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할 말을 사이공에 두고왔어

 

철없이 열매가 열렸다. 무르익은 열매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 다시 열렸다. 어느 날 마당에 떨어진 푸른 과일을 베어 물었더니 엽록소의 싱싱함이 미뢰에 가득 번진다. 구아바였다. 마트에서나 보던 망고가 마당의 큰 나무에서 익어 떨어졌다. 마당구석 바나나 나무에서는 바나나가 열리고 또 열렸다. 야자나무 흔들거리는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가 머리통만한 코코넛을 땄다. 부엌칼로 몇 번을 내리쳐 딱딱한 껍질 속에 있는 청량한 과즙을 야수같이 들이켰다. 한 낮에 맑은 하늘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바뀌면 누군가 팬티바람으로 마당에 나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맑은 비를 맞았다. 누가 뭐랄 새도 없이 모두 팬티만 걸치고 굵은 비를 얼굴로 맞고 뛰어다닌다. 뛰다 지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누웠다. 누워서, 비를 맞으며 서로의 손을 찾았고 손을 잡고는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내 비가 그치면 실루엣이 분명한 표백한 듯한 하얀 구름이 온 하늘에 뭉글거렸다. 사랑해 마지 않던 조국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대기업에서 혁신을 담당하는 팀장이었던 적이 있다. 회사를 떠나기 전 3년간 실로 화끈하게 일했다 자부했었다. 더 나은 다른 회사에서 비결을 알려달라며 우리 팀을 배우러 왔으니 교만한 어깨에 힘 빠질 날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이 끌어 모은 팀원 중 일부가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걸 확인하고 그들을 대신해 회사를 나왔다. 폼 나게 살 나이는 지났지만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때를 맞추어 얻게 된 직장은 베트남. 뜬금 없게도. 낯선 나라에 단신으로 와 곡절을 겪었다. 어이없는 이 외로움을 스스로 해명하려 밤을 샌 적이 있다. 혼자 잔 이불에 채 남겨두지 못한 쓸쓸함은 사무실까지 따라왔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 정체성이 미웠던 때, 증오하기를 멈추지 못하던 내가 무서웠던 그때. 다시는 월급쟁이 안 할거라 다짐하며 남들 다 보는 카페에 앉아 혼자 꺽꺽 울었다. 한참을 울어 쪽팔림이 밀려왔기로 카페를 나서며 중얼거렸다. 그래 여긴 아니다. 두 달 만에 한국에 돌아가려 짐을 쌌다.

그때 보였다. 여기. 황홀한 베트남의 속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꽁꽁 숨겨 놓고 나만 즐기고 싶은 곳. 메콩강 붉게 타는 노을과 아름다운 여인들, 길을 지날 때마다 누구나 한 움큼씩 던지는 그들의 미소, 미소, 미소.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내 조국에 화가 날만큼. 심각하지 않고 바쁘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내 살던 나라에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 후 가족 모두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들은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어리둥절했던 아내는 일과 육아까지 감당해야 했던 야만의 나라를 이내 잊었다. 저녁마다 와인으로 꽐라꽐라 되어 춤추다 지쳐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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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느린 시간에 살게 되었다. 이리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늦게 나마 이리 살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언제까지 거기 처박혀 있을 거냐는 지인들의 타박에 나는 말한다. 여기서 더 놀다 갈란다.
모든 면에서 느려 터진 내가 남들보다 빠른 게 두 가지 있었으니 아이스크림 먹는 속도와 산을 오를 때다. 두 가지 외엔 느리고 느리다. 모든 게 빨라야 사람 취급 받는 나라에서 어떻게 돈 벌었나 싶을 정도라고 가끔 아내가 지나가며 말하기도. 그도 그럴 것이 달변이 마냥 부러워 자책하며 고장 난 조리개처럼 열고 닫히는 내 입에 소가 서식하나 스스로 의심해 보기도. 제대로 된 신체자본 없이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 밀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라고 딸이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그도 그럴 것이 눈썹은 자라다 말아서 어느 때부턴가 붙은 별명은 모나리자. 눈은 작고, 아래위 할 것 없이 두꺼운 입술에 볼품이 사라져 그래서 또 붙은 별명 썰면 두 접시. 열등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말이다, 상식은 뒤집어 져라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아, 베트남에서 나는 일등 남편이요 신랑감이다. 열등이 무언가, 씹어 삼키는 것인가. 여기서 가장 잽싼 남자보다 내가 빠르다. 말을 모르니 느리게 말하든 빨리 시부려재끼든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여기선 마스크(얼굴) 따지지 않는다.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남자를 최고로 친다. 잘생기고 말 잘 하는 양반들아, 나 여기서 더 놀다 갈거야~

주변에서는 해외로 나가면 거친 삶을 살게 될 거라 했다. 고맙게도 말리던 지인들의 반대가 떠나려던 내 확신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러나 나는 무서웠다. 세계 최고봉을 오르겠노라 히말라야를 들쑤시며 다니던 때보다, 북미최고봉 등정을 위해 알래스카 눈 바닥을 기웃거리던 때보다. 나는 월급이 무서웠다. 월급의 물리적인 파괴력은 상당했지만 내 인생을 비커에 올려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는지, 저렇게도 살 수 있는지, 이렇게 살면 어떻게 될지.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은 황홀하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 번도 다른 배역을 맡아 보지 못하고 한 곳에서 하나의 배역에 그치고 말 때, 그것은 항구를 떠나 본 적 없는 배와 같다.

언젠가 해질녘 휘어진 야자나무와 그 아래 벌거벗은 여인들이 춤추는 해변에서 살리라 꿈꾸던 적이 있었다. 실재하는 그곳을 열망했다기 보다 사위가 붉어지는 해변의 감미로운 하루와 그 여유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 같다. 내 졸렬한 글이 세상 모든 월급쟁이들에게 특히 타향에서 고생하는 직장인들이 잠시 들러 쉬었다 가는 주막이 되었으면 바랄 게 없다. 전쟁 같은 하루를 마치고 녹초가 된 사람들의 눈을 지긋이 감기고 여유의 속살로 데려 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남쪽하늘에 낄낄거리는 햇빛 한 오라기처럼.

 


 

장재용
작가, 산악인, 경영혁신가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 (8,848m) 등정, 북미최고봉 데날리 (6,194m) 등정, 캐나다 록키산맥 단독종주, 백두대간 종주, 낙동정맥 종주 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월간 산 객원기자, 2016년 프로야구 NC다이노스 개막전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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