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투쟁과 관조’의 대서사시


청력 상실이라는 운명적 현실과의 투쟁이 역사적인 교향곡으로 승화되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베토벤의 ‘귀 이야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20대 후반 청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베토벤은 곧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청력상실’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의 삶을 무자비하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위태롭게, 실낱같이 가늘게 남아 있던 청력이 완전히 사라지던 순간, 그는 좌절했다. 낙담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해서…유서를 썼다. 죽기 위해? 아니다. 그는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유서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투쟁을 다짐했다.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묵음 처리’된 세상 속에 남게 된 베토벤. 거기서 그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으며 오로지 자신의 기억력과 상상력만으로 세상의 소리들을 추적해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음악적 투쟁은 그를 ‘진정한 받아들임’의 터널로 인도했고 힘겨이 그것을 지나자 ‘관조의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토벤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그의 투쟁이 관조의 시기로 전개되던 당시의 교향곡 3편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죽음 대신 음악적 혁명으로
‘치유불능’ 판정을 받은 귓병으로 괴로워하던 베토벤은 요양 중이었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작성했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이 유서는 베토벤 사후에 발견되었다)
1805년 봄. 베토벤은 자신의 전작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큰 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한다. 베토벤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이 교향곡은 원래 그가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썼기에 악보의 첫 페이지 상단부에 ‘보나파르트’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개 포병 장교였던 나폴레옹이 대혁명을 이끌며 시민계급의 지위를 상승시킬 듯 보였으나 결국 정치적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황제로 즉위하자 “당신 역시 정치적 야망으로 민중의 심리를 이용한 속물이었어 !!” 라고 실망한 듯 ‘보나파르트’가 적혀 있던 해당 페이지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인류를 위한 나폴레옹의 ‘영웅적 삶’에 대한 기대감을 버린 베토벤 대신 자신의 비관적인 삶을 극복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의 ‘영웅적 삶’이라고 보고 그 정신을 이 교향곡에 투입시켰다.
< 영웅 교향곡>은 이전의 교향곡들보다 2배는 길다. 영웅을 상징하는 듯한 ‘모티브’로 이루어진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 누군가(나폴레옹?)의 죽음을 연상한 듯한 ‘장송 행진곡’. 길고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가는 듯 끝없이 긴 호흡의 4악장 등 베토벤의 투쟁적 삶이 < 영웅 교향곡>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쉰들러의 증언
베토벤의 최측근으로서 그에게 음악을 사사하며 나누었던 12년간의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고 주장하는 ‘안톤 쉰들러’는 베토벤 사후 그의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던 애호가들에게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너무나도 디테일한 일화들을 많이 기록해 두었기에 그는 일명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당시를 주름잡았다. < 운명 교향곡>에 얽힌 쉰들러의 흥미로운 증언이 있다.
1808년 어느 날. 베토벤과 쉰들러가 거실에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때,
‘탕탕탕탕 !! 탕탕탕탕 !!’.
누군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베토벤이 세들어 살던 집의 집주인이었다.
“집세를 받으러 왔소! ”,
“ 아휴 깜짝 놀랐구만~ 저리도 기습적으로 문을 두드리다니…”.
집주인이 돈을 받고 떠나자 베토벤은 쉰들러에게 이렇게 말한다.
“쉰들러 ~~ 운명은 바로 저런 식으로 문을 두드린다네…” 라고.
쉰들러는 기록을 통해 증언했다. 집주인이 불시에 찾아와 두드리던 문소리 ‘탕탕탕탕 !!’ 이 바로 < 운명 교향곡>의 첫 소절 테마인 ‘빠빠빠밤 !!!~~’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음악학자들과 전기작가들의 연구가 더욱 체계화됨으로써 쉰들러의 기록은 대부분 ‘허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쉰들러의 증언들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허구’일지도 모르는 쉰들러의 증언이 < 운명 교향곡>의 첫인상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 운명 교향곡>의 1악장에서는 고난과 시련 속에 빠진 베토벤의 비장함이 엿보인다. 이내 2악장에서는 시련 뒤에 찾아온 평화로움이 3악장에서는 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갈망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 악장에서 베토벤은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머쥔 이후의 절정을 표현한 듯 하다. < 운명 교향곡>에서는 고난을 이겨낸 후 맞는 환희의 순간들이 드라마틱한 사운드로 형상화되어 있다.
베토벤의 ‘전원일기’
운명 교향곡과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한 또 하나의 교향곡이 있다. < 제 6번 전원 교향곡>. 이 교향곡은 원래 ‘전원생활의 회상’이라는 이름으로 1808년에 발표된 교향곡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전혀 안 될 정도로 청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때 외롭고 고독한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것은 바로 ‘숲길 산책’이었다. 베토벤은 숲 속 산책로를 걸으며 귀가 아닌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던 것 같다.
< 운명 교향곡>과 같은 시기에 작곡되었음에도 마치 ‘이란성 쌍생아’처럼 완전히 다른 외형적인 모습을 가진 전원 교향곡. 총 5악장 구성인 교향곡의 각 악장은 베토벤 자신이 구체적인 제목을 붙였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을 그린 것으로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산들바람의 느낌, 창공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등이 묘사되어 있다.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를 묘사한 듯 하다.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농부들의 흥겨운 발걸음, 그들의 덩실거리는 춤사위를 상상하게 만든다. 4악장은 ‘천둥, 폭풍우’이다. 마치 베토벤 자신에게 다가온 무거운 운명의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고 드라마틱하다. 금관악기군의 한차례 소동은 5악장이 시작되면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목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감사와 기쁨’에서는 하일리겐슈타트의 평화로운 전원일기가 다시 시작된다.
< 영웅 교향곡>에서 극한 정신적 고통으로 투쟁하던 베토벤은 < 전원 교향곡>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관조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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