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3,Tuesday

파죽지세의 랑랑, 건초염과 싸우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 각각 한 손만으로?
명실상부한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이 지난 해 10월 카네기홀의 갈라 콘서트에서 이상한 조합의 연주회를 선보였다. 자신의 음악재단에서 수업 받고 있던 14살의 미국 피아니스트
‘막심 랜도’의 왼손을 빌려 <거쉰의 피아노 랩소디>를 함께 연주했던 것이다. 랑랑은 오른손만으로 막심은 왼손만으로, 한 피아노에서 각자 한 손만을 사용하여 연주한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연주회를 기획한 것일까? 살펴 보니 기획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래전부터 한 뉴욕 팬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한 손만으로?

불과 3일전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랑랑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듣고 있었던 필자는 우연히 그에 대한 뉴스를 접한 뒤 너무 놀라고 말았다. 작년 봄부터 왼손 인대에 ‘건초염’이 생겨 현재까지 치료와 회복을 위한 재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1년 동안 랑랑의 연주회에 대한 기사가 없었다. 그 누구보다 랑랑의 음악을 사랑해 온 필자에겐 적잖은 충격이다. 건초염이란 근육과 뼈의 결합조직 ‘건’을 둘러싼 ‘건초’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손과 팔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선수나 작가, 그리고 연주자들에게 종종 발생한다. 건초염은 발생 후 1년 내에 발견할 경우 완치율이 높으나 2~3년이 경과한 후에 발견하면 평생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현재 36세인 랑랑. 그는 13세의 나이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쿨’ 청소년 부문에서 우승한 후, 17세에 세계적인 ‘바르비에 음악 축제’에서 협연자 ‘앙드레 와츠’ 대신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후 2000년 초반부터 1년에 200여회 이상의 대형 콘서트를 소화해 내며 전 세계 주요 도시로 종횡무진 했던 랑랑. ‘파죽지세’가 걸맞은 표현일 것이다. 거칠 것이 없는 연주 행보였다. 고난이도의 화려하고 폭발적인 테크닉, 흉내내기 어려운 독보적인 쇼맨십,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무수한 소리’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피아노를 이용하는 랑랑. 너무나도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곡 해석으로 보수 클래식 음악가들의 ‘불호 직격탄’을 끊임없이 받아왔지만, 그가 현 세기의 최강 스타 피아니스트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 세계로부터의 러브콜을 쉴새없이 소화해내느라 건초염에 걸린 랑랑. 엄청나게 파워풀한 연주를 한없이 계속 보여줄 것만 같았던 그도 결국 ‘알파고’가 아니라, 우리와 근육조직이 같은 ‘휴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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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 장조>
‘랑랑’은 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 파리 콘서트를 위해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연습하던 도중 건초염에 걸렸다. 오로지 왼손 하나로 오케스트라를 상대해야 하는 이 협주곡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작품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로 1차 대전 참전 중 총에 맞아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고향 빈으로 귀향하게 된 한쪽 팔이 없는 피아니스트. 종전 직후의 그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는 곧 왼손만을 위한 곡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벤자민 브리튼, 파울 힌데미트,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그리고 알렉산더 스크리아빈 등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왼손만을 위한 곡을 작곡해 주었지만, 라벨이 작곡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만큼 성공을 거둔 곡은 없었다. 역시 1차 대전의 참전용사였던 라벨은 본인이 직접 겪은 전쟁의 참상을 이 곡에 녹여 작곡하였다. ‘한 손 피아니스트’라는 신세계를 개척한 비트겐슈타인의 연주는 단순히 음악을 전달하는 예술행위로서 뿐만 아니라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많은 빈 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불굴의 메시지’가 되었다.

<왼손> 피아니스트들
클래식 역사를 되짚어보면 적지 않은 수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들이 무리한 연습을 강행해 오른손에 부상을 당했다. 그 중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는 19세기 낭만주의의 독일 피아니스트 ‘로베르트 슈만’. 그는 자신의 피아노 테크닉 향상을 위해 일부 손가락을 묶고 연습하다 관절에 경직이 일어나 오른손이 마비되었다. 다행히 슈만은 작곡가로 진로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또한 미국의 커티스 음악원 학장을 지낸 ‘개리 그라프만’ 역시 전 세계를 누비며 명성을 쌓던 1980년 어느 날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근육 긴장성 장애’라는 병이었다. 그는 30년 동안이나 왼손 연주만을 해 왔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 역시 대학에서의 전공은 피아노였으나 건초염으로 인해 지휘자로 전향한 케이스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의학이 한층 발달해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게 된 사례도 있다. 미국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1964년에 37세였던 그는 누구보다도 바쁜 세계적 피아니스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오른손 손가락이 굽어 들어가는 ‘근육 긴장 이상증’이 발병하였다. 그는 피아노 연주법에 대한 연구로 눈을 돌렸고, 지휘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꾸준히 병행해 1982년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프랑크의 ‘교향적 변주곡’을 연주하며 양손 피아니스트로의 재기에 극적으로 성공하였다.

‘위기’가 아닌 ‘쉼’으로
랑랑은 분명히 감지했을 것이다. 근육의 피로감이 통증으로 변하는 그 순간들을… 그래서 스스로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과신했던 나날들을… 더디게 진행되는 재활을 통해서 인간의 근육이, 호흡이, 생명이 유한함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시간을 그는 보내고 있을 것이다. 20여년동안 세계무대를 위해 쉼없이 달려온 랑랑. 이번의 위기는 그를 잠시 쉬게 해주려는 신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시한폭탄 같았던 그의 궤변적인 음악 해석조차도 ‘예술가적 용기’로 바라보는 나는 그의 쾌유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가 오른손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일은 절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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