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December 17,Monday

조아키노 로시니, 3곡의 오페라로 제왕에 오르다

 

19세기 초반 이탈리아 및 유럽을 중심으로 활약한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그는 도니제티 – 벨리니 – 베르디 -푸치니의 계보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낭만파 오페라’ 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인 로시니는 ‘이탈리아의 모차르트’ 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12세에 처음으로 출판한 <현악 4중주를 위한 소나타>만 보더라도 그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 ‘음악의 신동은 모차르트’라는 고정관념에서 우리를 충분히 벗어나게 한다. 14세에 처음으로 오페라 습작을 시작한 로시니는 18세에 작곡한 단막 오페라 <결혼 계약서>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은 이후 20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고, 이탈리아는 물론 음악의 중심지였던 빈, 파리, 런던 등 유럽 전역에 ‘로시니 스타일 오페라’ 열풍을 일으켰다.

‘오페라’, 서민 문화가 되다
17세기 서부유럽에서 발생한 ‘오페라’라는 음악장르는 봉건주의의 대표적 산물이었다. 즉 왕과 귀족들의 연회나 유희에 쓰였던 대표적인 오락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오페라는 18~19세기에 이르러 비단 왕과 귀족만이 아닌 서민들 누구나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극장 오락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당시의 유럽은 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부르조아 계급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즉 귀족중심의 봉건주의가 급격히 쇠락하고 있던 상황에서 ‘자수성가’한 시민계급들이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제법 먹고 사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진 서민들은 ‘문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데, 그 ‘문화’를 대표하던 장르가 바로 <오페라>이다. 당시 오페라의 주제는 주로 ‘연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우여곡절 결혼 이야기’, ‘공직자의 뇌물 수수 사건’, ‘바람둥이 남편 길들이기’ 등 서민 사회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소재들을 다루었다.

일필휘지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과 시리즈였다.
일찍이 1775년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는 3부작 희극을 썼는데, 제1부는 세비야의 이발사, 제 2부는 피가로의 결혼, 제 3부는 죄 많은 어머니이다.
로시니는 그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제 1부 세비야의 이발사를 희극 오페라로 만들었는데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아름다운 처녀 로지나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 그는 늙은 바르톨로의 보호를 받는 상황이다. 바르톨로는 로지나와 결혼해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기만을 기다리는 중. 그런데 로지나를 사랑하는 젊은 백작 알마비바가 나타나자 그의 음흉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알마비바 백작은 마을의 최고 꾀돌이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을 받아 바르톨로를 골탕 먹이고 로지나와 결혼에 골인한다.] 피가로? 귀에 익은 이름이다. 바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그 피가로이다. 사실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으로만 비교해 보면 피가로의 결혼은 세비야의 이발사의 후속작이 된다. 그러니까 제 1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는 제 2편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권태기의 부부가 된 것이다.
오페라는 대히트를 쳤다. 보는 내내 익살과 재치, 거기에 해학을 느낄 수 있는 ‘ 세비야의 이발사 ‘. 겨우 23세였던 젊은 천재 로시니가 단 13일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이 오페라는 그의 인생작이 되었다.

현실적으로 각색된 <신데렐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크게 성공시킨 23세 청년 로시니는 단숨에 스타 작곡가로 등극했다. 이 한 오페라로 전 유럽 음악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오페라 맨’이 된 것이다. 그는 대중이 원하는 오페라 스타일을 간파했다고 자신한 듯 이듬해에 또 한 편의 오페라
<신데렐라>를 발표한다.
동화 신데렐라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다분히 현실주의자였던 로시니는 전통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좀 더 사실적인 이야기로 각색했다. 즉 로시니 버전의 ‘신데렐라’에서는 의붓엄마가 아닌 의붓아빠의 두 딸에게 신데렐라가 괴롭힘을 받는다. 신데렐라의 엄마가 두 딸을 가진 남작과 재혼한 후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그 집안의 하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로시니는 마차와 말을 제공했던 동화적인 캐릭터 ‘요정’을 좀 더 현실성있는 캐릭터 ‘철학자’로 대체한다. 유리구두도 ‘팔찌’로 바꾸었다. 오페라는 또 한번 히트를 쳤다.기존 동화 신데렐라를 각색한 로시니 버전 신데렐라는 3주만에 작곡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2막 6장의 긴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사실 로시니는 매우 낙천적이고 게으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항상 작곡을 의뢰받으면 ‘ 라스트 미닛{Last Miniute) ‘까지 미루었다가 막판에 시간에 쫓기며 써내려갔다고 알려져 온다. 과연 속사포 랩처럼 음을 쏟아내듯 작곡했던 천재 모차르트에 필적할 만 하다. 아니, 작곡속도로만 비교했을 때 로시니는 이미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천재였다.

해피 엔딩으로 바뀐 <도둑까치>
신데렐라을 발표한 후 흥행에 성공한 로시니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는 그 다음해에 또 하나의 오페라 <도둑까치>를 발표한다. 오페라 <도둑까치>는 은그릇을 훔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어느 하녀의 이야기로 하녀가 사형당한 후 실제 범인은 까치였음이 밝혀진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비극적인 이 이야기는 로시니의 상상력을 통해 행복한 반전 스토리로 각색되었다. 즉 하녀가 사형당하기 직전 누명을 벗게 되고 결국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한다는 ‘ 해피 엔딩’ 으로 바뀐 것이다.

불과 3년 사이에 <세비야의 이발사>, <신데렐라>, <도둑까치>를 연속적으로 흥행시킨 로시니는 이제 겨우 25살이었지만, 이미 명실상부 희극 오페라의 젊은 제왕이 되어 있었다. 로시니가 오페라를 통해 대중을 사로잡은 힘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로시니가 주로 활동하던 1820년~30년대 사람들은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한 격랑의 시간을 보내며 많이 지쳐 있었다. 게다가 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보수반동주의의 풍조가 유럽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사회분위기가 어둡고 어수선하다 보니 사람들은 심각한 것 대신 경쾌하고 발랄한 무언가를 찾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배꼽잡고 웃으며 볼 수 있는 로시니의 오페라는 대중의 그러한 심리상태를 꿰뚫은 것이다.

 


 

김지희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졸업(교육학 학사) / 미국 맨하탄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석사) / 한세대학교 음악 대학원 졸업(연주학 박사) / 국립 강원대학교 실기전담 외래교수(2002~2015) / 2001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이후 이태리, 스페인, 중국, 미국, 캐나다, 불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연주활동 중 / ‘대관령 국제 음악제’, 중국 ‘난닝 국제 관악 페스티발’, 이태리 ‘티볼리 국제 피아노 페스티발’, 스페인 ‘라스 팔마스 피아노 페스티발’ 《초청 피아니스트》
E-mail: pianistkim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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