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July 23,Tuesday

봉사

베트남에서 잡지를 만들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뉴스 중에 하나가 바로 개인이나 단체들의 봉사활동 소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는 내용 중에 절반 이상이 봉사 활동에 엮인 이야기이고 실제로, 이곳에 진출한 많은 기업들도 자신들의 사업장 주변 이웃들에게 봉사를 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이 그런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자세를 많이 보일수록 그 기업의 평가는 좋아지고, 그것이 기업의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봉사를 영어로 표기하면 Service, Volunteer 입니다.
요즘은 Service는 거의 산업의 한 분야로 치부되고, Volunteer 자원봉사가 봉사의 개념으로 쓰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봉사라는 단어의 뜻은 Service 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가가 따르든 아니든 남의 위한 행위 자체가 봉사라는 단어의 뜻이니까요.
실제로 우리 사회는 봉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봉사를 서비스로 대처하고 보면 서비스가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일이 서비스이고 모든 행위가 서비스의 범주에 속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행위가 늘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숙명처럼 뇌되이며, 봉사가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알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국가 공무원입니다.
이들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라는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들어와 국민에 대한 봉사를 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자신의 호구책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옛부터, 백성들은 늘 귀족, 양반, 엘리트로 대변되는 정부관리와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정말 슬픈 역사입니다. 그 원인은 단 한가지입니다. 국가를 관리하는 공직자가 자신의 본질인 봉사정신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때 국민은 정부를 가해자로 보고 더 피해를 입지 않기위해 정부와 싸워야 하는, 없는 것보다 못한 국가가 생겨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낭패를 피하기위하여,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한 글이나 위대한 분들의 연설도 많지만 링컨의 게티즈버그연설에서 나온 ‘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 ‘ 라는 말이 그 모든 것을 집약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멋지긴 한데, 그 실현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개념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 것인 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준 사람이 있습니다.

2004년, 버락 오바마 라는 일리노이드 주 상원의원이자 흑인 변호사가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를 위해 그의 유세장에서 찬조 연설을 합니다.
당시 그는 대중에게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일개 주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오바마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 연설의 청을 받는 순간 이것이 자신의 일생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은 감지했다고 술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연설문을 씁니다.
그는 이때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삶의 자세, 그것이 봉사라면, 바로 그 봉사의 자세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때 그가 한 연설문에는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그 연설에서 공동체의 일원인 한 시민으로, 또 공직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하여 몇가지 예제를 듭니다.

” 나에게는 삶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는, 시카고의 주변에 사는 한 어린 학생이 글을 모르는 것이, 비록 그가 나의 아들은 아니지만 나의 관심사가 되고, 어느 연로한 시민이 의료비와 집 렌트비 중 어느 것을 지불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그 시민이 나의 할머니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내가 좀 더 가난해 지는 것은 기꺼이 감수해야 하고, 또 아랍계 시민 가족이 변호사의 도움 없이 체포된다면, 그들이 나의 가족은 아니지만 이는 나의 시민 권리가 위협 당하는 것과 같다는, 그러한 믿음입니다. ” 그리고 그는 ”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That makes this country work.” 로 문장을 마무리 합니다.
미국이라는 위대한 나라가 작동되는 유일한 본질은, 우리가 모든 시민을 자신의 형제자매처럼 지키는 마음이라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그가 말한 Brother’s keeper 는 구약성서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형제가 어디있는가 라는 질문에 가인이 대답한 ” 내가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Am I brother’s keeper?” 라는 반문에 대한 응답입니다. 모든 미국인이 다 아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그는 이웃을 내 가족처럼 지키는 마음이 위대한 미국을 만든 바로 그 정신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는 이 연설 이 후 세간의 주목을 받고, 4년 후에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본지는 지난 호에 이충근씨의 한인회장 사퇴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한인사회를 만들자고 몇몇 단체장들의 의견을 집약했습니다. 또한 총영사관에도 이에 대한 의견을 교민사회의 유력인사를 통해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무엇보다 총영사관의 의견이 현실적으로 교민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사관의 응답은 이 일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공부를 하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그 자리에 올라오신 분들이고, 또 오랜 세월 공직자로서의 경험을 거친 분들의 판단이니 충분히 존중할 만 하지만, 교민으로서 서운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질문 한가지를 이곳에서 꺼냅니다.

” 한인회 분규라는 사태로 인해 호찌민에 사는 15만여 한국적의 교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받고 있고, 더불어 국가 이미지도 실추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선택의 자유 없이는 책임과 의무도 존재하지 않지요. 그러나 일단 봉사를 근본으로 하는 공무원을 선택했다면, 봉사의 대상을 선별적으로 택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그 대상이 국민이면, 장소에 관계없이 그들을 돌보는게 공무원의 의무니까요. 이는 국가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헌법 2조 2항) ‘

” 저희는 그 일이 관여 안 합니다. ” 라고 자신과 국민을 분리해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저희의 문제가 아니고, 너희의 문제도 아니고,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인회 분규 상황이 벌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베교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정부에서도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인사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또 많은 고민을 하고 올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이런 문제에 말려들기를 원하겠습니까. 그래도 이것이 국민의 일이라면, 설사 뻔한 불이익이 예견되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공직자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이는 군인이 묵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 전장을 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논쟁이 불 필요한 명백한 진실입니다.

신년을 맞아 호찌민 교민사회가 최우선 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풀 수있는 유일한 방안은, 이 문제가 나의 문제이자, 내 가족의 문제라는 우리 모두의 인식입니다.

그래서 한번 다시 되뇌이고 싶은 문장입니다.
Yes, I am my brother’s 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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