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52세에 이룬 만학도의 공부 이야기

호찌민 법대 졸업에 빛나는 조효영씨의 제2 인생 도전기!!
성공과 실패를 떠나 삶의 밑거름이 되어준 도전의 값진 성과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羞恥)가 아니라는 뜻으로 누구에게 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이다.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불치하문’을 실천해 마침내 2018년 호찌민 법대 졸업의 영광을 이룬 이가 있다. 우리의 이웃 조효영씨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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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어떤 분 이시고 호찌민과는 어떻게 연을 맺으셨는지요.
안녕하세요 저는 1966년생으로 올해 52세 조효영이라고 합니다. 올해 호찌민 법대를 늦깎이로 졸업을 하였지요.
제가 몸담았던 무역회사(Dream International)의 중국 주재원으로 근무중 베트남 이관으로 자연스레 베트남과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사내 결혼 후 다른 계열사에서 일하던 아내가 가족과 함께 1년 반 일찍 이곳으로 왔고 제가 뒤따라 들어왔어요. 현재 8년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52세 호찌민 법대 졸업의 이력을 가지셨는데요, 그 흥미로운 이력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베트남 생활에선 현지어를 익히는게 급선무’라며 베트남어 공부를 강조했던 아내의 권유와 ‘베트남어를 익힌 후에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단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인사대에 개설된 베트남어 어학 코스를 등록하게 됩니다. 10년 중국생활의 덕인지 1년 후 초급시험 없이 중급시험을 통과하게 되었어요. 중국어로 익숙한 성조의 이해와 은근과 끈기로 그저 묵묵하게 버텨낸 결과가 맺은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그후 호찌민 법대를 선택하셨나요?
예, 당초 계획은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언어 수준이었으나, 짧은 시간 내에 중급시험을 합격 하면서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좀 더 체계적이고 폭넓은 학문적 수준으로의 공부로 범위를 넓히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100세 시대를 위한 인생 2막’ 준비를 고민 하던 터라 동기 부여가 되었지요. 그 즈음 다양한 업종에 종사중인 여러 교민들을 접하게 되었고 모두의 공통적인 어려움이 베트남 법을 잘 몰라 겪는 것 이란 걸 알았어요. 베트남 법을 공부한 한국인이 필요하다는 절실함도 있었구요. 해서 현지에서 법을 공부하여 법률 전문가가 되면, 교민 사회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정년에 구애없이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법대를 향한 첫걸음이었죠.

수학 중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공부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엄청난 어려움은 예상 가능한 당연한 과정이었어요. 한 나라의 법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 사상, 관습 등 전분야를 아우르는 문서화된 하나의 규범 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외국인이 베트남 전반을 이해하고 법에 대한 학문적 과업을 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법조문 하나도 탄생 배경을 알기 위해선 베트남 자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했어요. 제가 베트남에서 초, 중, 고를 나왔다면 공부가 훨씬 수월 했을 거에요. 하지만 법이 사람을 근간한 규범 문서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살아온 삶의 경륜과 다양한 사회 경험에서 오는 법률 이해도 면에서는 유리한 점도 있었어요. 법대 입학 전 독학으로 여러 법전들, 법학 교재들을 공부하고 사전을 통해 누락과 오류를 보충하며 공부내용이 집약된 저만의 ‘통합 사전’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준비는 그저 전초전일 뿐이었죠.
대학생활이요? 등불 없는 밤길의 고된 여정 같았어요.‘막스 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베트남어로 강의하던 첫 수업 때 정말 머리에 지진이 났던 일, 정규수업 시간의 황당함과 긴 한숨의 시간들, 그 외에 전산학, 사회학, 심리학, 논리학 등 비(非)법률 과목들의 의무 이수, 정기적으로 치뤄지는 시험은 인간의 무한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최악(?)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끝도 없고 돌아서면 치뤄지는 시험속에서 저는 담금질이 되어갔어요. 속도가 느린 시험 답안 작성의 어려움과 졸업때까지 학점관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계속되었죠. 이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졸업 시험과 논문 후 최종적으로 학업 과정을 마치게 됐습니다.

울컥해지는 역경드라마 한편을 본 듯 합니다. 재미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 에피소드 있을까요?
제가 교실에서 유일한 외국인 이자 한국인 이었고, 나이도 제일 많았습니다. (현 호찌민 법대 총장님이 저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허 허 허) 학생들은 저를 ‘아저씨’라고 불렀고, 한국 유명 배우나 가수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었죠, 헌법을 가르쳤던 교수님은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안 후론 쉬는 시간 만 되면 제 자리에 와서 이것 저것 개인사를 묻는 통에 쉬는 시간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죠. 시내버스를 이용 시 차장이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던 재밌는 기억들이 나네요.

법대 졸업 후 베트남에서 계획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한국 대학에서 전공한 영어 능력, 지난 20년 동안 근무한 회사 경험, 그리고 호찌민 법대 에서 공부한 베트남 법률 지식 등을 토대로 법무법인(로펌)에 들어가서 베트남 법률 시장의 흐름 이나 동향에 발맞추어 현업에서 법률 실무를 배우면서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원하시는 분 혹은 현재 학업중인 학생들에게 선험자로서 한 말씀 뭐가 있을까요?
돌이켜 보면, 호찌민 법대 수학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이 이렇게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란 걸 미리 알았었더라면 애초 시작도 안 했을 걸 너무 몰라 오히려 의욕과 열정으로 부딪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혹자들은 ‘공부도 때가 있고 제 때 해야 한다’, ‘때에 상관없이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 등 많은 말들을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해 본 저로써는, 가능하다면 ‘공부는 해야 할 제 시기에 제대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상황은 조금 특별한 경우로 53세에 베트남 현지 법대를 3년 정규과정으로 마친 전대미문의 진기록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봅니다.

 

현재 학업중인 여러 학생들에게 제 경우가 도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머리는 세어지고 눈은 침침하고 장시간 앉아있기도 힘든 나이에 깡으로 악으로 나를 이끌며 이루어 낸 결과를 환희와 기쁨으로 마주합니다.“학문은 과정이 즐겁고 그와 벗하여 걸으면 천리 만리도 지척이다”하지요. 좋은 때에 열정을 아낌없이 쏟으십시요. 저와 같이 늦은 도전을 준비하고 계신 분 있으신 가요? 적극적으로 도전 하십시오. 도전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값지고 소중한 자산이며 밝고 희망찬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예미해 : beautisea@hanmail.net)

One comment

  1. 아유 새해부터 정말..대박 기분 좋은 기사입니다…조효영님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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