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May 28,Thursday

벤탄시장 신발수선 아저씨

 

“참으로 걸을 일이 많은 나라더군요. 뾰족구두 굽이 몇 달을 성치 못했어요. 무척이나 덥기도 더운 나라더군요. 가죽구두 밑창이 쩍쩍 입을 벌려요. 금방 산 새 신은 반드시 고무밑창을 대줘야 오래 신을 수 있지요. 10여년전도 지금도 교민들의 신발 수선을 책임지고 있는 벤탄시장 앞 신발아저씨! 작은 일 이지만 늘 그자리 에서 쉬는 날 없이 신발을 고쳐주는 이름도 모르는 그분을 씬짜오 베트남 피플코너에서 소개해 주세요.”

취재요청을 받자마자 바로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그 아저씨, 실은 내가 아저씨의 단골손님이라 더 반가웠다. 벤탄시장 입구 맞은편부터 여러 명이 도로변에 줄을 지어 신발을 수선하고 있지만 맨 첫 번째 아저씨만 유독 한국인의 방문이 잦다. 다들 그리로 가니 따라서 가게 되었고 수선상태도 좋아 다른 곳은 갈 생각도 안 했었는데 왜 유독 그곳에만 손님이 분비는지 다른 곳과 어떤 점이 다른지 시장조사도 겸해보리라 맘먹는다.

기자: 안녕하세요, 아저씨. 한국 교민들이 저희 피플코너에 아저씨 소개를 원하세요. 새로 오는 교민들에게 신발수선 내용에 대한 좋은 정보도 될 것 같고요. 잠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아저씨: (의아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신발을 꿰매며) 나는 잡지에 소개가 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신발이나 고치는 거친 일을 하죠. 할 얘기가 없는데 이를 어쩌죠?

기자: (잡지에 인터뷰로 실리면 간접 광고효과를 돈 안들이고 할 수 있어, 내노라는 기업체 사장님들의 쌍수로 반기는 호응도 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잠시 당황스럽다.) 여기 골프화도 고쳐야 하니 작업하시면서 그냥 옛날얘기 푼다 여기시고 편안하게 말씀해주세요. (앉은뱅이 의자에 눈높이를 맞추어 쪼그려 앉는다)
기자: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아저씨: 17살에 시작을 했으니 벌써 28년이 넘어가우. 배운 것도 없고 먹고 살기도 힘들어 여기서 어깨너머로 허드렛일을 도우며 혼자 익힌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거우.

기자: 28년을 여기서 계신 건가요? 일주일에 며칠을 일하세요? 제가 어떤날을 와도 한번도 허탕 치고 간 적이 없었어요.
아저씨: 쉬는 날이 없지요. 비가오면 저기 금은방 집 처마 밑에서 작업을 하죠. 나는 그냥 여기서 28년을 나무같이 있었네요. 아침8시부터 오후6시까지 늘 일을 하지요.

기자: 하루 몇 켤레나 손을 보시나요? 주로 어떤 수선 문의를 해오는지요?
아저씨: 대중없어요. 어떤 날은 겨우 몇 켤레 밑창만 붙이기도 하고 운수가 좋은 날은 30켤레도 고치구. 주로 신발 굽을 갈거나, 밑창을 덧대고, 벌어진 밑창을 단단히 꿰매는 일이 대부분이죠. 특별히 큰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일은 아니라우.

기자: 그래도 아저씨한테만 손님들이 몰려드는 이유 있을 텐데요. 가격이 싸거나, 기술이 좋거나 친절하거나, 무슨 이유로 한국인들이 이곳만 찾을까요?
아저씨: (손사래를 치며) 아니야. 아니야. 여기 우리 친구들 모두 기술공들이지. 가격도 모두 같아요. 나만 특별한 것은 없어. 다만 나는 필요로 하는 부분을 최대한 맞춰 줄려고 애써요. 굽이 둥글다면 동그랗게 둥글려주고, 꿰매야 할 곳이 보이면 부탁하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수선을 해놓지. 손님들이 놓치는 부분도 내 눈에는 보이거든.

실은 인터뷰 며칠 전에 신발 굽 교체를 주변 다른 수선공 몇 명에게 맡겨보았다. 수년 된 신발로 상태가 몹시 불량했다. 검정색 구두에 살색 플라스틱 굽을 교체해준 곳, 밝힌 굽을 무리하게 빼다 흠집을 낸 곳, 못 고치는 걸 가져왔다고 화를 낸 곳을 거쳐 마지막 수선을 맡은 이 아저씨는 원래 굽 소재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완벽하게 교체해 놓았고, 주문하지 않은 수평조절도 되어있었다. 나는 이미 그 비법을 알게 된 터라, 아저씨의 겸손한 대답이 몹시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기자: 수선하신 신발 중에 기억에 남거나 못 고친 신발은 없었나요?
아저씨: 못 고친 신발은 없었지. 크게 기억에 남는 신발도 없구료. 신발은 다 똑같아. 다만 이 일을 오래하다 보니 재주거리가 하나 생겼지. 아주 비싼 좋은 신발과 그걸 흉내 낸 가짜 신발을 구별하는 재주 말이우. 나는 비싼 신발 이름도 몰라. 읽을 줄도 모르지 고치려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제야 알게돼. 바늘의 땀 수, 본드 처리, 접합부분의 견고함. 겉으로는 멀쩡해도 안은 모두 다르지 우리네 다양한 인간 군상들 같지 않으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속내가 신발을 닮아 재미있어.

기자: 장성한 아이들이 이제 아저씨를 도울 텐데 일을 좀 쉬엄쉬엄 하시지요.
아저씨: (희미한 미소를 겸연쩍게 보이며) 기자양반 나는 건사 해야 할 자식이 4명이나 돼우. 큰아들이 아직 고등학생이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정사가 나아지질 않으니 원… 요즘은 셋째 아들녀석이 일을 돕는다고 나와있지. 그 놈은 애초에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어. 저기 고무밑창을 자르고 있는 녀석이 내 아들놈이우.

기자: 일이 힘드셨을 텐데. 아드님이 이일 하는 거 괜찮으신가요?
아저씨: 다들 공부를 잘 할 수는 없지요. 본인만 열심히 한다면 굶지는 않는 일이니 그저 두고 볼 일이지요. 나는 큰 욕심도 없다우.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데로 두면 또 사는 방법이 생겨

기자: 어떨 때 보람을 느끼세요?
아저씨: 망가지고 오래된 신발이 제 모습을 찾고 그걸 보고 기뻐하는 손님들을 볼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우. 한번 온 손님들이 또 다시 찾아오고, 주변에 소개를 해주고 그것만한 보람이 어디 있겠수. 자 다 꿰맸수다. 이런 별볼일 없는 작자를 뭘 쓸게 있다고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있수. 아이쿠 저기 손님이 택시에서 나를 부르오. 기자양반 이만 가봐야겠어.

 

저 멀리 택시서 머리를 산꼭대기 같이 고데를 한 중년 여성이 신발을 흔들고 있다. 취재용 사진으로 활짝 웃는 표정을 여러 번 부탁했는데 단 한번도 호탕히 웃지를 않던 아저씨. 뭐 그리 대단히 기뻐 웃을 일이며, 내가 이 기사로 뭔 공짜 홍보를 할거라고 억지로 연출까지 해야 하나 여기신 걸까?

“어떤 사진 좋으세요. 이런 내용 싣습니다.” “아무려면 어떠우 이런들 저런들 그게 나지요. 당신들이 전문가니 알아서들 하시우. 각자 맡은 전문적인 일을 하면 돼요. 나는 신발이나 고치면 그만이고.”
수많은 기업체와 인사들의 까다로운 검열요구와 사진선별, 디자인 참견, 관철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불만세례가 캡쳐 되어 실소가 나왔다. 뜯어보면 알게 되는 진짜와 가짜 신발이 우리 내 모습과 닮았다는 아저씨 말이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예미해 : beautis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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