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시린 겨울의 同床異夢

한국의 올 겨울 날씨는 모질다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은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영하20가 훌쩍 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결코 그리 못 견딜 만큼 추운 것은 아닙니다. 그 때는 실제로 지금보다 훨씬 기온이 낮았습니다. 영화 18도 20도는 예사로 기록하던 옹골찬 겨울이 있었습니다. 그 추운 날 서울의 필동에서 퇴계로 남산 턱밑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약 3-4킬로의 거리를 걸어 가다가 너무 추워 울고, 울며 흘린 눈물이 얼어붙어 아리도록 더 추워지던 등교길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보다 요즘 추위가 오히려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은 어느새 베트남 날씨에 녹아 든 가벼운 체질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절의 겨울은 언젠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에 의해 밀려나지만 우리 고국의 미래에는 찾아올 봄이 보이지 않는 듯하여 이 겨울이 더욱 추운 모양입니다.
지난 가을, 남한 산성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 들리는 귀국 길, 어디 먼 곳은 못 가고 가까운 곳에서 단풍을 볼 수 있을 까 하는 마음에 찾은 남한산성이었죠.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추격을 피해 한해가 마감되는 섣달 중순, 엄동설한에 이곳으로 몸을 피하던 인조, 추운 날씨에 산길이 얼어 말에서 내려 신하의 등에 업혀 오르던 그 길은 이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승용차가 별다른 호흡없이 오르내리곤 합니다.
신하들이 번갈아 인조를 업고 오르지만 사대부 집안의 그들이 힘을 쓸 턱이 없습니다. 마침 눈길에 나무를 캐는 서흔남이라는 청년이 인조를 등에 업어 산성으로 모십니다. 그에 대한 얘기는 여러 곳에서 야사처럼 등장하는데 실제 인물입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서날쇠로 등장을 하지요. 나중에 인조는 그에게 정 3품 가의대부라는 파격적 품계를 내려 보은을 합니다. 그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와 묘비가 잊혀진 조상의 은공처럼 남한산성 주차장 한 곁에 사람의 눈길을 피해 쓰러지듯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굴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남한산성에서의 단풍구경은 마치 장례식장에서 들려오는 재즈음악처럼 슬픈 감정을 먼저 불러 옵니다. 단풍을 즐길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이죠.

쿠데타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인조, 광해군이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준 실리외교를 버리고 당시 떠오르는 강국 청나라를 배척하고 저물어가는 명나라를 숭배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시행하다가 두차례 호란을 맞고 한민족 유사이래 최대의 굴욕으로 남을 삼전도의 굴육, 삼배구고두례 ((三拜九叩頭禮) 큰절을 세번하고 9번 고개를 조아리는)을 치루며 목숨을 구걸합니다.

인조는 남의 손으로 왕위에 오르지만 저물어가는 명나라의 승인조차 받지 못하자 자신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추존(追尊: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줌)에 매달리며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는 데 혈안이 되다가 결국 청나라의 침략을 부르고 맙니다.
그 전란의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수 만의 장병이 전사하고 60만의 민초가 청으로 끌려갑니다. 환향녀의 슬픈 이름이 등장합니다. 전쟁을 패한 전리품으로 끌려 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그녀들을 조국에서 조차 손가락질하며 내치자 수많은 여인이 호수에 몸을 던집니다. 호수에 몸을 던져 억울함을 호소한 그녀들의 머리띠가 가을날 낙엽처럼 호수 위를 흘러 다녔다고 합니다. 나라를 잃고 머리를 조아린 것은 남자들인데 그 댓가는 여자들이라고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한 댓가를 몸으로 지불합니다.

이런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빗대며 떠오르는 대국을 받들고 북한과의 실체 없는 대화를 외치는 집단이 촛불시위로 박정권을 탄핵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남들 공부 할 때 데모를 한답시고 소주를 병 나팔로 마셔 대던 이들이 어느날 자신도 못 믿게 높은 자리에 앉으니 어찌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너도 나도 아무 소리나 해 내며 대책 없는 정책을 마구 쏟아냅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다시 하고, 어차피 세금 한 번 안 낸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차지한 인조의 공신들이 조선의 공신 중 가장 무능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또 이렇게 유사점이 드러납니다.

다른 거 다 개판 쳐도 남북 문제만 잘되면 된다는 어리석은 믿음으로 무장한 정권은 외교적으로도 치욕스런 헛발질을 서슴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대국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이리 저리 줄을 대고 고개를 조아리며 대망의 대국 국빈 방문을 얻어냅니다. 하지만 정작 대국님께서는 이 가련한 국빈을 잔칫집 강아지 취급을 하며 저기 떨어진 서민식당에서 혼밥이나 먹이고 수행기자를 폭행한 후 사과도 없이 내 쳐버리지만 충실한 강아지, 그 특유의 환한 미소로 화답하며 여전히 꼬리를 흔듭니다. 삼전도의 굴욕이 따로 없습니다.

요즘 같이 정치 경제 구분없이 자국의 이익이 최고 정의가 되고 사상적 이념이 무의미해 진 시점에서는 신중하고 균형 있는 실리 외교가 필요한 상황인데, 문 정권이 이끄는 외교팀은 1부 리그에서 모든 국가에 외면을 받고 아프리카에서도 2부 리그 국가들, 세계적으로는 4부 리그 국가인 감비아 탄자니아를 불러 감.탄.스런 외교 협력을 추진합니다. 수출액 기준으로 세계 5-6위를 다투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간.경화에 걸린 것 입니다.
아무도 대한민국을 상대하려 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통적 우방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소련 그리고 북한 마저도 우리를 외면하고 있지만 전임자들이 만들어낸 평창 올림픽으로 우리의 목숨을 연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마저 평양올림픽으로 만들며 선수들에게 인공기로 치장한 유니폼을 입히는 이들의 행태를 보며 촛불을 들었던 우리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영하 20도가 넘나드는 추운 평창에서의 자원 봉사자에게는 노숙자 동냥같은 식사를 제공하고 자신들은 일급호텔에서 9만 7천원짜리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한다는 소리가 가격을 절반으로 깎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히죽거립니다. 이들의 머리에는 왜 그것이 잘못된 관행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이 그렇게 타파를 외치던 대표적 적폐라는 것도 잊고 있습니다.
엄동설한 영하 20도가 넘나드는 평창에서 자원봉사자들은 3-4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버스를 타고 식당에 도착하지만 그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식사마저 제공하지 않습니다.

산성 안의 식량은 다 떨어지고 동한복 대신 지급된 가마니와 거적으로 추위와 싸우던 굶주린 병사들은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오랑캐의 나팔소리와 간간이 성안으로 날아드는 포탄에 소스라쳐 놀라 녹슨 창을 움켜잡지만 이 모두 부질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옆의 동료들이 눈물로 어머니를 부르며 하나 둘 눈을 감습니다.
이제는 왕이 먹을 음식마저 동이 납니다. 마지막 남은 닭마저 사라져 버린 산 속의 겨울은 짐승소리마저 삼켜버린 채 죽음같은 바람소리만 귓전을 두드립니다. 끔찍한 추위와 공포스런 겨울바람만 창을 두드리는 그 날, 손 끝까지 오한이 파고드는 남한산성 쪽방 한곁에 흔들리는 촛불아래 이조판사 최명길이 청태조에게 바치는 항복의 국서를 써내려 갑니다. 나라의 힘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의 민초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그렇게 시들어갔습니다.

지금도 북에서 핵을 보유하며 우리가 힘이 없음이 증명되자, 전쟁의 그림자가 또 다시 우리에게 밀려 듭니다. 헛된 명분으로 되 뇌이던 평화가 얼마나 부질 없는 일인지 남한산성 시린 겨울에 거적과 횃불에 언 몸을 녹이며 굶주림과 싸우다 세상을 등진 민초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주제에 소통마저 없는 박정권을 몰아내고, 사람이 먼저라는 말에 넘어가 제 발등을 찍은 순진한 촛불의 영웅들, 나라를 위해 엄동설한 그 추위 속에 자원봉사를 하는 그들은 버스를 기다리며 얼어버린 몸과 식사마저 못한 굶주린 마음으로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One comment

  1.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네요
    이 글은 교민잡지가 아닌 조선일보에 기고하셨으면
    칭찬받으실만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좁은 바닥에서 놀지마시고 조선일보에 입사해보시는게 어떠실지
    감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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