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6,Monday

신년 아침의 독백

 

송년과 새해 아침은 과거와 미래가 서로 만나는 시간이다. 과거의 문이 닫히고 미래의 문이 열리는 시간, 과거와 미래만 존재하고 현재가 사라지는 시간. 년말이 되면 오늘이 과거가 되고 새 아침이 바로 미래의 시작이다. 즉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중간 매개체 없이 직접 만나는 순간이 바로 송년이고 새해다.
현재가 빠지고 과거와 미래, 둘이서만 만들어내는 시간의 매듭.

그래서 새해가 되면 항상 미래에 대한 구상을 빼놓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어제가 과거가 되고 오늘이 미래가 되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이라고는 미래에 대한 구상 외에 달리 어떤 것이 있겠는가?

이미 반 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매번 만났던 새해인지라 이제 익숙해 질 만도 한데 여전히 매번 이때가 되면 무료로 주어진 새로운 시간이라는 가치를 손에 들고 이 새로움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몰라 잠시 망설이게 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받고나서 어떻게 여는 지도 몰라 난감해 하는 모양새와 같다.
새해 아침 눈을 뜨자 불쑥 다가온 새날, 365일. 아직 한 장도 쓰지 않은 흰 노트를 새해 선물로 받아 든 꼴이다. 자리에 그대로 누워 <천장>과 대화를 시작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미래를 계획없이 마주하기가 두려운 탓이다. 잠시 자리에서 누운 채라도 준비를 하고 시작하고 싶었다.

아마 작년에도 이러했던가? 그래, 지난 해는 무슨 대화를 자네와 나눴던가? 지난 해 이맘때에 나눈 대화에서 언급한 일은 다 마친 것인가? 기억조차 없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계획을 세웠었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럼 올해는 어찌 보내려나? 가족은 모두 건강한가? 사업은 잘 굴러 가려나? 올해에 꼭 해야만 할 일이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려보지만 자다가 일어난 머리에서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겨나겠는가? 그저 열심히 살자. 예년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살겠지만 올해 다시 년말이 되면 정말 잘 살았노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 또 매년 반복되는 하소연은 이제 그만두자. 올해는 특별한 해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2018년이 내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긴 해로 만들고 싶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 2018년이니까.
새로운 날에는 마음의 평화를 주소서.
그 평화를 감사하는 따뜻한 심성을 심어 주소서.
그리고 그 심성이 부끄럽지 않은 담대함을 내려 주소서.

이렇게 시작해봤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인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 부족한 인간에게 지혜와 평화를 내려 달라고 기도한 후 한 해를 시작한다.

돌아보니 지난 해는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해였다. 대나무 말을 타고 함께 놀았던 죽마고우 2명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적지않은 충격에서 헤매야 했다. 그저 철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의 빈 자리가 너무 컸다. 하지만 나름대로 살아가는 의미를 되씹어 보느라고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낸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가한 시간이나 추억의 장소를 마주하면 수시로 끼어드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사람이 그립다는 감정을 새삼스레 느끼게 만든 시간이기도 하다.
친한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황당하게 만드는 줄 몰랐다. 하긴 그것도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그런 모양이다. 그저 내일이 되면 다시 만날 줄 알았지, 그 만남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인 줄은 정말 몰랐다.
덕분에 작년에는 병원 문을 자주 들락거렸다. 나도 혹시, 하는 불안감을 지우려고 수시로 병원에 드나들며 온몸을 다 뒤적거렸다. 혹시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암을 찾아 내느라고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온몸을 샅샅이 뒤졌지만 다행인지 아직 암덩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정, 이건 사랑과는 또 다른 모양이다. 사랑은 항상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우정은 평화를 준다. 친구는 한동안 연락을 못해도 이해하고 넘어갈 줄 알고, 조용한 찻집에 앉아 서로의 생각에 잠겨 침묵이 중간에 벽을 쌓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 내 친구.
그래서 사랑은 느낌이고 우정은 이해라고 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어느 한 순간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정은 결코 어느 한 순간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정이란 오랜 시간 세월을 함께 보내며 자라는 나무와 같다. 그렇게 쌓아 올린 우정이 한 순간 사라지고 나니 그 허전함이란…

올해는 건강하자.
가족과 지인들에게 짐이 되는 삶을 살지 않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소서.그리고 주인 잃은 우정을 가족의 사랑으로 승화시켜 그들에게 감사와 평안을 내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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