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November 14,Wednesday

베트남과 세계 [역사를 바라보다 3편] – 프랑스 식민시대부터 현대 베트남까지

 

지난호에서는 서기 첫 밀레니엄부터 19세기 말엽인 1887년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이 당시 역사의 특성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해진다는 점과, 중세적인 세계질서에서, 몽골제국의 세계정복을 통한 첫 세계화, 그 후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교역으로 시작한 세계화가 유럽제국의 식민지배로 변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풍파안에서 베트남은 1000여년 만의 중국의 영향력에서 벋어나, 독립왕국 시대를 맞게 되지만, 지형의 험난함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하여 중앙집권왕조가 아닌 호족연합체로의 성격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이로 인하여 중국, 한국과는 달리 왕조의 교체가 매우 잦은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베트남의 고질적인 균열은 차후 19세기경 서양세력 침략에 대처하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887년 프랑스에 의하여 본격화된 식민화로 시작하는 베트남의 현대사,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역사이지만, 베트남 현대사를 보지 못하면, 지금의 베트남을 이해할 수 없다. 19세기 말엽부터 21세기까지의 격동의 현대사를 통해 세계와 베트남이 어떻게 연계되었는지를 알아보자.

격동의 세기, 파란만장한 현대 베트남 역사의 시작점
베트남과 세계는 20세기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 극단의 시대 ” 격동의 시대, 전통의 틀이 무너지다.

2012년 작고한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그의 역작인 시대 시리즈를 통해, 20세기를 ” 극단의 시대 ” 로 규정한바 있다. 그가 이렇게 규정한 이유는 제국주의의 절정과 몰락, 가장 파괴가 심했던 2차례 세계대전의 발발, 파시즘을 비롯한 군국주의의 등장, 이들의 몰락 후 UN의 등장,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극한의 대립인 냉전과 미국, 소련이라는 슈퍼파워의 등장, 냉전기의 끊이질 않는 크고 작은 분쟁들, 마차에서 자동차, 글라이더에서 초음속 비행기까지 이 전 세기에는 상상 할 수 없는 비약적인 기술 진보로 세계화가 급격한 가속도를 붙이고, 20세기 말 인터넷이 보급되는 것으로 정점을 찍으며. 그리고 이때 발생한 구도는 지금 21세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전통사회에서 벗어나, 격동의 세월을 거쳐, 정보사회로 나아가는 20세기, 베트남도 이러한 변화의 예외가 될 수 는 없었다. 베트남의 현대사는 암울함으로 시작된다, 국가는 통킹, 안남으로 분리되어 남부 안남은 명목상 자치령, 통킹은 프랑스 총독부가 직접관리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응웬왕조 자체는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외세의 지배와, 구황실의 건재함이 혼재되어 있는 아노미 상황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민중의 저항은 중국에 저항한 전통처럼, 보이지 않게 전개되기 시작했고, 서슬프런 프랑스의 탄압에도, 호찌민 같은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 후 2차 대전때의 일본의 지배로 인하여 2백만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기근을 겪은 후, 독립을 찾게 된다. 그러나 독립 후의 역사는 1975년까지 아픔의 시작이자, 연속된 분쟁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진다. 이 시기, 베트남의 전통적인 정치체계와, 사회의 상징인 황실은 사라지고, 베트남은 분단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 북부는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써 이념체계에 맞는 사회로의 변화를 맞이하며, 남부는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정권으로써, 외세로 인한 군사적, 정치적 변화를 겪는다. 1975년 통일, 그리고 1986년 개혁개방을 통하여 베트남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급속한 경제발전, 그리고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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