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시월

시월, 한 해의 10번째 달,
시월이라는 이름에 정감이 묻어납니다.
이 시월은 한국인에게는 특히 각별한 달이지요.

 

한국의 시월은 계절도 일품이지만, 각종 공휴일이 몰려있는 터라 거의 일 안 하고 지나가는 안식의 달이라는 인식이 가슴을 설레게 만듭니다. 공휴일 뿐이겠습니까? 거기에 한가위까지 겹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윗날만 같아라’ 라는 말이 조금 변형되어 ‘시월만 같아라’ 하며 지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공휴일이 좀 사라졌죠. 예전 시월에는 어떤 공휴일들이 있었나 한번 볼까요.
제일 먼저, 시월의 첫날이 국군의 날입니다. 이날이 국군의 날로 지정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8.28 수복 후 국군이 남북한의 경계선이었던 38선을 넘은 날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1950년 10월 1일, 한국 전쟁 당시 동부전선에서 육군 제3사단이 선봉으로 38선을 돌파한 날이다)
10월 1일, 이날은 한국민에게 엄청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이제 자주국방의 위용을 갖추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대외적으로 우리의 강한 국방력을 보여주어 남들이 함부로 우리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여의도에서 대대적인 전시 행사가 열리고, 그 행사 이후 육·해·공 해병대의 장병들이 새롭게 선보인 각종 신형 무기를 앞세우고 의장대, 군악대를 필드로 시내 퍼레이드를 나서곤 했습니다. 그 퍼레이드에는 많은 시민들이 거리를 나와서 군인들에게 꽃나발을 걸어주며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해병대 출신인 필자도 그런 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여 전부터 여의도에 올라와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행진연습을 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던 국군의 날 행사가 요즘은 참 초라해졌습니다. 행사가 작아졌다고 우리 국군의 위용이 축소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 대한 국군 여러분, 그대들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자랑스러운 대한 군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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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마지막으로 24일 유엔의 날로 공휴일의 행렬이 끝이 납니다. 그런데 시월 초순에 우리 민족의 최대의 명절 중에 하나인 추석 한가위가 있게 되면 절묘한 경우 한 열흘을 연달아 쉬게 되는 황금연휴가 생겨나곤 했습니다. 월급쟁이들에게는 더 없이 행복하던 달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아마 신이 자신이 창조한 한반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라고 한국인들에게 그런 특별한 휴일을 만들어 주었나 봅니다.
시월의 마지막 공휴일이었던 10월 24일, 유엔의 날에 대하여 아는 젊은이가 요즘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에는 국제연합이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은인이라는 인식이 한국민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습니다. 왜냐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16개국의 연합군을 우리에게 보내도록 결의하여 우리나라를 적의 붉은 침략으로부터 구해준, 지울 수 없는 은혜를 입은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유엔 창설 일을 국가 공휴일로 정하고 국가적 행사를 통해 그 은혜를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런 유엔의 도움으로 살아난 한국이 지금은 세계 10대 무역국에 들어설 정도로 성장을 했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가을의 소리가 들리는 탓인지, 지금도 시월이 오면 가슴이 일렁입니다. TV에서 북쪽부터 단풍이 내려온다는 소리가 들리고, 서울의 북한산에도 붉은 기운이 돌면, 서울 촌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단풍의 산하로 달려갑니다.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한반도 금수강산만이 펼치는 자연의 축제가 시작됩니다. 유난히 짧은 가을볕에 그 화려한 단풍의 잔치를 아불싸 놓칠세라 마음이 바빠집니다. 늘 가볍던 지갑을 몇 번씩 열어보며 부질없는 셈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가을이 한 발 성큼 다가오면, 덕수궁 돌담길에는 은행 잎을 밟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광화문 교보문고 너른 간판에는 가을을 노래하는 시 한 수가, 바람을 담은 단풍과 함께 걸려 오가는 시민들의 눈길를 사로잡습니다. 차마 어질러질까 이리저리 은행잎을 피해 걷는 시민들의 미소 위에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흘러나옵니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찾아야 할 것 같은 춘천의 가을 호반, 그 어디선가 피천득 교수가 그리하였을 싶은 낙엽 태우는 내음이 스며들 즈음, 남춘천 역전은 가을을 찾아온 젊은이들의 발길로 촘촘히 미어집니다.

이런 계절이 오면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연인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사람이 그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을을 핑계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어울려 맘먹고 찾은 소금강, 형형색색의 단풍에 취하고, 맑은 계곡물에 홀려 그 높은 산을 힘든지 모르고 오릅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하늘이라도 바라보면 너무나 푸르고 깊은 하늘에 숨이 꽉 막혀오던 그 순간들. 아직도 그런 기억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시월이 또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가을 타령은 하지 않아도 될 나이 같은데, 아직도 가을만 되면 한국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고, 또 동시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평생을 외지로 떠돌던 어쩔 수 없는 나그네의 천성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이렇게 가을마다 계절병처럼 찾아드는 가을 앓이를 막아주는 것이 다름 아닌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계절병 보다 중한 직업병 때문인가 봅니다. 매번 이때가 되면 항상 찾는 것이 바로 한글에 대한 자료입니다.

한 민족 최고의 발명품, 훈민정음, 이름부터 너무 멋 나지 않습니까? 국민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 어찌 세종대왕은 정령 지워지지 않고, 사라질 수도 없는 하늘의 이름을 만들어 내셨는지요. 하긴 이름만 만드셨겠습니까, 그 이름에 담긴, 백성을 사랑하는 그 깊은 뜻은 짐작만으로도 눈물이 절로 납니다. 요즘 세상이 그러하지 못해 더욱 그런가 봅니다.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면 알수록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마저 그분이 높은 뜻이 가상하여 신의 지혜를 내리신 게지요.
이런 신의 선물이 어찌 그저 이념과 정치 싸움으로 날을 지새는 한민족에게 주어졌는지요. 우리에게 이런 신의 선물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국민을 위하는 것이 전부였던 세종의 노력을 생각하면, 감상에 젖은 가을 타령은 자취를 감추고 뭔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발 끝이 저려옵니다.

이번 호 특집도 역시 한글에 대한 글이 나갈 것입니다.
매해 반복되는 한글에 대한 특집이지만 귀찮다 마시고 다시 한번 읽어 봐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글이 나라의 힘입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 당하던 망국의 수모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우리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대가 흐르고 격동의 역사에서 우리의 정체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나마 하나남은 우리의 정체 한글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시월이 시작되면, 초순에는 휴일과 명절을 즐기다가, 한글날로 정신을 차리고, 유엔의 날에 우리 역사를 돌아보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인데, 나라를 위해 사용할 방법은 없을까 궁리도 해 봅니다.
그리고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용의 노래로 잠시 감상에 빠져보지만, 이내 불어오는 써늘한 바람에 코트 깃을 세우며 겨울의 길목에서 생활을 염려하곤 했던, 바로 그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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