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October 23,Tuesday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예술에서 자유로>

목수의 아들, 총음악감독이 되다.
고전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작곡가이자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프란츠 요제프하이든(1732~1809). 오스트리아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은 녹록하지 않은 가계 사정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적잖은 고생을 하며 성장하였다. 10대를 거쳐 20대가 되어도 끝날 것 같지 않던 생활고는 헝가리의 귀족 에스터하지 후작 집안의 부음악감독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비로소 끝이 나게 되었다. 당시의 총감독은 베르너였으나, 그가 사망한 1766년부터는 하이든이 명실상부한 그 곳 총음악감독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하이든은 17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에스터하지 후작의 궁에서 근무하였다. 그 곳에서 수많은 곡을 작곡하였는데 그 중 고전음악의 규범이 된 ‘교향곡’의 형식을 창조한 것은 이 후 등장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교향곡에 교과서 역할을 한 하이든 일생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교향곡(심포니)’은 악곡의 형식 중 하나로 ‘여러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곡’을 말한다. 하이든은 일생동안 총 106개의 교향곡을 작곡 하였는데, 어떤 작품들은 재미있고 다양한 부제들로 더 유명하다. 예컨대, 메아리, 슬픔, 불, 철학자, 고별, 정신 나간 사람, 사냥, 곰, 암탉, 여왕, 놀람, 기적, 군대, 시계, 큰북 연타, 런던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하이든의 대표 교향곡으로 불리우는 <고별> 과 <놀람>이다.
‘19년의 차’
1772년 작 <고별 교향곡>과 1791년 작 <놀람 교향곡>은 19년이라는 세월의 차만큼 여러 가지 음악 양식적 차이를 보인다. <고별 교향곡>이 작곡될 당시 에스터하지 후작에게 예속되어 있던 하이든의 음악 활동은 다분히 제한적이었다. 당시의 작품들은 후작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많이 반영되었고, 궁에서 연주되기에 합당하도록 악기 구성도 현악기 중심이었다. 뿐만 아니라, 멜로디의 전개도 다소 경직되어 딱딱한 느낌이다. 반면, <놀람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는 후작의 궁에서 퇴임한 이후로 하이든의 음악 활동이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이에 발맞춘 듯 당시의 음악은 이전보다 한층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궁정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음악회가 ‘공연장 연주’ 형태로 확장되었다. 이제 공간의 구애를 덜 받게 된 음악회는 악기의 구성면에서도 좀 더 대담해졌다. 즉 현악기 중심이던 곡들이 다양한 목관과 금관이 주축을 이룬 관악기 중심으로 변해 더욱 드라마틱함을 겸비하게 된 것이다. 멜로디 또한 부드럽고 로맨틱하게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에스터하지 궁에서의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음악 활동 중 미처 펼치지 못했던 하이든의 억눌렸던 감성이 강하게 발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하지 않을까? 19년이라는 세월. 그 긴 세월 속에서의 하이든의 음악적 기호와 성장은 그의 삶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고별 교향곡> “집에 가고 싶어요~”
<고별 교향곡>은 비하인드 스토리로도 더욱 유명하다.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하이든을 음악감독으로 맞게 된 에스터하지 니콜라우스 후작은 1766년 노이지트라 호수 앞에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한 화려한 궁을 건축했다. 하이든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주말 휴가도 한번없이 그 곳에 붙들려 있는 신세가 되었다. 여름 즈음 시작된 궁에서의 생활은 6개월이 넘어가곤 하였다. 하이든을 제외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가족을 데려올 수도 보러 갈 수도 없었지만 비교적 높은 월급을 보장받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6년이나 흐른 1772년, 몇 년 동안이나 여름이면 이 별궁에 갇혀 지내온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후작을 원망하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하이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자신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단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하이든은 ‘어떻게 하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단원들의 마음을 후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역시 해답은 음악 속에 있었던 것일까? 관대하고 유머러스했던 하이든은 특유의 재치로 기발한 퍼포먼스가 가미된 연주회를 기획하였는데, 그게 바로 <고별 교향곡>의 탄생 배경이다.
퍼포먼스는 이러했다.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4악장) 연주 시 단원들은 자신의 파트가 끝나자마자 보면대의 촛불을 끄고 하나 둘 퇴장한다. 최후에는 바이올린 주자 2명만이 남아 연주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연주 중간에 자리를 뜨는 단원들을 보며 후작은 황당해 했지만, 곧 그 퍼포먼스의 숨은 의미를 간파해 내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단원들의 휴가를 승인했다고 한다. 하이든의 배려와 센스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놀람 교향곡> “이래도 졸리십니까?!!!”
또 다른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이든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음악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체면치레로 음악회장을 찾는 귀족 관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의 음악회는 요즘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로 연주 전에 와인과 다과를 즐기는 ‘사교의 장’이 열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음악보다는 사교를 위한 ‘폭풍톡’에 빠진 이들은 와인 때문에 알딸딸~해져서 정작 연주회가 시작되면 자리잡고 ‘숙면모드’로 들어가곤 했다고 한다. 세~상 교양있는 척하던 귀족들이 연주회 중간에 꾸벅꾸벅 조는 것에 몹시 화가 난 하이든은 귀족들을 골려주기 위해 교향곡에 살짝 장난기를 집어넣었다. 즉 1악장을 활발하게 연주하여 평범한 듯 진행하더니 2악장의 첫머리를 극도로 조용하게 연주하다가 졸음이 살살 오려고 하던 시점에 꽝!!!!!~하는 빅 사운드를 연출한 것이다. 졸다가 너무 놀라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는데…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사실 <놀람 교향곡>에 얽힌 이 일화의 진위여부는 하이든의 전지작가인 ‘그리징거’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그리징거의 말에 의하면 이 곡의 2악장에 등장하는 빅 사운드가 졸고 있던 귀족들을 골려주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이든이 당시 자신의 제자였던 ‘플레이엘’에게 뭔가 색다른 시도를 가미한 교향곡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미 우리는 이 곡을 기억하기 쉽게 되었다.
그 일화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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