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골프게임에서 우리 아마추어들이 자주 사용하는 게임의 무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구찌 혹은 야지라는 일본어로 표현되는 행위가 그것인데 우리말로는 야유, 조롱, 훼방, 말장난, 약 올리기 같은 의미입니다.

골프 게임에서 상대에게 신경 쓰일 만한 말을 던져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행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별로 떳떳한 행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상대를 반드시 해하겠다는 악의만 없다면 그런대로 받아 줄 만한 농담도 되고 게임을 유머스럽게 만드는 양념 역할도 합니다. 그러나 이게 지나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은 누구나 하는 장난 같은 일이지만 알고보면 부끄러운 속을 드러내는 이 언행에 대하여 얘기 좀 해볼까 합니다.

외국인들과 골프를 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굿샷입니다. 외국친구들 웬만하면 칭찬합니다. 잘 친 샷도 아닌데 대충 맞으면 늦을 세라 굿샷이 사방에서 터집니다. 몰론 그 굿샷의 의미는 여러가지 알 수 있습니다. 아쭈 제법인데~ 일 수도 있고, 그래 연습 좀 한 모양인데, 그 정도는 돼야지 한번 붙지! 할 수도 있지요. 역시 신사의 운동답습니다.
이 정도로 서로 의기를 돋워주는 구호 정도로 마치면 좋은데 일부 골퍼들 이런 의기 돋우기를 잘못 이해하여 야유와 말장난으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탈입니다. “오른 쪽이 헤저드여 슬라이스 내면 안돼!” 얼핏 보면 슬라이스를 자주 내는 동반자를 배려하여 주의를 주는 말 같지만, 사실은 왼쪽 슬라이스를 내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문대로 슬라이스가 나면 피어오르는 웃음을 참으며 억지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행태를 그냥 게임의 관습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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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이든 간접적이든 의도적인 야유가 게임에서 허용되는 곳은 한국인 골프밖에 없는 듯 합니다. 이런 현상에도 한국인 특유의 질시 DNA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한국인의 골프 라운드에서 흔히 농담삼아 사용되는 말이 오늘 칼럼의 제목으로 뽑은 남의 불행의 나의 행복입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질투의 표현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과 같이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는 한국인만의 질투심리가 깔린 문장입니다.
질투는 열등감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품고 사는 사람은 질투 잘 안합니다. 골프의 경우에서도 진정한 고수는 상대가 실수로 불행한 기분에 빠지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실수를 한 동반자를 위로해주고 의기를 돋아주려고 노력하죠. 실력에 자신 없는 골퍼만이 열등심에 빠져 상대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기 위해 교묘한 야유를 고안해 내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게임은 대부분 실수로 승부가 납니다. 마지막 홀까지 이어온 최후의 승부가 멋진 버디퍼팅으로 마감되는 것보다 누군가 짧은 파 퍼팅을 놓치는 바람에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마추어의 게임입니다.
그렇게 실수가 승부의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을 하니 누군가 실수한 불행은 곧 자신의 행복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해도 뭐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 다정한 동반자가, 농담을 섞어가며 나와 필드를 누비는 호탕한 성품의 저 양반이 자신의 행복을 나의 불행에서 찾으려고 속내가 감춰진 야유를 날린다면 과연 그의 성품이 그렇게 호탕해 보이겠습니까?

짧지는 않지만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2m 파 퍼팅을 앞두고 무심의 집중을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동반자가 “그거 빠지면 보기지” 하고 당연히 못 넣을 것이라는 주문을 넣으면 그 순간 맛이 갑니다. 다행히 그런 노골적 간섭에도 공이 홀에 들어가면 고비를 넘기지만 그 소리에 불안감이 들어 퍼팅을 놓치면 순간 살의가 뇌리를 스쳐 가며 눈꼬리가 올라갑니다.

우리는 너무 경쟁과 승부에 익숙해 있는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입시라는 상대적인 경쟁을 숙명처럼 치루며 살아왔던 탓이라 어떤 승부에서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골프에서마저 내가 잘 쳐서 이기면 좋지만, 못 치는 경우라도 무슨 수를 쓰던지 – 상대의 신경을 긁어서라도 반드시 이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야유가 일반화되는 난장 게임이 조성되면 그때부터는 동반자에 대한 배려나 이해, 칭찬, 평화 등의 긍정적 요소가 다 사라집니다. 대신 갈등, 질시, 불안, 안달, 우울, 미움, 증오 등의 판도라 상자에 갇혀있던 모든 부정적인 감성들이 다 고개를 들죠. 부정적인 마음에서 잘 치는 골프 보셨나요? 골프는 긍정적인 마인드만 가져도 자기 생각보다 훨씬 잘 칩니다. 가능하면 라운드 내내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고 다짐하는 것이 골퍼들의 가슴인데 그 가슴을 빈정대며 흔들어놓고 어찌 행복을 느껴요?

“뭐 그 정도 말장난을 좀 했다고 뭐 그리 큰 일이 난 것처럼 흔들리냐?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는 것도 실력이여 ”
골프에서는 신체보다 정신이 앞섭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신이 흔들리면 절대 제 실력이 안 나옵니다. 일단 정신이 흔들려 불안감이 들면 불안한 그 기분대로 스윙이 무너집니다. 아마 역설적으로 이런 멘탈 스포츠라는 이유 때문에, 이런 말장난이 활개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먹혀드니까요 .
저는 좀 순진한 생각인지 몰라도 서로 상대의 실수를 기원하지 않고 자신이 잘 쳐서, 상대보다 조금 더 잘쳐서 승리하는 게임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준비하지만 동시에 최악의 결과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스포츠맨십입니다. 즉 진정한 스포츠맨은 게임이 불리해진다고 야유나 말장난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라운드 중에 서로 말장난만 없어도 참가에 의의를 둔 올림픽 게임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과한, 터무니 없는 실수에 대하여는 관용을 베풀고 최선의 실력이 나올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며 의기를 돋아주는 게임을 한다면 비록 달인의 솜씨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최상의 실력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멋진 게임이 되지 않을까요?
진짜 즐기는 목적의 골프게임이 완성되는 것이죠.

골프는 어른들의 게임이 맞는 듯합니다. 어른들은 골프에서 필요한 덕목인 겸손이 뭔지 압니다. 겸손을 알면 골프는 이미 정복한 것 아니던가요? 그리고 나이가 좀 들어야, 내 행복의 가장 큰 그릇이 남의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행복의 구슬들이 함께 구르며 내는 청아한 소리가 바로 행복의 소리입니다. 행복은 혼자서는 소리를 못 냅니다. 행복이 모여야 비로소 평화로운 시내물 같은 행복의 소리를 냅니다. 행복의 소리를 함께 만들 동반자가 있는 골프는 참 행복한 운동입니다.

골프 격언 하나 되뇌이고 글을 마칩니다.
재주는 자세에서 나오고 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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