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April 19,Friday

열정은 감동을 부른다

한동안 한국국제협력단에서 건축 분야 전문가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외교부 산하의 정부 출연 기관으로 우리나라의 대외 무상원조와 기술협력을 집행하는 실행기관이다. 이 기관은 코이카(KOICA)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활동을 통해 나는 파견지에서 코이카의 공적개발원 조사업 건축 분야의 사전 조사와 실시 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간 조사단으로 협력했던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수단의 알아자리(Al Zaeim Al Azhari) 국립대학 내의 IT 및 어학센터 구축사업 원조 평가를 첫 손에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방문했던 첫 나라, 나일 강과 사막을 경험했던 특별한 기억 때문에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 곳을 잊지 못할 곳으로 만든 것은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파견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리고 첫 방문 때에는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으로 다르푸르 사태가 막 진정 국면에 접어들 무렵이었으니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나라를 온통 감싸고 있었다.
알아자리 대학은 수단에서 5번째로 인증받은 국립대학교로 수도 하르툼(Khartoum)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대학은 1990년에 개인이 설립하였는데 1993년에 국립대학이 된 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우리가 방문하기 몇 년 전만 해도 5개 단과대학에 불과했던 이 대학교는 15개 단과대학을 거느리는 규모를 성장했다. 그리고 당시에 새로이 신규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여 제2, 제3의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모든 변화는 리더 한 사람의 열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개 조사단은 첫 번째 공식회의를 통해 50%는 업무의 성패를 예측한다. 수원국, 즉 원조를 받는 국가와 기관 측에서 어떤 준비를 했고 어떤 자세로 조사에 응하느냐가 중요한데 성격적으로 대외 무상원조였기 때문에 의례적이고 안이한 태도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공짜로, 값없이 주는 것일수록 귀함이 덜하다고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알아자리 대학의 준비와 자세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이례적인 것이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가 사전에 요청한 체크리스트에 대해 담당 교수를 지정하여 자료와 답변을 성실하게 준비했음은 물론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프레젠테이션과 외부 기관과의 미팅 준비까지 완벽하게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다. 첫 회의에서 일정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것만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대학 측의 수원 의지를 읽는데 충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협의가 진행되자 그들이 준비한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고, 모든 관련 교수와 엔지니어들은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질의 사항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실함으로 협의에 임했다. 그런고로 첫날부터 점심시간도 잊은 채 열띤 협의를 하던 참이었다. 총장이 박수 소리로 일행을 집중하게 하였다.
알아자리 대학 첫 회의에서의 점심식사는 그간의 수많은 평가회의 중에서도 특이한 경험이 되었다. 바로 알리 총장 때문이다. 그는 회의실로 들어와 일일이 진행상황을 묻고는 구석 자리에 앉더니 박수소리로 일행의 관심을 향하게 하고는 우리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이다. 그런 후에 함께 외부에 나가 식사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알리 총장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짓에 따라 문이 열리더니 학교 직원들이 비닐봉지에 담아 온 것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점심식사가 배달되어 온 것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간소한 점심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러나 총장 이하 교수들과 모두 함께 도시락으로 시간을 절감한 우리는 첫날임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 비록 하루의 회의였지만 깊이 있는 논의를 하며 머리를 맞댄 교수들과 조사단은 금방 막역한 사이처럼 되었다. 총장 역시 늦은 시간이 되어 우리가 일을 마칠 때까지 자리 한번 뜨지 않고 모두와 함께했다. 이런 강행군 일정이 일주일 간의 조사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 정도를 가지고 무얼 그러냐 한다면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수단 사람들은 9시 출근해서 10시에 회사에서 조식을 먹는다. 그리고는 차와 더불어 휴식시간을 갖고, 오후 2시에 중식을 먹고 다시 휴식한다. 그럼 일은 오후 늦게부터 하느냐고? 아니다. 오후 4시가 되면 퇴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일상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이례적일 뿐 아니라 사건이라 할 만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달리 이유가 없다. 총장 때문이다. 그는 첫 날부터 시작해서 원조 협약서에 서명하는 마지막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직접 일을 챙기고 관심을 기울이며 실제로 이 협의팀을 진두지휘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간 큰 교수가 빈둥거릴 수가 있겠는가? 덕분에 우리는 짧은 기간 내에 풍부한 자료와 더불어 협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알리 엘 샤예드 총장은 대단히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니고 있는, 전혀 강한 카리스마가 드러내지 않음에도 좌중을 압도하는 사람이다. 그는 함께 사진을 찍을 때면 가장자리로 물러선다. 배달 도시락을 시켜 우리와 함께 먹는 소탈함이 있는 반면, 알 아자리 대학의 비전을 말할 때는 열변을 토한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업이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며 넌지시 우리의 의사를 타진하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귀국 준비로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하얀 예복을 입고 찾아와 마지막까지 전송했다. 그는 겸손한 카리스마를 가진, 최선을 다하는 열정의 사람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단과대를 지금 규모로 확장시킨 것은 그의 의지였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배움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중국의 원조자금을 끌어들여 대학 도서관을 세웠고, 이제 우리를 감동시켜 IT센터를 세우려고 했다. 대학을 최고로 만들고 더 많은 청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그의 열정은 조사 기간 내내 우리를 한 시도 쉬지 못하게 했다. 짧은 일정 동안 우리와 더불어 하르툼 시장을 만났고, 주지사를 만났고, 그들 앞에서 우리의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 관계자에게 난점들을 직접 질문하고 확답을 받았다. 그는 발로 뛰며 일했던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온 조사단을 설득하여 IT센터를 세우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이 원조 프로젝트에 대해 조사단 중 아무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의 모습은 당시 조사단 모두의 가슴에 깊이 감동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알아자리 대학에는 대한민국이 원조한 ITLC센터가 세워져 있다.

한 사람의 리더가 품은 순수한 열정은 다른 이를 감동하게 한다. 설령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 열정의 비전이 길을 찾으면 용광로와 같은 힘을 낸다. 차이와 차별을 녹여 낸다. 그를 거울로 삼아 나의 비전을 들여 보았다. 내가 가진 비전에는 감동케 하는 힘이 있을까?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분을 만나 본 적이 없지만 마치 십 수년간 알아 온 사람처럼 친근하게 여긴다. 그의 열정을 아름답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과 베트남에서 그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칭송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베트남에서는 파파 리더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뭐라해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본질은 그가 쏟은 열정의 힘이다. 한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까? 박항서 감독과 알리 총장은 그런 점에서 닮아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새해이다. 꿈을 가지고 뜨겁게 살아야겠다. 비전의 열정은 감동을 부른다.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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