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도로 묵이야

얼마전 직원들을 교육하느라 분주한 젊은 후배와 자리를 했다. 그가 속한 한국의 회사는 컴퓨터그래픽(CG)과 첨단가상현실시스템(VR) 분야의 전문 회사인데 올해 초 호찌민 시에 진출하였다. 후배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자청하여 낯선 타국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십 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시장조사를 하고 직원을 뽑고 실무를 훈련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련 업무에 있어 양국이 작업의 속도나 프로그램의 활용성, 그리고 목표한 완성도를 달성해 나가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 이를 이해시키고 부족한 부분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베트남 직원들은 어때? 묻는 내게 그가 답을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해요. 기대가 많이 되지요. 문제는 우리가 기술을 전수하는 방법이에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거꾸로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기대가 되었다. 그의 긍정적인 평가는 물론 그의 업무가 가진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전문영역이기에 예닐곱 명의 소수 인력으로 초기 사업이 가능하므로 직원들 하나하나를 긴밀한 관계로 대할 수 있고, 한국의 본사가 다그치지 않고 충분히 시간을 배려한 것도 긍정적 판단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조건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후배와 같은 기대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직원들의 작업을 하나하나 챙기고 툴(Tool)의 사용법과 작업 기술을 가르쳤다. 만일 처음부터 다수의 직원들을 두어야 했다면 이런 세세한 교육의 방식은 적합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가 가르치는 방식은 형이 아우를 대하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멍청한 놈, 이것도 몰라 하는 식으로 대하는 친근한(?) 형제애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이 곳에서의 훈련 과정과 일정 일체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다. 그러니 대부분 빠른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본사의 은근한 압력에 조급해지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일년 이상은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니 그것 자체로도 큰 힘을 얻은 셈이다. 지금 와서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그리고 회사의 기대보다 더 큰 영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초기 계획을 수정한다 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를 특별하게 느낀 것은 대화 중에 엿보이는 그의 애정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직원들을 아낀다.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직원들과 그의 사이에 연결된 끈이 만져진다. 무엇인가를 누구에게 전수할 때 가장 근본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오해는 마시라. 그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의 마음에서 배려가 나오고 존중의 태도가 생긴다.
좋은 선생은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재능으로 넘친다고 자랑한다. 그들을 즐거워하고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열정을 갖는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를 가도 유행처럼 우리 회사는 사람을 중요하게 여겨 하고 말한다. 그게 사랑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을 귀히 여기는 회사는 드물다. 클라이언트는 귀히 여겨도 자기 직원은 그 반도 고려하지 않는 게 실상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내가 후배에게 기대를 갖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그는 직원을 귀히 여긴다.

유교주의 문화와 사회주의 체제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그의 접근 방식은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마을 중심으로 발달한 베트남 유교문화가 사회주의 체제를 만났을 때 대가족 형태를 취하면서도 수평적이고 친근하며 느슨한 위계의 질서로 발전된 것처럼 그의 방식은 회사를 ‘베트남적(的)’으로 정착시킬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 온 처음부터 모든 게 좋았을 리는 없다. 그는 틈 나면 직원 개개인과 인근 카페에서 차 한잔을 나눈다고 한다. 많은 대화를 통해 직원들을 먼저 이해하고자 한 이런 노력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는 친근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는 여기 사람들과 일하는데 자질이 있다는 내 말에 멋 적어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군대를 해병대로 지원해 다녀왔어요. 해병대에 뜻을 두어서가 아니고 친구들 분위기에 휩쓸려 어어 하다 입대하게 되었죠. 그냥 생각하기 전에 행동했어요. 그런 중요한 일조차 그랬죠. 또 욱하는 성격이 강해서 분을 잘 냈어요. 사회 생활을 할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화를 참는 것일 정도였으니까요. 화를 참으니까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해병대까지 갔다 온 사람이 얼마나 참으면 눈물이 났겠어요.”
그 때 그의 곁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한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그의 분노 섞인 말과 눈물을 들어주었고 다독였고 그리고 참을 수 있도록 잡아 주었다고 한다. 그 방법이 대화였다.
“그때를 겪으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일을 하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매일 시간에 쫓겨야 하는 부담감, 낮과 밤이 바뀐 생활, 그렇다 해도 큰 칭찬을 듣지 못하는 일이 우리 업무인데 젊은 그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도, 자유롭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 때마다 얼마나 울분을 터트리겠어요. 그럴 때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회사와 사회를 욕하고 그리고 울겠지요. 저처럼 말이예요. 그런데 여기 직원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서 제 젊은 시절 모습을 보았어요. 여기는 외국이잖아요. 우리 직원들이 고민이 생겨도 어떻게 저에게 자기 마음을 꺼내 놓겠어요? 울분에 그냥 나가버리겠지요. 그래서 제가 먼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에게는 내게 십 년의 경험이 있다 한들 해 줄 이야기가 없다.
그래도 사족 같은 조언을 건네 주었다. 그가 기대할 만한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밸런스’이다. 그는 지금의 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실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져도 그리 할 것이다. 그는 이미 사람을 키우는 투자가 자본의 투자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본인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그러하다. 그리고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기본임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러한 마음이 과도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기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나누되 넘치지 말아야 한다. 공감하되 경계가 있어야 한다. 사랑도 관심도 돈도 그렇다. 여기가 베트남이기 때문인 것은 그 외적 이유이다. 우리가 아무리 아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내적 이유이다. 그러므로 뜨겁게 사랑하되, 차가운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도 같은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밸런스, 사람을 다루는 일에 균형을 잃게 되면 어느 것도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내 훌륭한 후배가 깨달아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자네, 균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도로 묵이야.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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