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November 25,Wednesday

일본여행日本旅行


20여년 만에 찾은 일본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30대 초반 봉급쟁이 생활을 할 때 업무목적으로 자주 찾던 일본인데 회사를 나와 독립을 한 후 일본 제품 취급을 마감한터라 거의 20여년 이상을 다니지 않다가 이번 설 연휴를 이용해 역마살 걸린 아빠와 30년을 살아준 엄마를 치하해야 한다는 아들애의 권유로 일본 규수지방을다녀왔다.
비록 전문 가이드는 아니지만 워낙 여행에 잡다한 지식을 가진 아들녀석의 상세한 안내를 받으며 다니다 보니 지금까지 진짜 여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6대륙 약40여개국을 다녔지만, 거의 모두가 업무상의 여행이었으니, 비행기 일정이나 호텔 예약, 이동 수단 등을 전부 스스로 정하고 미리미리 예약 확인하며 다니느라고한번도 마음 편하게 그 나라의 문화나 음식 심지어 풍경조차 즐겨본 기억이 별로 없다. 머리 속에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장사를 위해 밀고 당기는 상담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일본 규슈지방의 온천지로 유명한 유후인이라는 곳에서 며칠을보내면서, 2차대전의 종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원자탄이 투여된 장소인 나가사키로 가서 그 현장을 견학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사람을 상대로 사용된 원자탄의 위력은 정작 개발한 미국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 방사능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던 터라 별다른 고려 없이 사용된 것으로 사려된다는 아들 아이의 설명을 듣고서야 왜 미국이 엄청난 후유증을 남길 원자탄을 며칠 간격을 두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개씩이나 투하했는지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나마 당시 며칠 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에 놀란 일본의 필사적인 대공방어와 잔뜩 구름 낀 날씨 덕분에 시내 중심지를 피해 나가사키 외각에 원자탄이 투하된 까닭에 그나마 피해가 8만명 정도에 그칠 수 있었다고 한다.
원자탄이 떨어진 그곳은 지금 평화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원자탄의 참담한 위력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장소로 남아있었다.
공교롭게도 원자탄이 떨어진 장소는 당시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은 카톨릭 성당으로 지금은 성당의 한쪽 기둥만 외롭게 남아 당시의 비극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떨어진 일주일 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4천만명, 일본에서만 약 2백만명의 사망자를 만든 인류 최대의 전쟁은 마감을 했다. 당시 고작 일주일 식량만 남을 정도로 피폐한 일본의 막바지 상황에서 떨어진 나가사키 원자탄은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일본인에게는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작용을 만들어 아직도 일부 일본인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다른 나라와 다르게 된 계기가 된 것도 같다. 그 이후 방사능의 무서움을 모른채 일본은 바로 전쟁 복구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도 깊은 방사능의 후유증을 남겼겠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그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와 깊은 역사적 관계로 서로에게 많은 음양의 흔적을 남긴 일본의 비극적인 장소를 바라 보는 한국인의 마음에는 어쩔 수 없는 회한이 밀려든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원자탄 세례를 받은 일본인은 이 곳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일본인 특유의 군청색 유니폼을 입은 여행가이드가 든 삼각깃발을 따르며 설명을 듣고 있는 수학여행을 온 듯한 일본 학생들, 그리고 크고 작은 배낭을 매고 한가하게 이곳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어떻게 서로 다른 느낌을 갖고 돌아갈까?

원자탄이 떨어진 곳을 기념하여 만든 공원의 이름을 < 평화>라고 명명한 것은 피해의식의 반발일까? 아니면 그저 관성에 이끌려 만든 결과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평화공원을 빠져 나오는 길에서 만난 100여년 전통의 유명 카스텔라 본점, 전국에 걸쳐 수많은 지점을 가진 < 문명당>이라는 이름의 카스텔라 만을 만드는 빵집인데 총 본점이라는 거창한 명패와는 달리 초라해보이는 한 뼘만한 작은 상점이 공원을 빠져나오는 한가한 내리막 골목에 비스듬히 걸쳐있 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평생을 도모하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보여준다. 일본인의 서비스는 흠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친절하다. 어떠한 요구나 질문에도 최선의 응대를 한다. 그러나 20여년만에 다시 들린 한국의 관광객에게는 좀 의아한 일들이 일어난다. 유명 관광지에 신용카드를 안받는 상점이 태반이고 최고급 온천 호텔 방에는 베트남의 일반 카페에서도 무료로 제공되는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없다. 그러나 호텔이나 상점이나 어느 곳에서도 어떠한 소비자가 불평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그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공손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호텔 버스 운전자는 아무 차량도 보이지 않은 한적한 교차로에서 왼손 검지 손가락을 들어 왼쪽, 오른쪽을 가리키며 엄숙하게 안전을 확인한 후 다시 악셀레이터를 조심스럽게 밟는다.매뉴얼에 집착하는 일본인의 성향이 자유 분망한 한국인의 눈에는 그저 낯설기만 하다.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라면 이름인 < 나가사키짬뽕>의 유래가 되었다는 중국집을 찾아가 그 짬뽕을 주문했다. 한국의 그것 과는 달리 멀건 국물에 담긴 국수에 각종 채소와 돼지고기가 대형그릇에 한아름 담겨 나온다. 왜 이렇게 음식 양이 많은가 하는 의문은 이 중국집의 주인이 예전에 일본에 유학 온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제공하던 음식이라는 설명에 납 득이 간다.

돌아오는 시내 전차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넋 놓은 표정으로 자신이 내릴 정거장만 기다리는 모습에서, 지친 삶에 벗어나지 못한 무기력한 서글픔마저 비치는 것은 배타적 한국인의 왜곡된 시각인가? 그나마 두 명의 젊은이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는 모습에서 < 빅브라더>에 반항하는 윈스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일본을 다녀왔다 그러나 정작 일본인은 만나지 못했다 .
그들을 만나서 웃으며 대화하고 완벽하게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며칠을 보냈지만 단지 유명 관광지에 밀랍으로 세워진 일본인의 얼굴을 한 인형들을 바라보고 돌아온 느낌이다.
돌아온 호텔의 TV에서 나오는 일본 우익들의 혐한 시위를 보며 오히려 살아있는 일본인을 만난듯한 아이러니한 감정은 거부할 수도 없는 지정학적 이웃이라는 연민의 표현인가?

작성자 : 한 영 민

PDF 보기

18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