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YouTube(유튜브)의 세계 – 유튜브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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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World Wide Web으로 1989년 첫 선보인 이후, 3차례의 시기를 학자들은 혁신이 시작된 시기로 간주한다, 98~03년 IT버블시기에는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전자 상거래 및 이메일이 일상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당시의 인터넷은 필수가 아닌 선택에 가까웠고, 동적인 요소 보다는 정적인 요소가 많은 시기였다.
2018년을 사는 우리 삶에 가장 혁신을 불어넣은 시기가 04~07년이다. 이 시기, 지금 인터넷을 지배하는 Facebook, Twitter, Youtube가 창업했으며, 첫 스마트 폰인 I-phone이 출시되어 기존 여가시간의 취미에 가까운 인터넷 사용을 생활에 밀착시키었으며, 인간관계가 Social Network를 중심으로 형성되게 되었으며, Platform이라는 컨셉이 도입되면서,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인간관계, 티비보기등의 일상적인 활동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된다. 물론 페이스북 및 트위터 같은 문자 중심의 SNS가 사람의 관계 형성이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Youtube는 인간의 눈은 움직임에 민감하다는 본능을 최대한 활용한 플랫폼이다.

2005년 4월 동물원에서 당시 최첨단인 폴더폰 카메라를 활용하여, 10초의 동영상이 Youtube에 올라왔다. ” Me at the Zoo (동물원에 있는 나)”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평범해 보이는 동영상이지만 그 해 2월 창업된 Youtube의 최초로 업로드된 동영상으로써, 이 후의 이슈가 되고 일상이 되는 수많은 동영상들과 함께 우리가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 후 Youtube는 이전에 비싼 값을 치루고 보던 영상 컨텐츠가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즐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티비라는 장비로만 볼 수 있던 영상의 독점권이 스마트폰으로 깨지면서, 거의 모든 곳에 영상이 존재하는 계기가 되어, 인간이 대중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을 다변화 시켰다.

세상을 바꾼 SNS와 Youtube. 이번 스페셜리포트에서는 Youtube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집중 조명 해 보겠다.

 

History of Youtube

<일상의 불편으로 시작된 작은 시작>

세상을 바꾼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제일 처음 유튜브의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PayPal에서 같이 근무한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 그리고 당시 학생이었던 자베드 카림이 2005년 2월 설립했다. 사실 이들의 창업동기는 일상의 불편에서 시작된다. 2005년 1월 스티브 첸의 아파트에서 저녁 파티를 하다가 찍은 비디오 영상을 공유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디오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2004년~2005년 당시,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은 의외로 보편적이었지만, 영상을 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절차가 복잡했다. 특히 웹사이트에서 링크를 통하여 공유하는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들의 창업동기는 일상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하는데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유튜브는 이들의 발빠른 행동으로 현실화 된다. 바로 다음달인 2월 이들은 도메인을 등록하고, 웹사이트를 만드는데에 최선을 다한다. 특히 창업자인 스티브 첸이 주목한 부분은 사용편리성이다. 그는 2010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저희가 웹사이트를 만들 때 최선을 다한 부분은 편리성입니다. 특히 업로드가 편하고, 동영상이 인터넷 속도와 상관없이 작동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용카드를 최고 한도까지 사용했어요. 유튜브 동영상이 등록됐을 때 저는 경제적으로 파산직전이었습니다. ”

-유튜브 설립자 채드 헐리 (Chad Hurley), 스티브 첸 (Steve Chen), 조드 카림 (Jawed Karim)-

 

편리한 사용성을 만드는데 전력한 이들의 올인은 2005년 5월 오픈 테스트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대박을 터트린다. 유튜브는 오픈 테스트 시작후 빠른 보급률을 보인다. 2005년 9월, 유명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서 업로드한 호나우지뉴의 동영상이 유튜브 최초 조회수 100만을 돌파한 동영상이 되면서, 유튜브의 지위는 확고해진다.
유튜브의 인기 덕분에, 유튜브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2005년 12월, 월간 사용자 조회수는 800만건에 달했다. 또한, 이 때 유튜브는 세쿼이아 캐피탈에서 350만 달러를 성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2006년 3월, 유튜브는 또 다시 800만 달러의 투자를 받게된다. 같은 해 여름, 유튜브의 월간 동영상 조회수는 1억건을 넘어섰고, 월간 사용자 수는 2000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유튜브의 지속적인 인기는 기존 미디어 회사의 주목을 받아, 미국 3대 지상파 방송국인 CBS 간의 상호 협력이 체결됐으며, 이 후 2006년 10월 10일 16억 5천만달러에 인수 구글에 인수된다. 이 사건은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합병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파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뉴스코퍼레이션의 마이스페이스 인수후 시너지 효과를 못보고 손해가 컸다면, 구글의 유튜브 인수는 미디어 소비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과로 이어진다. 당시 미디어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인터넷을 통해 광고시장을 빼앗아가고 있는 구글이 이제는 영상부분까지 뛰어든다는 점 때문에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저작권을 넘어서라

2006년 10월 구글에 인수된 이후 첫 번째 도전은 저작권 문제였다. 특히 유튜브는 엄청난 방문자 수가 있었지만 수익성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 미디어 업계는 구글의 유튜브 인수가 두려웠지만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실패할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러나 유튜브와 구글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용자가 제작한 컨텐츠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민주적인 플랫폼이 결국에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컨텐츠를 자극할 것이고 방송국이 지닌 독점적 제작 권한을 일반인들에게 제공하여 이들이 하고 싶은 컨텐츠 제작을 도와주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저작권자인 미디어 업체들과의 협상은 주로 에릭 슈미트 사장이 담당했는데 구글측은 이 과정에서 미디어 업체들이 과거의 방식으로 선불을 포함한 과도한 요구를 한다고 주장하고, 미디어 업체들의 막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기 보다는 법정소송을 진행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런 길을 가는데 미디어 업체들 중에서 합의 할 수 있는 곳과 협력하고 소송을 강행하면 소송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MTV소유주인 바이아콤 (Viacom)이은 유튜브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바이아콤은 유튜브가 자사 콘텐츠를 사용자들이 무단으로 올리는 것을 방치함으로서 자사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명목으로 10억달러(1조 2천억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요구했다.
구글 측은 이에 차분히 대응했고 1998년 제정된 DMCA법(디지털시대 콘텐츠 법, Digital Millennium Content Act)의 “안전한 피난처(Safe harbor)” 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제공 및 발행자는 콘텐츠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 이를 성실하게 제거해 주기만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논지를 펼쳐 소송에서 승리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저작권으로 인하여 많은 서비스들이 사라졌지만, 위 소송의 승리는 유튜브의 지위가 달라지게 되는 결과가 되며, 그 후 유튜브는 인터넷 역사에 기록된 여러 혁신을 시도하게 된다.

유튜브가 이룬 혁신

저작권 분쟁에 승리한 이후, 유튜브는 혁신을 통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시작한다. 아래의 리스트는 창립 후 이룬 혁신이다.

혁신 1 . 플래시 사용

2005년까지 기존 컴퓨터내 동영상 상영체계는 AVI나 MPG파일을 기반한 사이트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서버 측에 엄청난 트래픽 부담을 주고 사용자의 PC의 사양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동영상 콘텐츠는 웹상에서 널리 쓰이지 못했으며 웹은 문자 중심의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특히 당시 가장 널리 쓰이던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경우 이렇게 하면 웹페이지에 미디어 플레이어 컴포넌트가 삽입되는데, 이때 로딩의 압박이 대단히 심했고 이것 때문에 브라우저가 다운 될 정도로 불안정했다. 이 때문에 동영상을 삽입할 경우 글 제목에 동영상이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 인터넷 매너로 통했었다.
유튜브의 가장 큰 업적은 동영상을 플래시9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동영상 재생하는 기술을 통해 동영상을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2018년 현재 플래시는 시장에서 거의 퇴출 되었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현재 웹표준인 HTML5는 나오지도 않았고 이전의 방법은 플래시보다 수십배 느렸기에 유튜브의 플래시 플레이어 사용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결국, 유튜브의 성공을 보고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플래시를 플레이어로 사용하는 비슷한 아류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사물인터넷 시대를 여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인터넷이 동영상 미디어의 중심으로 떠오르는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유튜브 플레이어의 변천사 (2005~2013) –

혁신 2 . 광고

수익성은 IT사업에서 중요한 요소다. 2000년대 초반 IT거품시기에는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심리 덕택에 자체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이용자를 많이 늘리는 방법으로 무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트래픽에 기반한 투자가 유치가 가능했으나, 2003년 IT거품이 붕괴되면서 자체 수익성이 매우 중요해진 시기에 Youtube는 탄생했다.
이로 인하여 유튜브가 오랜 지속성을 지니려면 자체 수익모델 확보가 절실했다. 그러나 동영상 서비스의 유료화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 결국 수익성 확보와 유튜브 활동가들의 창작성 동기부여를 위하여 선택한 길은 구글이 잘하는 광고였으며 이를 통하여 구글은 영상광고 시장에 진입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오랜 기간 다양한 광고 형식을 시험한 이후 2007년 말부터 시작된 광고의 도입은 구글의 인터넷 광고 수익 혁신처럼 유튜브가 동영상 플랫폼으로써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구글 에드센스와 연계되어 개인별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유튜브 동영상 광고는 15초 혹은 30초라는 광고의 시간을 더욱 짧게 만들어서 5초 이내 광고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게 되며, 이를 통하여 기존 사진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광고의 영상화를 앞당기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 동영상 재생 전 삽입되는 광고 –

혁신 3 . YouTube Partners

2007년 유튜브는 YouTube Partners 프로젝트를 출시한다. 이 프로젝트는 YouTube에서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도록 돕는 것이다.
즉 유튜브 크리에어터들이 수익을 창출할 기반을 제공하는데, 이것은 광고 도입과 더불어 유튜브의 전반적인 발전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협력파트너가 제작한 컨텐츠와 유튜브가 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내용을 같은 위치에 두게 하여, 그들 모두에게 영업 수익을 나누고 홈페이지 추천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고, 방송국처럼 광고수익을 통하여 크리에이터들에게 시청자 수가 높아지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추후 유튜브 내의 컨텐츠가 다양화 되고 기존 미디어가 진출하게 하는 중요한 동기 부여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YouTube Partners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유튜브를 통한 1인 방송이 빠르게 퍼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혁신 3 . Video On Demand 의 대중화

유튜브는 저작권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다양한 컨텐츠가 저작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제공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것의 결과는 유튜브 컨텐츠의 다양화로 연결되게 된다. 특히 2006년부터 저작권에 문제가 있지만, 티비 프로그램이 유튜브 사용자들이 서서히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토렌트를 통한 P2P다운로드 방식이 쇠퇴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처음 받기 시작한 분야는 음악 분야다. 기존의 뮤직비디오가 MTV 및 TV용으로 제작되었고 또한 TV를 통하여 제한된 시간에만 볼 수 있었지만 유튜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선택권을 제공함으로써 인터넷 음악 유통의 중심이 기존 MP3 플레이어를 통한 소리 제공에서 벗어나뮤직비디오를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는데 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Vevo같은 업체와의 파트너 쉽은 저작권법의 공포에서 유저들을 자유롭게 하였으며, 기존 음악 업체들도 뮤직비디오의 유통중심을 TV음악 채널이 아닌 Youtube로 바꾸게 하는 기반이 마련되게 된다. 특히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 Youtube를 중심으로 유행하게 되면서 음악시장의 온라인 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유튜브가 뮤직비디오의 유통을 통한 Video On demand의 대중화를 시작했지만, 영화 및 TV는 저작권의 제한으로 지속적인
유통이 어려웠고 특히 저작권으로 인한 동영상 삭제 요청이 들어오면 응할 수밖에 없었기에, 유튜브를 통한 영화 및 TV유통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의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된 몇몇 업체들은 유튜브의 기술과 유통방식을 응용한 유료 웹사이트를 개설하게 되며 이러한 기술은 BBC에서 2007년 유튜브의 플래시 기술을 활용한 Iplayer를 선보이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아울러 BBC Iplayer에서 보여준 기술은 추후 넷플릭스로 옮겨가게 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는 미디어 환경이 일반화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유튜브의 업적이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유튜브 에서 파생된 첫 Video On demand 웹사이트 BBC I Player –

 

 

2018년 현재 우리는 스티븐 첸과 그의 친구들이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인한 혜택을 받고 있으며, 이들이 설계한 동영상 시장이 표준이 되어버린 일상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현재 유튜브는 2018년 현재 유튜브의 로그인 사용자 수는 18억명으로 증가했다. 즉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로그인 하여 사용하는 인터넷 매체가 된 것이다. 이러한 위상이 높아지면서 파급력도 늘어났고, 또한 광고 난립, 가짜뉴스 범람, 영상질이 악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부분은 이들이 느낀 불편함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초기에 기존 동영상 재생방식이 컴퓨터의 과부화를 부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당시에 깔끔한 화질은 제공하지 않았지만, 가벼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영상을 사람들이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동시에 수익을 제공하는 모델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광고, 홍보의 유통망이 새롭게 쓰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성경 욥기 8장 7절에 유명한 구절인 “네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昌大)하리라”라는 말이 생각나는 것이 유튜브다. 작은 불편을 해소하고자 했던 미약한 출발에서 세상을 바꾸어 버린 유튜브.다음 스페셜 리포트는 “Youtube의 실제적 파급력과 방송참여 방법” 이다.
(한성훈 : kosdaq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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