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August 21,Wednesday

[컬럼] 베트남 달에도 토끼가 살까

우리가 설계한 건축물의 시공안전을 위한 행사를 한다고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행사 시간이 이른 일곱 시여서 새벽부터 서둘러 현장에 도착했다. 사업주, 설계회사와 시공회사 관계자만 참석한 조촐한 행사였다. 사람 좋은 털털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그 회사 법인장께서 오늘이 길일이라 날을 택해 잡느라 여유 없이 연락했다는 말을 남겼다.
길일? 알고 보니 그날이 정월 대보름이었단다.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이다. 음력으로 설날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을 말한다. 금년도 뗏 명절이 2월 5일이었으니 손가락을 꼽아보니 대보름이 맞다. 정월 대보름에 뜨는 달은 이름도 대보름달이다. 하지만 대보름달이라고 해서 연중 제일 큰 보름달은 아니다. 새해의 첫 보름달이니 맏이를 일컫는 큰아이와 같은 의미로 큰 보름달이라고 한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날이 되면 부럼을 깨서 먹고 오곡밥과 여러가지 나물을 먹던 기억이 있다. 쥐불놀이, 연날리기도 추위 속에 손을 호호 불며 뛰놀던 이 무렵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보름달 하면 추석 한가위 보름달도 빠지지 않는다. 그럼 한가위 보름달과 정월 대보름의 보름달 중 어느 달이 더 클까? 나이가 들으니 쓸데없는 의문만 늘어간다. 그 소리를 들은 직원 한 사람이 대보름 전날이었던 어제 본 달이 더 크던데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어린시절,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다고 들어왔다. 이러한 믿음은 내게 너무나 확고해서 아폴로 11호와 달에 사는 토끼는 병립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둘 다 인정되었다. 달에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는 물론 우리나라만의 설화는 아니다. 중국도 그렇고, 일본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달에 사는 토끼는 특별하다. 집토끼도 아니고 산토끼도 아니다. 그래서 옥토끼, 또는 은토끼라고 부른다. 떡방아 찧는 기술을 가진 토끼이니 특별한 토끼임에는 틀림없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옥토끼가 달에 있는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는데 어릴 때 많이 부른 윤극영님이 작사, 작곡한 동요 ‘ 반달 ’ 에도 등장하는 유명인사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달에 사는 토끼의 모습은 아시아 지역에서 바라보는 달의 어두운 지표모양이 만들어 낸 상상이다. 거길 보다 보면 두 귀를 쫑끗 세운 토끼가 절구에 떡방아 찧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이 모습을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거울을 보는 여인이나 혹은 한쪽 집게발을 가진 게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의 영향 때문인지 베트남 달에는 토끼 대신 아리따운 여인이 산다고 전해진다.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옛날에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난 시절이 있었다. 태양이 하나여도 뜨거운데 열 개이니 오죽할까. 땅은 뜨거워졌고 바닷물은 펄펄 끓어 말라갔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이 때 영웅이 나타났다. 물론 그는 어벤저스의 일원도 아니고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도 입지 않았지만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그의 이름이 허우응예(Hậu Nghệ)였다. 그는 여차저차 어려움을 뚫고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가 신궁을 손에 잡는다. 그리고 멋진 폼으로 아홉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 태양이 하나만 남게 되었으니 세상이 정상을 찾게 되었다. 영웅이 미인을 만나게 되는 스토리는 뻔하지만 낭만이 있다. 허우응예도 항아(Hằng Nga)라는 미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어느 날 허우응예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는 불사약을 손에 얻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영웅은 아내에게 약을 잘 보관해 두길 당부한다. 약이 하나 밖에 없어 함께 하늘로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웅 이야기에는 항상 악당이 등장한다. 그는 허우응예가 없는 틈을 타서 약을 내놓으라고 항아를 찾아가 협박하였다. 악당이 얼마나 거칠고 두렵게 항아를 몰아 부쳤던지 약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항아는 불사약을 삼켜 버린다. 좋은 약은 효과도 빠른 모양이다. 항아는 곧바로 신선으로 변화해서 하늘로 올랐다. 하늘로 올라가던 항아는 슬픔에 겨웠다. 남편이 그리웠던 그녀는 결국 천계에 다 오르지 못하고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내려 선녀가 되었다. 허우응예 역시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 그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 밤은 달이 유난히도 둥글고 밝았다. 달을 보며 눈물 짓던 영웅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둥그런 달에 사랑하는 아내 항아와 똑같이 생긴 그림자가 보였던 것이다. 영웅은 그게 아내임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급히 항아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차려 놓고 항아에게 제사를 지냈다. 사람들도 항아가 선녀가 되어 달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보름달이 뜨는 이 날이 되면 모두 달 아래 제상을 차리고 항아의 행복을 빌었다.
사실 이 이야기의 근원은 중국의 고대 설화이다. 그런데 몇몇 각색된 버전이 베트남에도 있는 듯하다. 베트남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는 달에 사는 항아와 아이(chú Cuội) 설화이다. 거기에는 나무도 등장한다. 물론 토끼가 그 동네에 살고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래도 오리지널 중국 설화가 남편이 받은 불사약을 아내인 항아가 훔쳐 마시고 신선이 되어 달 속으로 도망갔다는 내용인데 반해 개정된 버전이 더 애틋하게 느껴져 소개했다.

1969년, 나사 미항공우주국은 달에 처음으로 착륙했던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고 한다.
” 달에 예쁜 중국 아가씨가 산다고 한다. 커다란 중국 토끼도 함께 있을 것이다. 아가씨 이름은 ‘ 창어 ‘ 이다. 토끼 이름은 잘 모르겠고, 나무를 발견한다면 거기 있을 것이다. ”
사령선 조종사인 콜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 오케이, 토끼소녀를 한 번 찾아보겠다. ”
아직 아무 소식도 없는 걸 보니 선녀와 토끼는 발견되지 않은 듯싶다.
금년 1월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한 중국 달 탐사선의 이름이 창어 4호이고 탐사차인 로버(Rover) 이름은 위투 2호인 걸 보면 못 찾은 것이 확실하다. 창어가 선녀 이름이고 위투가 옥토끼란 뜻이니 미국인들이 찾아내지 못한 것을 중국인들이 수색하는 모양이다. 창어 4호는 달 뒷면의 사진을 공개했다. 도대체 옥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하기야 그들이 공개하지 않은 사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현장 행사 덕에 막걸리 한잔과 김치와 돼지고기 편육을 나눠 먹기는 처음이었지만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늘은 대보름달을 바라보며 베트남 달에도 옥토끼가 사는지 찾아볼까 싶다. / 夢先生

 

박지훈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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