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베트남에서 무엇을 배웠나?

새해를 맞이 할 때마다 늘어나는 자신의 나이를 인식하며 그것을 보상하기 위함 인지, 혹은 이곳에서 보낸 시간만큼 건진 것도 있다는 자조적 위로를 찾기 위함 인지 이글의 제목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합니다. 사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중에 두가지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베트남인의 미소
이것은 진짜 베트남인의 최고의 문화이자 상품이고 또 그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유익하고 간편한 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처음보는 사람이나 자주 보는 사람이나 눈이 마주 칠 때마다 미소로 인사를 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이들의 미소는 정말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에서 나오는지, 가슴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전쟁을 거치며 무의식적으로 훈련된 버릇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지만 이들의 미소는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말하지만 베트남인들이 보여주는 미소는 태국에서 보는 미소와는 그 성격이 다른 듯 보입니다. 베트남인의 미소는 서비스 업소에서 볼 수 있는 상업적 미소가 아닙니다. 상업적 미소는 의무적이고 가볍지만 이들의 미소는 적어도 그런 미소와 달리 수줍은 그들의 속내가 가지런히 담겨 있는 듯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미소를 타인에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은 경제적 부에 관계없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선망 어린 기대도 심어 줍니다.
그러나 이들의 미소가 가끔 한국인의 오해를 부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업무에 대한 잘못을 저지른 베트남 직원들이 그 잘못을 지적하는 상사 앞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묘한 미소를 짓는 바람에 상사의 화를 더욱 돋구곤 하던 상황을 많은 한국인들이 겪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그들의 미소가 멋쩍은 미안함의 표현이라는 것은 베트남 생활이 어느정도 지나야 알 수 있는 경험의 산물입니다.
이들은 기쁠 때 만이 아니라 미안할 때도 뭔가 계면적은 미소로 자신의 잘못을 표현합니다.

미소가 세상을 선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이른 아침, 아파트 문을 나서면서 만나는 청소하는 여성들의 미소는 바쁜 출근 길에 여유를 던져주고, 퇴근 길에 만나는 이웃들의 선한 미소는 일상의 피로를 씻어 줍니다. 미소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외형적 모습과는 관계없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입니다. 선한 마음이 담긴 미소가 행복을 부른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도 미소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 새해에는 거울 앞에서 미소 짓는 훈련을 해보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선한 미소로 행복이 가득 담긴 베트남 생활을 즐기시길 기원합니다.

베트남인의 영웅적 심리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고 하는데, 이들은 너무 많은 난세를 겪은 탓인지 거의 모든 사람이 영웅의 자질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조금 앞서 나간 표현인가요?
하지만 제가 여기서 말하는 영웅이란 전쟁에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공동체를 위해 엄청난 업적을 남긴 특별한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조금 학술적인 표현을 하자면 사회 도덕적 가치를 기반으로 사적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선한 행동하는 이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각별합니다. 여린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측은지심이 그들의 사심 없는 봉사와 배려를 부르는 듯 합니다.

제가 겪은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베트남 사람(A라고 칭하죠)을 소개받고 제법 괜찮은 식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 저희 테이블을 담당하는 종업원이 안일한 실수를 반복합니다. 제가 A를 초대한 입장이라 좀 불안한 마음이 들고 은근히 부화도 치밉니다. 마침 또 그가 제 앞에서 부주의한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 종업원의 근무 자세를 지적하고 나무란 적이 있었습니다. 초대한 손님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별로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제 손님을 챙긴다는 의미에서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A가 그 문제의 종업원을 불러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나옵니다. 아마 그 양반도 그 종업원 일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서 뭔가 채근을 하고 나오나 보다 생각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며칠 후, A를 저에게 소개한 베트남 친구를 만났습니다. A와 만나 식사를 한 것에 대한 총평이 나올 참 입니다. A에게 그날의 식사 미팅에 대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이 친구 조심스런 이야기를 꺼냅니다.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에 관한 주제를 시작으로 얘기를 시작하면서 한국인과는 달리 베트남 사람들은 웬만해서 화를 잘 내지 않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는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뭐지? 이 친구 말을 되씹어보니, 그 말의 행간에는 “너는 사회적 약자인 식당 종업원에게 화는 내는 옹졸한 인간이 아니냐” 하는 비난성 지적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맞습니다, 그 당시 A가 그 식당을 나오면서 그 종업원을 따로 불러 대화를 나눈 것도 내가 생각하듯이 채근이 아니라 저에게 꾸지람을 당한 종업원을 위로한 것 입니다. 순간 얼굴에 불이 피어납니다. 무심한 제 행동이 이들의 눈에는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횡포로 비쳤던 것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의 프로필이나 자기 소개서를 보면, 기부하는 행위가 자신의 일상적 취미나 특성 혹은 장래 희망처럼 기록한 것을 자주 봅니다. 낯선 마음에 물음표가 생깁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산 세월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압니다. 그리고 이해도 합니다. 베트남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나,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한 봉사, 기부행위는 이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일상의 하나이자 사회적 의무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이런 구절이 심어 있는 듯합니다.
“서로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
“이것이 사회인으로서 당신이 행하여야 할 도덕적 규범이다.”
위의 첫 구절은 성경을 인용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사회 도덕적 규범이 베트남의 지식인 사회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이 공동체가 조금이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심사,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들이 바로 영웅이 아닌가요?

그후 저는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며 자신에게 조금 변형된 질문을 던집니다.
“나보다 약하거나, 나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나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 질문을 잊지 않고 되 뇌이고 나오는 날에는 언성을 높이는 일이 사라집니다. 그 날의 해프닝 이후 베트남사람에게 배운 귀한 소득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에 지내면서 자신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의 하나입니다.

직원들끼리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 일이지, 요즘 저 양반 왜 화를 안내는 거지. 화를 안 내니 오히려 불안해”

적폐청산, 쉽지 않습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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