넣어 삶아 판다. 도가니를 삶아서 파는 “장독대”의 장독 안에는 푹 삭은 홍어가 들어 있고 가오리 찜이 유명한 “삼원가든”의 맞은편에는 돼지수육과 야채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방도남”이 자리 잡은 교민에게도, 자리를 잡지 못한 교민에게도 똑같이 8만동만 받고 한끼를 팔기에 자리 잡은 교민과 자리 잡지 못한 교민이 뒤엉켜 항상 자리가 없다.강북의 골목에는 한국의 모텔보다도 규모가 작은 호텔들이 많다. 보통 20개정도의 방을 가지고 있지만 한 골목에 두세 개의 호텔이 있기에 강북에만 몇 백 개의 호텔방이 있을 것이라고 강북에서 호텔을 하는 친구가 말 한적이 있다. 호텔이 있는 골목에는 보통 짧은 원피스를 입은 베트남 아가씨가 마사지를 하는 마사지 집들이 한두 개씩은 있다. 흥붕 쪽에서 몇 번째 골목의 마사지 집은 남자들만 갈수 있다는 엄밀한 소문도 있지만 난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남자만 가야 하는지 아니면 남자도 갈 수 있는지는 내가 알지는 못한다. 다만 푸미흥의 강북에는 팬티가 보일 것 같은 짧은 치마의 베트남 아가씨가 있는 가라오케도 있고 아가씨가 없는 가라오케도 있고 술을 파는 가라오케도 있고 술을 팔지 않는 가라오케도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토요일 저녁이 되면 빈증에서 출발한 교민도 내리고 띤장에서 출발한 교민도 내리고 빈푹에서 출발한 교민도 푸미흥에 내려 강북 속으로 사라진다. 그들은 1주일 동안 일터에만 있다가 토요일 저녁이면 할 일이 있어 강북에 오기도 하고, 할 일이 없어 푸미흥에 오기도 한다. 그들이 굽는 집에서 저녁을 시작하던 삶는 집에서 저녁을 시작하던 그의 옆 테이블에는 한국인이 앉아 있을 것이고, 그 옆 테이블의 옆에는 늙은 교민이 그의 딸보다 어릴 것 같은 베트남 여성과 마주앉아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옆 테이블에는 베트남에 갖 내린 것 같은 교민이 “흥자”의 어떤 골목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 오래 묵은 교민의 경험담을 듣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한국말 만 있는 중국집에서 베트남 말이 필요 없는 자장면을 시켜먹고 한국인이 하는 그 옆집에서 머리를 깎고 다음 골목의 굽는 집에서 막창을 안주로 “처음처럼”을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호치민의 푸미흥에서 저녁을 보내면서 대한민국의 어떤 푸미흥 신도시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일산이 60년만에 만들어진 신도시라면 베트남의 푸미흥은 20년 만에 만들어 진 신도시다. 20년만에 베트남에 만들어진 이 도시는 이제 우리 교민의 주거지이다. 토요일 마다 멀리서 오는 교민에게는 1주일 동안의 힘듦을 풀어주는 쉼터의 도시이며 얼마 전 떤선냣 공항에 내려 푸미흥의 어떤 호텔방으로 온 초보 교민에게는 또 다른 베트남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지가 될 것이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자식이 자라나는 생활의 터전 이며 그 태어난 아기들은 훗날 이곳이 고향이 되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푸미흥의 지금 모습이 5년뒤 우리 교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난 짐작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내가 7년전 푸미흥에 처음내려 어느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는 지금의 푸미흥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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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호

NTT대학 한국어과 교수 / 서울 아쿠아 정수기 대표

이메일 eunho14232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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